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설 민심은 국회를 개혁하라고 했다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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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2-08   |  발행일 2019-02-08 제27면   |  수정 2019-02-08
[조정래 칼럼] 설 민심은 국회를 개혁하라고 했다

설 명절이 지났다. 혹여 설을 거꾸로 쇤 사람들은 없었는지…. 설마 아직까지 미혼의 젊은이들에게 ‘결혼 언제 하나’ ‘취업은’ 등의 개념없는 성화와 질문 공세를 퍼부은 어른들은 없었겠지. 혹여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거나 정신적 화상을 입었을 리도 없을 터. 결혼과 취업이 명절의 금기어로 자리잡은 지 오래지만, ‘아재’의 노파심에서 안부를 물어 본다.

정치 논쟁도 이번 설을 기점으로 차례상 앞 단골 화젯거리의 지위를 상실하기 시작했다. 식상한 데다 무엇보다 유명인의 사생활 엿보기에 비해서는 턱없이 재미 없고, 자칫 임계치를 가늠하지 않거나 못하면 가족관계에 금이 가게 하는 고약한 폭탄이 되기도 하는 탓이다. 이제 명절 가족 사이 정쟁은 금물이거나 취급주의 품목쯤 된다. 좌와 우, 노와 소, 진보와 보수 사이 진영논리 또한 괄목상대해 부드러워졌다.

설 민심은 이처럼 복심(腹心)으로 침잠하고 있는 추세다. 부질없는 정치 얘기로 불필요한 감정싸움을 벌이기 싫고, 그럴 가치조차 찾기 어렵기에 아마도, 그러나 틀림없이 민심은 언제부턴가 잘 말해지지 않는다. 미움도 사랑도 없다는 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 민심 전하기는 여전히 아전인수 일색이다. 복심을 읽으려는 노력도 없이, 그저 지나가는 한 소리를 전체인 양 확대하고 자기 진영에 유리하게 견강부회한다. 민심 수렴과 분석이 언제쯤 오독(誤讀)과 수박 겉핥기 수준을 넘어서려나.

바야흐로 민심 정독(精讀)이 필요한 때다. 예년과 달리 정치 과잉을 경계하는 시민의 정치적 성숙을 목도하며 정치권의 미성숙이 더욱 도드라진다. 애증(愛憎)이 탈색된 시민의 침묵과 무관심은 정치인, 특히 국회의원에 대한 불신의 극치이자 정치권에 대한 사망선고다. 한국 사회 모든 분야가 진보하고 있는데 정치권만 제자리걸음이거나 오히려 뒷걸음질 친다. 개혁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는 정치권, 특히 대의·정당정치의 본산인 국회가 문제다. 다수 시민의 침묵은 국회를 개혁하라는 무언의 설 민심이다.

지금 여기, 국회가 지금 여기 잘 돌아가고 있냐는 질문은 개혁의 시급성과 공간적 특정성을 웅변하고 지칭한다. 투기와 투자, 감찰과 사찰, 적폐와 신적폐 등 정치적 행위에 대한 논란과 공방, 그리고 혐오가 난무하는 사이, 정치의 근·원경을 적나라하게 목도하게 된 우리는 급기야 근본으로 돌아가 정치권의 실체와 정체성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정치와 정치인은 도대체 우리에게 어떻게 소용되는 물건인가. 아예 눈을 감고 귀를 막는다면 몰라도, 두 눈 멀쩡히 뜨고 저 일탈과 퇴행들을 그대로 둬서는 안되겠다는 자각과 분노는 깊어지고 커진다. 개과천선과 셀프개혁은 되지도 않을 엉뚱한 ‘희망 고문’으로 판명난 지 오래다. 정치권을 방치해 온 자책만 우리의 머리를 쥐어뜯게 한다.

국회는 개혁의 주체적 지위에서 제발로 대상의 자리로 내려앉았다. 정치개혁 과제가 산적해 있지만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면, 그래서 대의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면 시민들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다. 개헌은 물론 선거제도 등 각종 개혁안이 공수표나 정치적 담합과 쇼로 드러나는 마당이라면, 국회의 주인인 시민이 직접 그라운드에 등장하는 게 최후의 수순이다. 국민 신뢰도가 2%에 불과한 국회라면 더욱 그러하다. 예컨대 선거제도 개혁이 국회 정개특위를 통한 합의안 도출이 도저히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공론화위에 맡기자는 말이다. 이는, 바로 ‘시민주권의회’ 등 직접민주주의 요소로 대의정치의 불임성과 국회의 무능력을 극복·보완하는 일이다.

1987년 쟁취한 직선제는 당시로선 긴요한 요체였지만, 그 이후 민주화는 다시 배가 고플대로 고프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의원들은 시민의 염원과 열망을 배신하는 4년 주기의 악순환을 연출한다. 우리의 거대 양당 체제에서 긍정하는 여(與)와 비판하는 야(野)가 처지를 바꿔가며 적대적 의존관계에 안주할 경우 거악(巨惡)은 대물림될 뿐 일소는커녕 제어도 불가능하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화에 대한 시민의 타는 목마름이 대의정치의 산실 국회의 개혁을 정조준하고 있는 것은 이처럼 선출된 대표들의 반복된 직무유기의 산물이다. 결코 우연이 아니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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