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승자독식에 말리고 싶소?

  •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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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24   |  발행일 2019-01-24 제31면   |  수정 2019-01-24
[영남타워] 승자독식에 말리고 싶소?
이창호 경북부장

몰아 보는 내내 시쳇말로 ‘진심 소름’이다. 시청률 20%를 넘긴 드라마 ‘SKY 캐슬’은 소문값을 했다. ‘서울공화국’ 상위 0.01% 로열패밀리의 극단적 에피소드가 혀를 내두르게 했다. 드라마는 자식을 서울대 의대에 집어넣기 위해 수단·방법 안 가리는 부모들의 일그러진 ‘민낯’을 그렸다. 자식의 사람 됨됨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관심 밖이다. 오로지 부와 권력·명예를 대물림하는 게 그들의 지상 과제다. 결국 뒤늦은 후회와 함께 파국(破局)으로 치닫는다. 드라마가 던져준 메시지는 ‘승자독식’에 대한 경고다. 드라마보다 더한 게 현실 속 승자독식이다. 지난해 서울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 사건은 승자독식이 부른 우리 교육계의 아픈 자화상이다. 먼 데 볼 것도 없다. 지난해 늦가을 구미 현일중·고 경시대회 시험지 유출 사건도 같은 범주다. 우월적 위계(位階)를 무기로 ‘내 새끼만 잘 되게 하려 한’ 승자독식의 폐단이다.

새해벽두 또다른 승자독식에 심기가 불편하다. 부산·울산·경남이 뭉쳐 가덕도 신공항사업 재추진(김해공항 확장 백지화)에 나선 것을 두고서다. 이를 주도하고 있는 부·울·경 광역지자체장은 모두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다. 이미 지난해 지방선거 직후 조짐이 보였다. 처음엔 온도 차가 있었다. 오거돈 부산시장은 이미 지방선거에서 대놓고 ‘가덕도 재추진’을 내걸었다. 김경수 경남도지사·송철호 울산시장은 결이 조금 달랐다. ‘김해신공항 확장’이 소음 문제로 워낙 말이 많으니 다시 꼼꼼히 살펴보겠다는 정도였다. 그런 세 사람이 새해 보란 듯 김해신공항 백지화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명백한 패권주의요, 승자독식주의다. 같은 정치 집단·인접 지역을 이유로 패거리를 짜 자기들만 독식하려는 심보다. 수도권 패권주의를 그토록 욕하면서도 정작 자기들은 수도권급(級) ‘PK 패권주의’를 기도하고 있다. ‘서울공화국’ 아래 ‘PK 공화국’을 만들 욕심인 게다. 그 꿈을 이루는 데 가덕도 신공항만큼 좋은 게 없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신중하지 못한’ 발언이 파장을 키웠다.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선(先)추진을 전제로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용인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당장, 부산이 ‘이게 웬 떡이냐’는 분위기다. 이 도지사 발언이 가덕도 신공항 추진에 힘을 보태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곳 언론은 ‘PK와 TK 상생’ ‘과거와 다른 포용심’ ‘경북도지사 조건부 찬성’ 등으로 이 도지사 말을 포장했다. 반면 대구·경북에선 ‘누구 좋은 일 시키느냐’며 볼멘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이 도지사의 ‘가벼운 입’에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가덕도 신공항이 향후 비수도권에서 어떤 블랙홀이 될 지, 또 조건부 허용 발언이 부산·경남에서 어떻게 요리될지 정녕 모르고 한 말인가. 참으로 실망스럽다.

이 도지사의 생각은 불과 며칠 사이 나온 것은 아닌 것 같다. 이미 지난해 지방선거 이후와 이달 초, 오 부산시장에게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을 도와달라”며 가덕도 조건부 허용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얘길 굳이 이 도지사가 먼저 제안했어야 했나. 정부·TK 눈치 보며 가덕도 재추진을 염원해 온 오 시장이 먼저 이 도지사에게 사정했어야 할 얘기다. 가덕도는 허브 공항 입지로 부적절하다는 분석이 이미 나와 있다. 당연히 갑갑한 쪽은 부산인 것이다. 또 이런 얘기를 언론에 흘리더라도 통합신공항 사업을 주도하는 권영진 대구시장이 먼저 하는 게 상식적이다. 통합신공항을 받는 입장인 이 도지사가 먼저 얘기한 것은 경우에 맞지 않다. 덧붙여 이런 민감한 내용일수록 이 도지사와 권 시장이 함께 공개석상에서 대구·경북민에게 공식 발표하고 의견을 물었어야 옳았다. 거듭 지적하지만 ‘조건부 가덕도 허용론’ 표명은 성급하고 위험하다. ‘PK 승자독식’에 말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창호 경북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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