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한강과 낙동강, 수도권과 영남권 사이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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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25   |  발행일 2019-01-25 제23면   |  수정 2019-01-25
20190125
논설실장

조명래 환경부 장관의 최근 행보가 입방아에 올랐다. 지난 17일 봉화 영풍석포제련소를 방문한 조 장관은 주민과 환경단체의 면담요청을 묵살한 채 석연찮은 이유로 일정을 ‘비공개’로 일관한 탓이다. ‘갈등과 오해의 소지를 피하고자’ 했다면 오히려 공개를 해야 정말 오해를 사지 않을 터인데, 궁색한 변명도 모자라 예정됐던 구미 해평취수장 방문을 전격 취소하는 바람에 장세용 구미시장 등 지역 기관장들의 발걸음을 돌리게 했는가 하면 토론회조차 비공개로 진행하면서 비판을 자초했다. 조 장관의 ‘깜깜이 행보’가 지역 여론의 도마에 오르는 건 당연지사, ‘왜 왔니’라는 의문이 제기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이해가 첨예하게 엇갈릴수록 현장의 생생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게 정부 부처 수장으로서 마땅한 행정행위이자 올바른 처신 아닐 것인가. 이처럼 조 장관의 미심쩍은 이틀간의 행보가 석포제련소의 요청에 응한 것이 아니라면 그 어떤 해명도 변명에 불과하다. 대구지방환경청이 주말에 이례적으로 보도자료를 통해 밝힌 ‘빠듯한 일정 때문’이라는 이유는 지역민을 두 번 바보로 만드는 거짓말에 불과하다. ‘차라리 오지를 말지’란 볼멘소리와 원성이 터져나와야 하는 건 당연하다. 석포제련소 환경오염, 취수원 이전, 보 개방 등 지역현안에 정책 비전 제시는 고사하고 지역민의 기대감을 배신하며 억측을 낳고 불신만 더했기에. 다른 지역, 특히 수도권에서 이런 괴상한 행보를 보이고도 무사할지 못내 아쉬움을 남기는 대목이다.

정부와 고위 공직자의 지방 홀대와 무시는 어제오늘에 형성된 습(習)이 아니라서 새삼스러울 건 없다. 문제는 당하는 사람들의 의연한(?) 자세와 태도 역시 여전하다는 사실이다. 우롱을 당하고도 모르거나 알고도 모른 체하고 애써 외면하며 대인배인 척 자위하는 촌놈의 처신에 이골이 난 터, 분노하고 대거리를 해야 할 때와 기회를 매양 놓치니 무지렁이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거다. 생업에 바쁜 장삼이사야 그렇다 치고, 입만 열면 지역과 봉사를 내뱉곤 하는 지역의 토호 정치인들은 다 어디에 숨었나. 조 장관의 비밀행보에 대해 비판하거나 사과를 요구한 지역 정치인은 눈을 씻고 봐도 뵈질 않으니 임포텐스 지역정치권이라 선고를 받아도 틀리지 않다.

강이라고 다 같은 강이 아니다. 한강은 귀하고, 낙동강은 다음으로 귀하다. 사람도 마찬가지. 수도권 대 비수도권 사이, 지정학적 입지에 의해 사람의 가치가 다르게 매겨진다. 오래된 고질적인 중앙집권주의, 수도권 일극주의의 일그러진 유산이다. 다산 정약용은 유배지 강진에서 자녀들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가세가 기울어져 견디기 어렵더라도 한양 사대문을 벗어나지 말라고 훈화했다. 정보와 지식, 교육과 권력이 집중된 한양에 버티고 있어야 빈한한 와중에도 그나마 사람 구실을 할 기회가 많아진다는 조언이었다. 그로부터 200여년이 흐른 ‘지금 여기’도 예나 다르지 않다. 국가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은 선산 지키는 굽은 나무들의 메아리 없는 아우성과 불임의 몸짓으로만 계속되고 있을 뿐이다.

남한강과 북한강, 소위 수도권 수계는 왜 1급수로, 낙동강은 2급수로 관리돼야 하는지 이제 정부가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석포제련소가 한강 수계 상류에 위치해 있었더라면,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수민(水民)들이 어떤 저항의 몸짓을 보였을지, 정부는 어떤 대책을 세웠을지 가늠 이전에 불을 보듯 뻔하다. 만약 조 장관이 수도권에서 권위주의 시대의 순방·시찰처럼 지역 기관장들이 도열한 가운데 브리핑이나 받고 사라졌더라면 아마도, 그러나 틀림없이 온전하지 못했을 거다. 당장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질타에는 머리를 조아려야 했을 것이고 지방정부 수장들에게도 사과를 해야만 했을 거다.논설실장

정부와 정치권의 지방 하대는 일정 부분 지방의 자업자득의 결과로 봐야 한다. 현실인식이 정확해야 맞춤한 방책도 마련될 수 있다. 한강과 낙동강 사이, 수도권 수민과 비수도권 영남 수민 사이 등급과 차별은 엄존하고, 앞으로도 그 간극이 좁혀지지 않으리라는 우울한 전망이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영남권 수권(水權)이 홀대받는 권리 위에 잠까지 자고 있는 형국, 설상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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