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X레이 영상 판독 기술 진화…유명 병원에서도 활용 예정”

  • 손선우
  • |
  • 입력 2019-02-16 08:03  |  수정 2020-04-20 14:38  |  발행일 2019-02-16 제13면
■ 시각 인식 인공지능 전문기업 <주> ‘인피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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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피닉스가 자체 개발한 X레이 영상 판독 기술로 환자의 질환을 살펴볼 수 있다. AI는 질환의 위험도를 색상으로 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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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와 인공지능(AI)이 바꾸고 있는 영역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의료’ 분야다. AI는 의료를 비롯해 법무, 기록행정, 산업공학 등 여러 분야에서 인간보다 평균적으로 나은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처음에는 시행착오가 많았지만 축적된 빅데이터들을 AI가 속속 기계학습하면서 AI의 수준은 기대 이상으로 높아졌다.

특히 컴퓨터 시각(비전) 기술이 빠르게 발달하면서 의학적 진단 등의 분야에서 전문가를 뛰어넘는 결과가 최근 나오고 있다. 지난달 7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메디신’에 실린 논문에서 AI 기계학습이 사람들의 얼굴 사진을 분석해 희귀 유전적 질환을 의사보다 더 잘 진단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뛰어난 시각 인식 AI 기술을 의료 영상 판독에 활용하는 대구기업이 있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에 입주한 연구소 기업 <주>‘인피닉스’다.

◆의료의 빈틈 AI가 메워

의사도 사람이라서 실수를 전적으로 피할 수 없다. 의사 1명이 너무 많은 환자를 맡게 되면 환자에게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기 버겁다. 정신적·육체적으로 담당의의 컨디션이 나쁜 날은 집중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특히 대학병원 수련의들은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은 의사들이 주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게 되는 조건을 만들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의사들은 근무시간이 있지만 환자의 병세는 주말이나 공휴일, 낮밤을 가리지 않고 언제라도 위급해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정규 근무시간이 지나면 모든 척도에서 의료 서비스의 수준은 낮아지기 마련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의사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6년 기준 한의사를 제외한 우리나라 임상의사는 인구 1천명당 1.9명으로 같은 기간 OECD 평균인 3.4명의 절반을 겨우 넘는 수준이다.

반면 국민 1명이 한 해 의사를 찾아 진찰을 받은 횟수는 2015년 기준 16.0회로, 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치를 기록했다. 평균인 6.9명보다 2.3배나 많았으며, 둘째로 진찰건수가 많은 일본(12.7회)보다도 3.3회 의사를 더 찾았다.

의사수가 적어 1인당 진료 횟수가 많고, 비인기 과목이나 지방 근무 의사 확보가 어려운 것은 의료계의 고질적인 문제로 꼽힌다. 지난해 12월 보건복지부가 주관한 ‘바람직한 공공보건의료 인력양성 방안 마련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정형선 연세대 보건과학대 교수는 ‘우리나라 의료인력 수급전망’이란 주제 발표를 통해 국제 비교 관점에서 우리나라 의료 인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의료 AI의 필요성이 높아진다. AI는 잠을 잘 필요없이 24시간 지치지 않고 환자 상태를 살필 수 있다. 감정의 기복이 없고 컨디션에 따라 집중도가 달라지지도 않는다. 인간 의사가 근무하지 않는 시간이나 과중한 업무 등으로 주의를 충분히 기울이지 못하는 틈을 인공지능이 메울 수 있다. 이는 의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실수 없이 환자들을 더 잘 치료할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복부·신장 등 연간 80만건 판독가능
정부 여러 부처들과 협력 실력 쌓아
유사성 높은 이미지 식별 능력 탁월
각종 국내외 대회서도 상위권 입상

우리나라 의사 수 OECD 절반 수준
“의료 서비스 수준 한층 끌어올릴 것
AI로 의료 사각지대 문제 해소 기대”



국내에서 AI 기술을 의료에 적용한 대표적인 사례는 영상 판독이다. AI가 흉부X레이선 검사 영상과 내시경, 초음파 영상을 보고 질환 등으로 의심되는 소견을 발견한다. 양질의 영상 데이터와 딥러닝(심층 학습) 기술을 이용해 크기가 작거나 다른 장기에 가려져 자칫 놓치기 쉬운 지점을 정확하게 찾아낼 수 있다. 많은 의료인과 공학자들이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지난해 대한의료인공지능학회도 출범해 활동하고 있어 의료 AI는 기술 보완을 거듭해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할 전망이다.

