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We all lie’ (우리 모두 거짓말을 한다)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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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21   |  발행일 2019-01-21 제31면   |  수정 2019-01-21
[월요칼럼] ‘We all lie’ (우리 모두 거짓말을 한다)
박규완 논설위원

‘We all lie’. JTBC 드라마 ‘SKY 캐슬’의 엔딩곡이다. 괜찮은 엔딩곡은 묘한 흡인력이 있다. 드라마는 다음 회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영화는 ‘N차 관람’을 유인한다. 필자의 본방사수도 ‘We all lie’란 엔딩곡이 좋아서였다. ‘We all lie’는 추억의 영화·드라마 엔딩곡까지 소환했다. 한땐 무협영화 ‘와호장룡’의 엔딩곡 ‘A love before time’을 무한 반복해 들었고 영화도 여러 번 봤다. ‘A love before time’은 작곡가 탄둔과 가수 코코리를 스타덤에 올린 작품이기도 하다. 6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던 1999년 MBC 드라마 ‘허준’의 엔딩곡 ‘불인별곡’은 조수미가 불러서 더 화제가 됐다. 임을 보지 않곤 참지 못한다는 불인지심(不忍之心)에서 따온 제목이다. 이탈리아 영화 ‘형사’의 엔딩곡 ‘Sino me moro’는 ‘아모레 아모레 아모레 미오’란 첫 구절이 제목보다 더 알려졌다. 농염한 목소리의 주인공 알리다 켈리는 당시 여고생이었다고 한다. ‘아모레’ 화장품의 브랜드 네이밍도 이 노래에서 영감을 얻었다나.

‘We all lie’. 우리말이 하나도 나오지 않지만 작사·작곡가와 가수가 모두 한국인인 토종 OST다. We all lie. 너무 평범한 말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거짓말이 일상이 된 세태를 농밀하게 녹여낸 아포리즘 같기도 하다. 그렇다. 우린 모두 거짓말을 한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도 모니카 르윈스키와 추문이 처음 불거졌을 땐 “성관계를 갖지 않았다”며 딱 잡아뗐다. 국회 파견 판사에게 재판 청탁을 한 것으로 알려진 서영교 의원도 의혹을 부인했다. 미국 희극배우 제리 사인펠드는 “섹스 도중에도 거짓부렁을 늘어놓는 게 인간의 속성”이라고 했다. 누구에게나 ‘거짓말 유전자’가 내재돼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We all lie.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하면서 살까. 런던과학박물관이 3천명의 남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영국 남자는 1년에 1천92번, 영국 여성은 728번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 폴 에크먼 교수의 조사에선 하루 200번 정도 거짓말을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일상의 소소하고 하찮은 습관성 거짓말까지 다 포함한 때문일 게다. 상습적으로 거짓말하는 직업군엔 판매직 점원·정치인·변호사 등이 포함됐다. 다산 정약용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도 의미 있는 구절이 나온다. ‘고관대작이라도 그들이 하는 말을 공평하게 검토해보면 열 마디 중 일곱 마디가 거짓이더구나.’

We all lie. 한데 장삼이사(張三李四)와 공직자나 정치인의 거짓말은 그 무게와 파장이 다르다. 이명박정부 당시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영남권 신공항을 반드시 건설하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족히 10번은 넘을 게다. 그런데 웬걸. 2011년 전격 백지화를 선언했다. 고위공직자가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셈이다. 캐나다에서 가이드 폭행으로 망신살이 뻗친 박종철 예천군의원도 “주먹질은 하지 않고 손톱으로 긁었다”며 뻥을 쳤다가 CCTV 영상이 공개되면서 들통났다. 역시 거짓말엔 동영상이나 녹취파일이 쥐약이다.

We all lie. ‘We all lie’에 나오는 가사처럼 우린 너무 쉽게 거짓말을 한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국회 청문회에서도 법정에서도 언론 인터뷰에도 거짓말이 난무한다. 그리곤 세간의 이목을 모은 비리나 갑질, 성폭행 사건은 곧잘 진실게임으로 비화된다. 육군 참모총장과 만난 청와대 행정관의 인사서류 분실 장소만 해도 카페인지 술집인지 버스정류장인지 승용차 안인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We all lie. 거짓말도 가공하고 정제(精製)한다. 더 팩트처럼 더 실화처럼 꾸미기 위함이다. 드라마 ‘SKY 캐슬’에서 호주 은행장의 딸이라고 속인 한서진(염정아)이 “호주엔 은행이 많아 은행장의 위상이 한국 같지는 않다”고 한 대목이 진화한 거짓말이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세련된 거짓말을 하기 위해 잔머리를 굴리고 있을지 모른다. 고관대작의 말조차 70%가 거짓이라고 하지 않았나.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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