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시대공감] ‘나영석 루머’로 드러난 지라시의 어이없는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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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2-15   |  발행일 2019-02-15 제22면   |  수정 2019-02-15
허술한 과정서 생긴 지라시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믿고
아님말고식으로 루머 즐겨
피해자의 삶은 만신창이돼
루머는 아예 안 믿는 게 상책
[하재근의 시대공감] ‘나영석 루머’로 드러난 지라시의 어이없는 실체
문화평론가

지난해 10월, 나영석 PD와 배우 정유미가 특별한 관계라는 정보지(지라시)가 나돌아 삽시간에 루머가 퍼졌다. 두 사람은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경찰은 ‘지라시’의 유통 경로를 한 단계씩 거슬러 올라가 마침내 5개월 만에 최초 유포자를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알고 보니 지라시는 두 갈래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첫째 버전 최초 유포자는 출판사에 근무하는 29세의 프리랜서 작가였다. 아는 방송작가로부터 들은 소문을 대화형식으로 가공해 지인들에게 전송했다. 몇 단계를 거쳐 이를 받은 IT업체의 32세 회사원이 이것을 지라시 형태로 재가공해 회사 동료들에게 전달했다. 이것이 다시 약 50단계를 거쳐 기자들이 모인 채팅방에까지 전달되는 등 폭발적으로 전파됐다는 것이다. 둘째 버전은 방송작가의 작품이었다. 동료 방송작가에게 들은 소문을 메신저로 작성해 다른 작가에게 전송했는데, 이게 약 70단계를 거쳐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고 한다.

방송계와 연관이 있는 작가들이 지라시의 진원지였다는 점이 놀랍다. 헛소문 피해를 당하는 사람을 직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사람들이 태연히 가해 행위를 한 것이다. 자신에게 전해진 정체불명의 대화형식 메시지를 굳이 지라시 형태로 재가공한 IT 회사원의 행동도 이해하기 힘들다. 이른바 지라시는 마치 업계 전문가들이 정보보고를 하는 듯한 형태의 문서여서 보는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믿게 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문서가 이렇게 어이없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들은 ‘소문을 지인에게 전했을 뿐 이렇게 문제가 커질 줄은 몰랐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 같은 모바일 인터넷 시대엔 소문을 지인에게 전달하는 행위도 중대한 범죄가 될 수 있다.

2016년엔 이승기가 지라시 피해를 당했다. 연상 메이크업 아티스트 여성이 이승기의 아이를 키우고 있으며 디스패치가 취재에 나섰다는 내용인데, 모두 다 거짓이었다. 경찰이 최초유포자를 잡고 보니 이동통신사 직원이었다. 그가 사내 업무 대화창에 지라시 형태의 글을 작성해 올린 것이 일파만파 퍼졌고, 메이크업 아티스트라며 사진이 노출된 여성은 최초 유포자의 동료직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2015년엔 이시영 지라시 사건이 있었다. 소속사 사장이 이시영 동영상을 만들었다는 등 내용이 디테일해 많은 사람이 그대로 믿었는데, 이 역시 거짓이었다. 기자와 국회 보좌관의 대학동문 모임에서 한 기자가 술자리 가십으로 이시영 이야기를 허위로 꾸며 말했는데, 그 말을 들은 다른 기자가 다음날 이를 지라시 문서로 만들어 11명의 기자가 있는 단체 대화방에 올리고 지인 2명에게도 전송했다. 이들이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해 한 달 만에 전국적으로 떠들썩한 사건이 돼버렸다.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로 허술한 과정을 거쳐 지라시가 만들어진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렇게 신뢰도가 떨어지는 정보인데도 사람들이 너무 쉽게 믿어버리는 게 문제다. 정보지 형태의 문서라서 믿는 것도 있지만, 자극적인 소문 그 자체를 즐기는 심리도 있다. 복잡하게 사실관계를 따지고, 사실이 확인될 때까지 판단을 유보하면서 답답함을 견디고, 피해자를 배려해 말조심하기보다 그냥 믿고 말하고 즐기기를 택하는 것이다. 자극적인 소문일수록 더 쉽게 믿고 더 쉽게 지인과 나눈다. 그러다 사실무근으로 밝혀지면 ‘아님 말고’로 정리하고 다른 루머 즐기기에 몰두한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의 삶은 만신창이가 된다. 루머 때문에 목숨을 끊은 사람까지 나타났다.

이젠 루머 유포가 범죄라는 인식을 확립하고, 지라시도 함부로 돌려봐선 안 된다. 지라시에는 맞는 정보도 있다. 하지만 앞에서 열거한 것처럼 어이없는 과정으로 만들어진 헛소문도 많다. 뭐가 맞고 틀리는지 구분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이럴 땐 아예 안 믿는 게 합리적이다. 공신력이 있는 언론사가 확인해주는 정보가 아닌 소문은 무시해버리는 것이다. 그래야 지라시 공화국의 폐해가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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