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2.0] ‘극한직업’ 이병헌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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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2-15   |  발행일 2019-02-15 제43면   |  수정 2019-02-15
개인기 아닌 팀 플레이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영화’로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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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극한직업’ 촬영현장에서 이병헌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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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세요 병헌씨’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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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직업’ 포스터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한국영화 특유의 신파 설정이 빠진 코미디 영화가 이처럼 대박 흥행을 거둔 사례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14일 오전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개봉한 이 영화는 개봉 후 한 번도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내주지 않고 굳건히 지키며 누적 관객수 1천342만3천409명을 기록했다.

이제 이 영화는 2015년 개봉해 1천341만4천200명의 관객을 동원한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을 제치고 역대 한국 영화 흥행작 4위에 올랐으며, 이대로라면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1천425만7천115명), 김용화 감독의 ‘신과 함께: 죄와 벌’(1천441만931명)도 가뿐히 뛰어넘을 기세다. 영화 ‘극한직업’ 이야기다.

‘극한직업’은 범죄조직의 아지트 앞에 치킨집을 인수해 위장창업을 감행하면서 낮에는 치킨장사, 밤에는 잠복근무로 이중생활을 시작한 해체 위기의 마약반 형사들이 뜻밖의 대박을 터뜨리면서 본업인 수사보다 장사에 몰두하게 된다는 설정으로 닭을 팔기 위해 수사를 하는 것인지, 수사를 하기 위해 닭을 파는 것인지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 형사들의 모습에서 웃음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다.


‘과속스캔들’‘타짜’각색 참여 저력
첫 장편 연출작 ‘힘내세요 병헌씨’
독특한 코미디 감각 연출자 입소문

1천300만에 웃음 준 코미디
과장과 억지 없는 캐릭터간 밸런스
소소한 재미 안겨준 조연들 앙상블
힘빠진 한국 영화계에 던지는 울림



영화를 연출한 이병헌 감독은 코미디 장르에 특화된 인물이라 할 만하다. 장편영화 연출 데뷔 이전부터 강형철 감독의 ‘과속스캔들’과 ‘써니’, 그리고 데뷔 이후 ‘타짜: 신의 손’에 각색으로 참여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정용주 감독의 ‘네버 엔딩 스토리’, 박진표 감독의 ‘오늘의 연애’,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 김대웅 감독의 ‘레슬러’에도 이 감독의 인장을 확인할 수 있다. 2009년 제7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서 최우수 국내작품상을 수상한 단편영화 ‘냄새는 난다’를 연출한 후 만든 첫 장편 연출작 ‘힘내세요, 병헌씨’는 이미 독립영화를 만드는 이들 사이에선 소문난 영화였다. 감독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딴 영화감독 준비생 이병헌과 그와 함께 영화계 입성을 꿈꾸는 세 친구들의 이야기를 경쾌한 터치로 리얼하고 코믹하게 그린 작품으로, 2012년 제38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으며 개봉 전부터 관객들에게 입소문이 자자했다. 여느 극장용 장편독립영화들처럼 상영관을 몇 개 받지 못했지만 이미 “범상치 않은 코믹의 호흡”(이화정) 같은 평가를 받으며 독특한 코미디 감각을 지닌 감독의 출연을 알렸다.

충무로로 입성해 만든 두 번째 장편영화 ‘스물’은 감독이 20대 중반에 이미 완성해 처음으로 시나리오마켓에 올린 작품이었다. 전작이 가진 냉소적인 기운을 덜었지만 전작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현실적인 영화는 이제 막 자립의 길을 나선 스무살 세 친구가 별별 일을 다 맞닥뜨리며 시행착오를 겪는 이야기로 2015년 304만4천859명의 관객을 불러 모았다.

체코 코미디 ‘희망에 빠진 남자들’을 리메이크한 ‘바람 바람 바람’은 이병헌 감독 특유의 찰진 말맛을 살린 이른바 성인용 코미디였다. “인물들의 감정에 집중하며 영화를 만들었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관객들이 어떻게 느낄지 많은 고민을 하며 캐릭터의 관계를 만들어나갔다”며 캐릭터를 완성시키기 위한 남다른 노력을 했으나 흥행에는 아쉬운 결과(19만4천239명)를 얻었다. 하지만 “웃기는 게 목표가 아니라서 제대로 웃길 줄 아는 영화”(송경원)라는 평을 받으며 차기작에 대한 남다른 기대를 높였다.

‘극한직업’은 감독의 코미디 영화에 대한 남다른 연출력과 함께 배우들의 연기력 역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영화다. 주연이 다섯 명인 만큼 무엇보다 캐릭터 플레이와 케미스트리, 각 캐릭터 간 밸런스를 가장 중시했다는 이 감독의 말처럼 배우 류승룡, 이하늬, 진선규, 이동휘, 신예 공명의 과장과 억지 없는 연기가 자신의 일에 충실한 사람들의 애환까지 자연스럽게 그려낸다.

특히 류승룡은 그간의 흥행 부진을 이 한 편으로 만회했으니 개인적으로도 감회가 남다를 것이다. 악역으로 등장한 신하균과 오정세의 앙상블도 좋았고 신하균의 경호원 역을 맡은 장진희 역시 신 스틸러라 부를 만하다. 이 감독의 오랜 팬들이라면 감독의 인장 같은 배우들의 등장도 반가웠을 텐데 ‘힘내세요, 병헌씨’부터 함께 작업한 배우 양현민, 홍완표, 허준석을 발견하는 소소한 재미도 안겨준다.

사실 ‘극한직업’은 2015년 ‘한중 스토리 공동개발 프로젝트’에서 발굴한 이야기였다. 306편(한국 124편, 중국 182편)의 작품이 프로젝트에 접수되어 최종 선정된 20편(한국 12편, 중국 8편) 가운데 하나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콘텐츠 청년 창작 지원 사업’의 지원을 받은 신인 창작자(문충일)의 시나리오로서 무려 660여 편의 작품 가운데 44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정되었다.

이 시나리오를 어바웃필름 김성환 대표가 받아 2010년 박건용 감독의 ‘적과의 동침’을 함께한 바 있는 배세영 작가와 의기투합해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배세영 작가는 지난해 이재규 감독의 ‘완벽한 타인’의 시나리오를 쓴 작가로, 2007년 임영성 감독의 ‘사랑방 선수와 어머니’로 데뷔해 주로 코미디영화에 주력해 왔다. 김성환 대표 역시 투자와 제작을 거치면서 ‘과속스캔들’ ‘최종병기 활’ 같은 영화에 참여해온 20년 경력의 베테랑이다. 마약반 형사들이 치킨집을 차려 범죄조직을 소탕한다는 줄기는 초고와 같지만 완성된 영화의 캐릭터와 이야기 전개, 각양각색의 에피소드는 대부분 배 작가의 솜씨다. 영화 흥행에 덩달아 흥하고 있는 수원왕갈비통닭 역시 시나리오 작업을 수원에서 했다는 배 작가의 아이디어였다고.

‘극한직업’은 그간 신파와 억지 감동에 집착했던 한국 코미디영화뿐 아니라 지난해 내내 지지부진했던 한국영화계에도 던지는 울림이 적지 않다. 어깨에 힘 잔뜩 주고 망작들을 만든 감독들이 이제 그 어깨 힘 좀 풀고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이병헌 감독의 이야기에 관객들과 같이 귀 기울인다면 앞으로 사정은 좀 나아질 거 같은데. 이제, 개인기가 아닌 팀플레이다.

독립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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