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2.0] 동물권 소재 ‘미안해 고마워’ 재관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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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25   |  발행일 2019-01-25 제43면   |  수정 2019-01-25
반려동물,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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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사건이었다. 우리나라 3대 동물권 단체인 ‘케어’에서 지난 4년 동안 구조한 동물 수백 마리가 무분별하게 안락사 당했다는 폭로가 내부 제보자에게 나온 것이다. 지난달 11일 SBS 보도본부 이슈취재팀, 한겨레 사회부, 뉴스타파, 진실탐사그룹 셜록에서 동시에 터져나온 보도에 따르면 ‘케어’가 2015년 초부터 2018년 9월까지 200여 마리의 구조된 동물을 안락사시켰으며 이 가운데 상당수는 병들거나 아프지 않은 건강한 개체였다고 한다. 이 같은 안락사는 명확한 기준 없이 단지 보호소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개체수 조절을 목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케어’의 대표 박소연의 지시와 묵인 아래 이루어졌다는 제보였다. 박 대표는 2011년 이후 안락사는 시행하지 않는다고 공언한 바 있다.

‘케어’는 버려진 동물이나 고통받고 있는 동물을 구조한 뒤, 치료를 거쳐 입양시키거나 보호하는 것을 주된 사업으로 하고 있으며 시민의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케어 홈페이지에 따르면 케어가 동물 구조와 보호활동을 통해 받은 후원금은 지난해 20억원가량이다. 특히 다른 단체들이 손대기 어려운 대형 구조 활동을 많이 벌이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아왔다. 17년 동안 동물 구조 활동을 벌여온 케어의 박소연 대표는 각종 방송의 동물 프로그램에 다수 출연하면서 이른바 ‘학대받는 동물의 수호천사이자 대변자’로 떠오른 인물이다.


4人 감독 4개 스토리 ‘미안해 고마워’
아버지가 남긴 반려견 통한 화해과정
노숙인·유기견 슬프고 아름다운 동거
여섯살 소녀에게 닥친 생애 첫 이별
티격태격 부녀와 사랑스러운 고양이

3대 동물권 단체 ‘케어’박소연 대표
개체수 조절 목적 안락사 사건 충격

마음위로 치유해주는 친구같은 존재
학대도구·유기로 고통받는 일 없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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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효진과 유기견 구조활동 중인 박소연 대표.

알려진 것처럼 ‘케어’는 동물권 단체다. 다소 낯설 수 있는 동물권(動物權, Animal Rights)은 저 유명한 철학자 피터 싱어의 책 ‘동물 해방’에서 처음 등장한다. 이 책을 통해 잘 알려진 개념 가운데 하나가 ‘종 차별주의’인데,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의 원칙에 비추어볼 때 행복이나 고통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신경계가 발달한 생물체가 인간에 비해 차별받을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 오랫동안 개나 돼지를 인간보다 못한 것으로 본 것은 과거 인종이나 성별 등을 두고 차별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 하여 인간이 아닌 동물 역시 인권에 비견되는 생명권을 지니며 고통을 피하고 학대 당하지 않을 권리가 바로 동물권이다. 동물이 하나의 돈의 가치로, 음식으로, 옷의 재료로, 실험 도구로, 오락을 위한 수단으로 쓰여서는 안 되며 동시에 인간처럼 지구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개체로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피터 싱어는 말한다.

동물이 등장하는 영화는 드물지 않다. 그러나 동물권을 소재로, 혹은 전면에 내세운 영화는 드물다. ‘미안해, 고마워’는 한국 영화 가운데 동물을 대상화하지 않는 그런 드문 영화 가운데 하나다. 모두 네 명의 탁월한 감독들이 만든 네 편의 단편 소품들이 차례로 펼쳐진다.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선물을 담은 송일곤 감독의 ‘미안해, 고마워’는 죽은 아버지가 남기고 간 반려견을 통해 아버지와 딸의 화해 과정을 차분하게 그린 한편의 풍경 같은 영화다. 영화 내내 조용하고 잔잔한 이미지들로 반려견을 통해 떠나간 아버지와 화해를 할 수 있었던 주인공처럼 관객들도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갈 곳 없는 주인공의 유일한 친구를 그린 오점균 감독의 ‘쭈쭈’는 노숙인과 유기견을 연결해주는 ‘노숙인 반려견 분양 프로그램’을 통해 눈높이를 맞추는 공감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노숙인과 유기견의 동거는 위기에 부딪치지만 곧 노숙인은 그저 존재로 자신을 채워줬던 유기견이 남긴 삶의 의지를 잊지 않는다.

6세 소녀에게 찾아온 생애 첫 번째 이별을 보여주는 박흥식 감독의 ‘내 동생’은 아역들의 자연스럽고 깜찍한 연기가 어리고 순수했던 시절에만 허락된 마법 같은 소통의 시간을 선사한다. 특히 여섯살 아이의 눈높이에서 강아지와의 특별한 교감을 담아낸 에피소드는 네 편 가운데 가장 예쁘고 애잔하다. 티격태격 부녀의 서툰 화해를 다룬 임순례 감독의 ‘고양이 키스’는 사투리로 티격태격하는 부녀의 모습이 주는 웃음만큼이나 고양이들의 조심스럽고 사랑스러운 몸짓을 보는 재미를 주면서도 서늘한 현실 포착을 잊지 않는다. ‘미안해, 고마워’의 한 에피소드를 연출했을 뿐 아니라 제작 총지휘까지 맡은 임 감독은 2004년 자신과 함께 지내던 반려견이 집을 나가자 백방으로 행방을 쫓던 와중에 당시 자신의 반려견과 비슷하게 생긴 유기견을 구조하기 위해 애쓰던 카라(KARA)의 열혈회원과 자주 마주치게 되면서 유기견들의 열악한 환경과 상황을 알게 되어 KARA의 명예이사 제의를 수락한데 이어 2009년부터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임 감독은 “펫숍에서 사게 된다고 봤을 때 종견이나 모견이 계속 교미하고 출산하는 애들은 철장에 갇혀서 평생 출산만 한다. 새끼들도 계속 팔려나가는 게 아니기도 하고, 태어난 아가들은 빨리 엄마에게서 떼어내진다. 8주 모유를 먹어야 하는데 3~4주 때 강제로 떼어낸다. 그러다 보니 병에 잘 걸리고 치료비는 들고 그래서 버리고 악순환된다. ‘사지 말고 입양하는 것’은 사실 굉장히 중요한 캠페인인 것 같다. 예쁜 강아지를 사기 위해서 고통받는 존재들을 위해서라도 보호소에서 입양하는 것이 좋다. 강아지 번식 공장뿐 아니라 고양이도 마찬가지다. 종견과 모견이 열악한 철장 안에서 출산하는 것처럼 분양되지 않는 아가들은 굉장히 비참한 운명을 맞게 된다. 싸게 몇천 원에 팔려가기도 하는데 펫숍은 없어져야 되고 공장도 없어져야 한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혹시 박소연 대표는 이 영화를 보았을까. 아니면 타 동물권단체 대표가 제작한 영화라 애써 피해왔을까. 이번 사건이 동물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면 영문도 모르고 죽어간 동물들에게 속죄가 될까. 일찍이 평화운동가 마하트마 간디는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성은 그 나라의 동물들이 어떻게 대우받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박소연 대표와 ‘케어’를 믿었을 많은 후원자들, 그리고 그들이 아낌없이 후원할 수 있게 한 동물들, 그 동물들을 생각한다. 그들이 다시는 같은 모습으로 세상에 오지 말길.

(독립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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