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사회적 고발과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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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26   |  발행일 2019-01-26 제23면   |  수정 2019-01-26
[토요단상] 사회적 고발과 양심
최환석 맑은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미국 할리우드부터 시작된 미투 운동으로 그동안 조직 내에 감춰져있던 인권말살의 비리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고 있다. 그동안 억압되어 있던 분노가 누군가의 용기로부터 시작하여, 권위주의적이고 폐쇄적인 조직 안에서 자행된 폭행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폭행을 자행한 것으로 드러나거나 의혹을 사는 사람들은 소시오패스 같은 사람들인가. 가능성은 아주 높지만 그렇게 단정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누가 그랬든 양심의 부재는 틀림없어 보인다. 소시오패스라면 더 말할 필요가 없지만,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왜 양심을 버렸을까.

조직이든 가정이든 이런 일이 만연한 곳의 공통점은 분명해 보인다. 권위주의가 지배하면서 폐쇄적인 사회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안에는 막대한 경제적 이익이 존재한다. 문제는 이익이 공정하게 배분되는 것이 아니라 폐쇄된 시스템을 타고 흐른다는 것이다. 이것 아니면 먹고 살 길이 없다고 생각되면, 즉 불평등이 심한 사회라면 어떤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입을 다무는 것이 유리해진다. 내가 저항하거나 고발을 해서 그들의 행동이 만천하에 드러난다고 해도, 나는 그 사회에서 매장되거나 발을 못 붙이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미투 운동을 비롯한 사회고발 운동의 본질은 폐쇄된 사회적 시스템의 왜곡된 문화를 고발하고 시스템을 더욱 투명하게 만들려는 약자들의 시도다.

우리는 사람이 항상 일관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최후통첩게임’이나 ‘독재자 게임’처럼, 한 사람에게 일정한 돈을 주고 상대방에게 얼마를 나눠줄지 결정하는 심리실험에서, 놀랍게도 대부분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결정을 내리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는 충분히 공정하고 이타적이었다. 단 누가 지켜보는 한. 연구자들은 실험실 상황을 벗어나게 되면 뜻밖에도 이기적인 본성을 드러내면서 위선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즉 누가 관찰하지 않거나 단기적인 만남이라면 느닷없이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것에 우선을 둔다. 가령 자율판매대 앞에 사람의 눈 사진을 붙여두면 양심적인 행동이 눈에 띄게 늘어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 사진을 보니 누군가 자신의 행동을 엿보는 것 같아서 돈을 지불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아무도 지키는 사람이 없어도 돈을 지불한 이유는 자신이 양심적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렇게 누가 보지 않으면 쉽게 비열해질 수 있는 위선적인 존재다.

사회적 반성과 함께 투명한 시스템을 갖추는 일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폐쇄된 조직 내에서 이익을 향유하던 자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키거나 화제의 초점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아니면 내부고발자를 배신자로 몰아간다. 그러면 용기 있는 고발에는 오히려 고통스러운 현실이 추가된다. 그러다 안 되면 문제되는 당사자만 책임지고 물러나면서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한다. 그리고 대중에게 이런 일이 반복되니까 피로감이 쌓이지 않느냐며 언론을 통해 세뇌를 시도한다. 그래서 이런 시도가 단기간에 시스템을 극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 가령 과거 민주화운동의 경우, 군부정권을 무너트리고 바로 민주주의로 돌아선 것이 아니라, 같은 집단의 동료에게 정권이 넘어갔을 뿐이었다. 그냥 의자만 옆으로 한 칸씩 옮겨 앉았다.

그러나 시스템은 지속적인 요구에 조금씩 반응을 한다. 우리가 가진 민주주의적 가치는 하루아침에 넘어온 것이 아니다. 대중의 지속적인 요구와 투쟁, 심지어 누군가는 목숨을 잃어가면서 조금씩 얻어온 소중한 가치다. 그러므로 사회고발 운동이 우리 사회 곳곳에 포진한 권위주의와 폐쇄성을 극복하는 계기가 되려면,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사회적 지지를 받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 이런 적폐를 청산하자고 우리들이 촛불을 들고 일어섰던 것 아닌가. 앞에서 보았듯이 시스템이 투명해질수록 우리들이 가진 위선의 본능은 억압되며, 공정하고 이타적인 본능이 자리 잡게 된다. 양심이 지켜진다는 뜻이다. 가해자가 된 당사자는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정말 억울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투명한 시스템은 이런 억울한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최환석 맑은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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