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혹독한 대가

  • 원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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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28   |  발행일 2019-01-28 제31면   |  수정 2019-01-28
[월요칼럼] 혹독한 대가
원도혁 논설위원

우리나라는 유달리 산·들판의 양지바른 곳에 무덤이 많다. 오랜 세월 지속된 매장문화 탓이다. 이제는 화장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어 다행스럽다. 무덤을 보노라면 ‘핑계없는 무덤 없다’는 말이 떠오른다. 사람이 죽어 묻히게 된 데에는 피치못할 사연이 없을 리 없다.

새해 벽두부터 부고가 답지한다. 연말 연시 강도높은 압박으로 신체에 치명상을 입은 불행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환갑을 앞둔 아까운 사람도 더러 있다. ‘이 세상에 나오는 건 순서가 있지만 떠나는 건 순서가 없다’는 옛말이 맞음을 절감한다. 평소 지병이 없어 건강해 보였는데도 환갑도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가버리다니…. ‘남의 일이 아니다’라는 위기감이 일순 엄습한다. 알아보면 대개 심장과 간 이상으로 급사한 경우가 많다. 심장·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 장기인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리 몸의 ‘A급 배터리’인 심장과 간을 잘 관리해야 한다는 경고를 숱하게 들었지만 허망하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다. 좋은 일에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따른다는 말이다. ‘좋은 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더라’는 경험칙이 증명한다. 실제로 좋고 기쁜 일 뒤에 안좋은 슬픈 일이 따라오는 경우가 적지않다. 살면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니 그 말이 꼭 맞다. 이를테면 배우자로 아주 부유한 사람, 아주 잘 생긴 사람을 만난 게 호사다. 잘 나고 돈까지 많은 상대와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들 바라고 소망하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부러워한 그들은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경우가 의외로 많지 않던가. 어느 한쪽이 젊은 나이에 죽거나, 이혼 등으로 결혼 생활에 파탄이 나는 경우다.

필자가 아는 어느 기업인은 프랑스 유명 여배우같은 미모의 아내에 큰 업체를 운영하고 있었지만 지난해 간경화로 채 예순도 안돼 별세했다. 우리가 모르는 스트레스가 그 기업인을 과음하게 만들었고, 지나친 알코올은 간을 망가뜨렸던 것으로 주변에서는 해석했다. 한 대학교수의 일생도 비슷하다. 3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맞은 아내는 어리고 외모가 빼어났다. 게다가 처가는 많은 땅을 보유한 대단한 재력가였다. 하지만 아내는 오로지 종교활동에만 전념했을 뿐 가정살림에는 관심도 없었다. 공주처럼 대접받으며 자라서 그런지 음식도 만들 줄 몰랐다. 사람좋고 활달한 그 교수도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나이 예순을 목전에 두고 치명적인 암에 걸려 2년여 투병끝에 결국 이 세상을 떠났다. 이 두 케이스의 남편들은 처음에는 주변 모두가 부러워하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말년은 혹독했다.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요,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며 건강을 잃으면 전부 다 잃는 것임을 우리는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우리가 만병통치약으로 숭배하는 재화나 미모는 때로는 죽음과 맞바꾸는 독으로 작용함을 알아야 한다. 젊었을 때는 그 오묘한 작용을 모르고 다들 광적으로 몰입한다. 그 묘한 이치를 알아차리고 해독제를 마련할 때는 이미 늦어버린 경우가 많다.

너무 일찍 일본 회초밥 맛을 알아버린 게 좋지 않더라는 한 기업인의 회고도 맥락을 같이 한다. 아버지의 철강 사업을 돕다가 대학생때 철강 판매 가게에 아침 일찍 나와서 청소하고 정리하는 일을 했다는 그다. 아버지 출근 전 철강을 팔아 생긴 공돈으로 대학생 신분이지만 비싼 일본식 초밥집을 드나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일찍부터 오리지널 고급맛에 익숙해지니 나이 들어서는 한국식 초밥은 못 먹겠더라는 거였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솔직한 고백이었다.

그래서 옛날부터 우리 선현들은 항상 후세에 남긴 금언으로 주의를 환시시켰다. 그 경고는 ‘좋은 일이 있더라도 경솔하게 굴지 말고 항상 진중하게 처신해야 한다’였다. 반지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글을 새겼다는 승자의 일화도 같은 맥락이다. 좋은 일, 즐거운 일 뒤에는 항상 혹독한 반대급부가 있다는 사실을 앞서 간 이들은 보여주고 있다. 주변 사태를 보고 나서야 세상 이치를 깨닫다니 너무 늦어 버린 것 아닌가.
원도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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