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투기와 투자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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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2-02   |  발행일 2019-02-02 제27면   |  수정 2019-02-02
[토요단상] 투기와 투자 사이

2013년 2월1일. 박근혜정부의 첫 총리지명자인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이 해명서를 내놨다. 부동산 투기 의혹에 대해서였다. 김씨의 두 아들은 서울 서초동에 대지 674㎡(약 204평)를 갖고 있다. 1975년 8월1일 매입했다. 김씨는 “모친이 손자들을 위해 400만원을 들여 사준 것”이라고 했다. 두 아들은 당시 8세, 6세였다. 서초동 법조타운 계획이 첫 보도(8월4일자 서울신문)된 것은 땅 계약 사흘 뒤였다. 실제는 77년 2월에 확정됐다. 그는 “서초동 땅을 살 때 개발 계획을 알지 못했고, 투기 목적이 아니었다”고 했다. 김씨는 이외에도 70~80년대 수도권 부동산 7곳을 매입했다.

2008년 2월엔 이명박정부 첫 여성부 장관 후보자인 이춘호씨가 투기 의혹에 휩싸였다. 이씨는 본인과 아들 명의로 된 아파트와 오피스텔, 단독주택 등 40건의 부동산을 갖고 있었다. 재산 신고액은 45억8천197만원이었다. 그는 “대부분은 선대로부터 상속을 받았거나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며 투기 의혹을 일축했다.

김용준 지명자와 이춘호 후보자는 부동산 투기 의혹을 강력 부인했지만 사퇴를 피해가진 못했다. “투기 목적이 아니었다”는 주장은 당시 야당(현재의 여당)의 비판과 여론의 칼날 앞에 무너졌다. 무엇이 투기이고 무엇이 투자일까. 손혜원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목포 땅 투기 의혹 후폭풍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글자 하나만 다른 두 단어의 개념은 왜 이렇게 논란을 빚고 있을까.

각종 사전류를 찾으면 찾을수록 더 헷갈린다. 극단적 사례만을 들어 설명하기 때문이다. 애매한 것을 가르는 기준은 과연 없는 것인가. 주식 ‘투자’의 귀재라면 흔히 미국인 워런 버핏을 꼽는다. 그의 멘토로 알려진 벤저민 그레이엄 교수는 ‘현명한 투자자’란 저서에서 차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투자는 철저한 분석 하에서 원금의 안전과 적절한 수익을 보장하는 것이고,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행위는 투기다.”

한국일보 채준 기자는 2015년 10월 기사에서 “성공하지 못한 투기자들이 성공한 투기자를 향해 ‘투기꾼’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썼다. 채 기자는 한국인이 흔히 ‘주식투자’ ‘부동산투기’라고 부르는 것은 거꾸로 된 것이라며 “(이는) 질시와 연민이라는 감정 때문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개념상 주식이 투기, 부동산이 투자라는 게 맞을 것이라는 입장으로 보인다.

손혜원 의원의 부동산 사모으기는 어디에 해당할까. 앞서 김용준 총리지명자와 이춘호 장관후보자의 중간 언저리에 있는 듯이 보인다. 증여를 통해 조카들에게 집을 사준 것과 그 어간에 매입주택이 목포시의 근대문화역사공간에 포함된 것은 김 지명자와 겹친다. 목포에만 25채 정도를 가족, 지인들이 사도록 한 것은 이 후보자에 가깝다.

벤저민 그레이엄의 시각에 따르면, 손 의원의 행위는 투기다. 본인 주장대로 목포 문화재거리 지정을 사전에 몰랐다면 ‘원금의 안전과 적절한 수익’은 보장될 리 만무하다. 손 의원이 사기 몇 년 전 해당 지역의 부동산 거래가 거의 없었던 점이 그 근거다. 문화재 지정을 사전에 알고 샀다면 벤저민 그레이엄식 투기 혐의는 면책이 된다. 다른 법을 어긴 것은 별개다.

채 기자는 주식에 돈을 넣는 것을 투기로 본다. 이런 관점이면 손 의원의 부동산 구매는 투자다. 문재인정부가 대선공약에서 훨씬 후퇴해 2017년 11월 발표한 공직(公職) 원천 배제의 기준은 ‘불법적 재산증식’이 드러나야 한다. 손 의원 행태를 대입해보면 ‘판단 보류’다. 조카에게 1억원을 증여해 목포 집을 산 것이 차명(借名) 거래였는지, 목포 적산가옥 매입을 전후해 국회에서 문화재거리 지정을 촉구한 것이 이해충돌 방지 의무 위반이었는지 등에 대한 조사의 결론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파로 나뉘어진 정치권은 그간 ‘내가 하면 투자, 네가 하면 투기’라는 식으로 싸웠다. 어떤 견해에 동의하겠는가. 기자 생활을 오래 했던 필자의 경험에 따른 결론은 “공적인 영역에서 활동했던 자가 그 기간 필요 이상의 재산을 샀다면 일단 투기 의심”이다.

최병묵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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