하지만 의료 AI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해외에는 의료 인공지능 학습을 위해 다양한 데이터가 축적돼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MIT 연구소는 중환자실 환자 수만명의 전자의료기록을 연구자에게 공개하고 있다. 이 자료는 의료 인공지능 개발에 활용되고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의료 데이터를 활용하는 데 제약이 적지 않다. 일례로 우리는 병원을 옮길 때마다 검사 결과를 CD-ROM에 저장한 다음, 새 병원에 가져다주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때문에 의료 데이터 활용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시각 인식 AI의 비전

2011년 설립된 인피닉스는 다양한 정부 부처의 R&D과제를 수행하면서 자체 기술력을 높였다.

먼저 대한산업보건협회와 함께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R&D과제를 수행하면서 AI 기술 적용 X레이 영상 판독 기술을 개발했다. 또 한국과학기술연구원(KAIST)과 DGIST, 한양대, 고려대, 경북대 등과 공동으로 AI 원천기술 개발을 위한 지능형 인터랙션 기술 연구개발을 수행했다. 산업통상자원부 R&D과제로 AI 기술적용 이미지 식별 기술도 개발했다.

이를 통해 유사성 높은 이미지를 식별하는 ‘중심 확장 알고리즘’을 내놓았다. 이어 DGIST 정보통신융합전공 김민수 교수의 AI 디버깅(오류를 수정해가는 과정) 기술 출자를 받으면서 인피닉스의 기술은 한단계 더 진보했다.

인피닉스의 기술력은 국내외 각종 AI 관련 대회 수상을 통해 입증됐다.

지난해 과기정통부가 연 ‘인공지능 R&D 챌린지 대회’에서 연세대와 서울대, KAIST에 이어 4등을 차지했다. 전국 114개 팀이 참가한 대회에서 상위권의 성적을 낸 것이다. 같은 해 서울에서 열린 ‘인공지능 국제 콘퍼런스’에서는 NVIDIA(AI 컴퓨팅 분야 선도기업)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미국 스탠퍼드대 주관으로 열린 기계 독해 경진대회 ‘스쿼드(SQuAD) 2.0’에서는 9위(2018년 12월 기준)에 올랐다. 이 대회에서 구글 AI Lap은 8위, 강원대는 18위, 카카오는 30위를 기록했다. SQuAD는 문서를 읽은 컴퓨터의 이해도를 질의응답으로 시험하는 것으로 딥러닝 기술 수준 평가 지표로 쓰인다.

현재 인피닉스의 AI는 연간 80만건의 X레이 영상 판독이 가능하고, 복부와 신장·간 질환, 유방암, 위내시경 등의 실시간 판독이 가능하다. 이러한 기술은 인피닉스와 기술 협약을 맺은 세브란스병원과 차병원, 계명대 동산의료원, 대한산업보건협회 등에서 활용할 예정이다.

인피닉스의 성장 비결은 ‘인재 영입’이다. 컨설팅과 마케팅 등 경영을 전공한 이인호 대표는 학벌과 나이 등에 연연하지 않고 직원을 채용하고 있다. 


강명균 AI개발팀장은 고등학생이던 2013년 삼성전자에서 개최한 창의력 올림피아드에서 한국대표로 출전했고, 이후 인텔코리아 VR엔진개발팀 연구원을 하다가 입사했다. 박규홍 이사는 서울시립대 전자공학 석·박사과정을 거쳐 AI 쪽을 줄곧 연구해 온 수재다.

또 인피닉스는 대구 경북지역 대학생들을 채용해 AI 학습의 중요 인력으로 성장시키고 있다. 이인호 인피닉스 대표는 “보통 AI 업체들은 회사 인력으로 KAIST나 포스텍 출신을 우대하는데 실상 직원으로 채용하면 기대치에 못 미치는 경우가 더러 있다. 학벌과 관계없이 회사에서 어떻게 성장시키느냐에 따라 역량이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인피닉스의 비전은 AI를 활용해 의료 서비스의 수준을 한층 더 끌어올리는 것이다.

“의료 기술이 날로 발전하고 있지만 의료 사각지대에 처한 이들은 여전히 많다. 몸이 아파도 비용이 부담돼서 검사조차 받지 못하는 어르신들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실력이 뛰어난 의료진이 수도권에 몰려있다는 인식 때문에 생겨나는 문제도 있다. 수도권 병원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 몇 달을 기다리다가 제 때 진료조차 받지 못하기도 한다. 상급 종합병원 의료진이 갖춘 능력을 넘어서는 AI가 있다면 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AI가 못 미더울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린 이미 AI의 능력이 인간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알파고와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의 대결을 통해 보지 않았나.”

글·사진=손선우기자 sunwo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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