[자유성]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신드롬

  • 김기억
  • |
  • 입력 2019-02-16   |  발행일 2019-02-16 제23면   |  수정 2019-02-16

1989년 개봉한 영화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는 이듬해 제62회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여우주연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한 수작이다. 72세의 여주인공 ‘데이지’는 전직 교사 출신의 유대인으로 고집이 세고 자존심이 강하다. 데이지는 어느날 직접 운전을 하고 장을 보러가다 기어 조작 미숙으로 교통사고를 낸다. 이에 놀란 아들 ‘불리’는 고령의 어머니가 더 이상 운전을 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고 흑인 운전사 ‘호크’를 고용한다. 고집센 데이지는 처음에는 호크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호크는 친절과 공손으로 데이지를 대한다. 결국 데이지는 호크를 친구로 받아들인다. 영화는 호크가 치매에 걸려 양로원에 있는 데이지에게 케이크를 떠먹여주는 장면으로 끝난다. 2003년 미국의 미래학자들은 고령 운전이 향후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될 것으로 예상하고 이를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신드롬’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우리 사회도 고령 운전의 부작용이 심각해지고 있다. 유모씨(95)는 지난 12일 서울에서 운전을 하다 호텔 주차장 건물 벽을 들이받는 사고를 내 그 여파로 길 가던 이모씨(30)가 숨졌다. 지난달 17일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남편 필립공(98)이 교통사고를 냈다. 경찰청에 따르면 만 65세 이상 운전자가 일으킨 교통사고는 2014년 2만275건에서 2018년 1~11월에는 2만7천260건으로 늘어났다. 교통과학연구원이 2015년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치사율은 4.2%로, 전체 사고 치사율 2.4%에 비해 월등히 높다. 그만큼 고령 운전의 위험성이 크다는 얘기다.

일부 지자체는 고령 운전자의 면허 반납을 유도하는 제도 시행으로, 고령 운전 교통사고 감소 효과를 거두고 있다. 전국 처음으로 2016년 ‘치매·고령운전자 운전면허증 자진반납제도’를 도입한 포항시는 2017년 36명, 2018년 53명의 면허증을 반납 받았다. 이들에겐 무료입욕권 등 다양한 혜택이 주어진다. 서울 양천구는 10만원이 충전된 선불교통카드를 지급한다. 고령 운전 교통사고 대책의 일환으로 정부는 75세 이상 운전자의 면허갱신과 적성검사 기간을 5년에서 3년으로 줄였다.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신드롬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제도적 장치 마련도 중요하지만 ‘고령 운전은 위험하다’는 고령자 본인과 가족들의 인식 전환이 더 요구된다.

김기억 동부지역본부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