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전국지 아닌 중앙지가 맞다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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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2-01   |  발행일 2019-02-01 제23면   |  수정 2019-02-01
[조정래 칼럼] 전국지 아닌 중앙지가 맞다
논설실장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사업이 우여곡절 끝에 선정됐다. 중앙언론과 중앙집권주의자의 고질적 반대를 어렵사리 돌파했지만 비수도권은 개운치 않다. 논란의 불씨는 사그라진 것 같지만 여전히 꺼지지 않았다. 하여 이번 기회에 수도권 일극주의, 반(反) 지방적 이데올로기에 대해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지방 주민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또 박는 지방민들의 생존을 도외시한 중앙지들의 습관적인 딴죽과 투석을 고발하지 않고서는 지방의 존립이 우려스럽다. 전국지의 ‘국토불균형 보도’가 고질이 됐으니 중앙지나 수도권지로 불려야 맞춤하다.

일전 칼럼에서 나는 수도권에서 발행되는 신문을 통칭 중앙지가 아니라 전국지라고 해야 옳다고 쓴 바 있다. 같은 이치로 수도 서울 이외 지역에서 내는 신문들 또한 뭉뚱그린 지방지가 아니라 지역지라고 불려야 적실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요즘 전국지들이 하는 꼬락서니를 보자니 지금은 ‘중앙지’라고 해야 딱 맞다. 전국을 배포 대상으로 하는 신문이 어떻게 수도권의 이익에 충실하고 비수도권, 특히 추풍령 이남 남부권 사람들과 이들의 이해관계는 송두리째 무시하는지, 그러고도 온전히 신문을 판매하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인지 그 ‘X배짱’이 놀랍기 그지없다. 명실상부 중앙지라서 그러한가.

비수도권·남부권 주민·시민들이 밸도 쓸개도 없는 족속이라는 소리를 들어서야 되겠나. 지역 언론계 한 선배와 나는 2년6개월 전 중앙지 절독선언을 하고 ‘안티 조중동’이란 칼럼을 통해 동참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당시 중앙지들은 남부권·영남권신공항 추진에 대해 ‘고추나 말리는 지방공항’쯤으로 비하하고 신공항 백지화에 대해서는 ‘합리적 결정’ ‘제3의 항로’라는 등으로 정부의 역성을 들며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해댔다. 지방에 대한 몰이해와 편견으로 물든 신문들을 우리가 왜 봐야 하나. 더군다나 여전히 독자 위에 군림하고 가르치려 하며 진영 논리에 매몰돼 있는데…. 그들에겐 ‘안티 중앙지’가 약이다.

지난 시절 중앙지들의 부끄러운 행적, 권력과 짬짜미를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누워서 침뱉기일 망정, 고해성사를 하는 심정으로 비판의 칼날을 안으로 돌려보자. 남의 탓으로 돌리는 습성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게 ‘지방 탓’이다. 토호와 사이비 기자 단죄 시즌만 되면 자신들의 부정을 촌 기자들에게 덤터기 씌워 온 권언유착을 모른다고 하면 양심불량이다. 이젠 지방과 지방민들까지 그들의 안중에도 없으니 더 큰 일이다.

서슬퍼렇던 김영삼정부 초기, 사정(司正)의 불똥이 토호 손보기로 이어졌을 당시 사이비 언론인에 대한 철퇴도 예고됐다. 하지만 사이비 기자 척결은 태산명동 서일필, 유력지 몸통들은 건재한 채 꼬리 자르기에서 끝이 났다. YS정부는 언제든 다시 철퇴를 휘두를 수 있다는 으름장만으로도 언론의 기세를 잠재웠고, 그 과정에서 지방의 ‘기자 같지 않은 기자들’만 애먼 희생양이 됐다. 지방기자를 사이비 기자의 대명사로 만든 이러한 프레임은 아직도 중앙지 기자들의 대죄를 대속(代贖)하는 전가의 틀로 남아 있다. 나는 당시 한국기자협회장에게 ‘왜 중앙지 기자들의 큰 잘못은 쉬쉬하고 지방의 피라미들만 기자협회보에 특필하느냐’고 공개적으로 항의한 적이 있다.

호가호위한 서울 기자들이 설마 ‘눈 가리고 아웅’했던 흑역사를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지. 지방 기자들의 일부 일탈을 두호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청동거울에 감춰진 얼룩도 부인하고 싶지 않다. 참회하면 그만이지 분별의 손가락으로 차이를 가리키는 것은 도대체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제 눈의 들보를 못 보는 중앙지들의 도덕적 해이를 넘은 지방에 대한 언어도단적 폄훼, 무신경과 무개념에 크게 분노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거대한 분노만이 중앙지를 교정하는 유일한 통치약이 될 게다.

지방의 소멸을 걱정하는 지방의 아우성이 그들에겐 들리지 않는가. 지방이 멸망하면 수도권도 필망한다. 지방 무시는 국가균형발전 철학의 부재 증명이다.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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