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기사 울리는 ‘노쇼 갑질’ 생계까지 위협

  • 권혁준,서민지 수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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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30  |  수정 2019-01-30 07:22  |  발행일 2019-01-30 제5면
한 손님이 여러곳 ‘콜’ 선착순 경쟁
“이미 탔다” “한잔 더…” 허탕 빈번
택시비 등 생돈 쓰고 헛심‘속앓이’

대구에서 대리운전 기사로 일하는 김모씨(51)는 최근 한밤중에 난데없이 달리기 시합을 벌여야 했다. 한 손님이 여러 대리운전 업체에 전화를 걸어 가장 빨리 온 기사에게 운전대를 맡기려 했기 때문이다. 한 명의 손님이라도 더 받아야 한다는 절박감에 김씨는 쉼 없이 뛰어갔지만 결국 더 빨리 도착한 기사에게 손님을 빼앗기고 말았다. 김씨는 “약속 장소에 도착해 손님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손님에게 들은 대답은 ‘이미 탔어요’라는 말뿐이었다”며 “이는 손님이라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일종의 갑질”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조영한씨(63)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손님이 알려준 장소에 도착해 전화하니 ‘한 잔 더 하고 가겠다’며 대리운전을 취소해 버린 것. 조씨는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허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한창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시간대에 이런 일이 생기면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다”고 했다.

대리운전 노쇼(No-Show, 고객이 예약 취소를 하지 않은 채 예약 시간에 나타나지 않는 것) 고객이 늘면서 대리기사들이 허탕 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이 때문에 생계까지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대리운전 수요가 많은 연말연시 노쇼 고객은 무려 30~40%가량 급증한다. 박동겸 대구 번개대리운전 대표(53)는 “예약 손님이 정해지면 시스템상 최소 20~30분은 다음 콜을 받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기사들이 교통비를 써가며 손님에게 갔는데 노쇼를 하면 기사 입장에서는 적자가 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다른 대리기사도 “기본요금 1만2천원인 한 콜에 5천~6천원 정도 남는다. 대개 가까운 위치의 예약 전화를 우선적으로 받지만, 손님이 없을 땐 택시를 타고 먼 곳까지 가야 한다”며 “이런 경우 손님이 노쇼를 하면 대리운전비는 고사하고 택시비만 날려 오히려 손해를 본다”고 했다.

문제는 대리운전 업체나 기사가 노쇼 손님에게 손해청구를 할 수 없다는 점이다. 2016년 8월22일 대리운전 서비스 질 향상과 생계형 대리운전자 처우 개선 등을 주요 골자로 하는 ‘대리운전업법안’이 국회에 발의됐지만 아직도 계류 중이다. 시행령 및 시행규칙에 노쇼에 대한 수수료 강제 부과 등의 내용을 담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 업계에서는 하루빨리 법안이 통과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김종용 전국대리기사협회장은 “몇년째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을 하루라도 빨리 통과시켜야 이를 근거로 노쇼에 대한 제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손님들이 대리기사도 함께 사는 이웃이라는 사실을 한 번 더 생각한다면 노쇼로 고통받는 일은 크게 줄 것”이라고 했다.

권혁준기자 hyeokjun@yeongnam.com
서민지 수습기자 mjs858@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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