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 투자배급사, ‘빅4’에 도전…영화판 지각변동 오나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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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21   |  발행일 2019-01-21 제23면   |  수정 2019-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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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투자배급사의 지각변동이 예고된다. 영화계에 신규자본이 유입되면서 몇몇 회사들이 영화 투자배급업에 뛰어든 것과 때를 같이 한다. 지금까지 국내 투자배급사는 CJ엔터테인먼트·롯데엔터테인먼트·NEW·쇼박스 등 4개 대형 배급사와 메가박스 플러스엠·리틀빅픽처스, 그리고 워너·디즈니 등 해외 직배사들이 서로 공존하는 형태였다. 여기에 탄탄한 자본력과 인적 구성으로 무장한 신생사들이 가세하면서 영화시장은 춘추전국시대를 맞았다.

◆투자배급사의 지형을 바꾸다

영화시장에 새롭게 뛰어든 신생 투자배급사는 메리크리스마스·에이스 메이커·셀트리온 엔터테인먼트·키위미디어 등이다. 기존 영화 투자배급 사업 외에 드라마, 웹툰, 웹소설 등 다양한 매체로의 개발 가능성을 열어두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먼저 메리크리스마스는 유정훈 쇼박스 전 대표가 지난해 4월 중국 화이브라더스의 투자를 받아 설립했다. 좋은 아이템을 기획·개발해 이를 영화, 드라마, 웹툰, 게임 등 다양한 매체에 활용하겠다는 취지로 출발했다.

메리크리스마스는 지난 9일 첫 작품으로 내놓은 ‘내안의 그놈’의 흥행 호조로 산뜻한 출발을 알렸다. 박성웅·진영 주연의 코믹극 ‘내안의 그놈’은 최근 베트남 개봉(18일)과 함께 일본과 대만, 인도네시아에 판매되는 등 긍정적인 신호를 주고 있다. 또 화류계 종사자들이 법 위에 있는 권력자들에 맞서는 이야기를 그린 ‘양자물리학’(주연 박해수·서예지)과 치매 노부부의 사랑을 다룬 ‘로망’(이순재·정영숙)도 상반기에 개봉한다. 200억원 규모의 SF물 ‘승리호’의 투자배급도 확정했다. ‘늑대소년’(2012) 조성희 감독과 송중기의 재회로 화제를 모은 이 작품은 우주를 배경으로 별과 별을 오가면서 벌어지는 모험극이다.


자본력 무장 후발주자 시장 가세
빅4·직배사 공존체제에 새바람
관객 선택지 늘어 긍정적 긴장감

세대공감 아이템 등 발굴이 관건
제살깎기식 경쟁 불가피 우려도



에이스 메이커는 화장품 브랜드 AHC를 1조원에 매각한 이상록 전 카버코리아 회장의 투자를 받아 정현주 전 쇼박스 투자제작본부장이 설립한 회사다. 올해 라인업만 5편일 정도로 풍부한 자본력이 바탕이 된 공격적인 행보가 눈길을 끈다. 라인업의 면면을 살펴보면 조직폭력배 보스와 범인을 잡으려는 강력반 형사가 손을 잡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인 ‘악인전’(마동석·김무열)이 있고, ‘클로즈 투 유’(조진웅·배수진)는 진실을 찾아 나서는 형사의 이야기로 배우 정진영의 감독 데뷔작이다. 또 폐업 직전의 동물원을 살리기 위한 분투를 그린 ‘해치지 않아’(안재홍·강소라), 악령이 들어온 형과 그를 구하려는 동생의 이야기인 오컬트 영화 ‘변신’(성동일·백윤식), 정우·김대명을 앞세운 형사들의 이야기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 등이다.

배우 이범수가 영화 부문 대표를 맡고 있는 셀트리온 엔터테인먼트는 바이오 기업 셀트리온 홀딩스의 자회사다. 2016년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투자사로 참여한 경험이 있지만 KBS ‘왕가네 식구들’, JTBC ‘청춘시대’, tvN ‘식샤를 합시다’ 등 주로 드라마 제작을 담당해왔다. 셀트리온 엔터테인먼트는 그간의 경험과 노하우를 살려 방송콘텐츠·연예매니지먼트·영화제작을 아우르는 종합 엔터테인먼트사로의 확장을 계획하고 있다. 차기작으로 제작·투자·배급까지 진행한 ‘자전차왕 엄복동’을 오는 2월에 선보인다. 일제강점기 조선인 최초로 자전차대회 1위를 차지한 엄복동의 이야기로 비(정지훈)·강소라·이범수가 주연을 맡았다.

정철웅 대표가 이끄는 키위미디어그룹도 빼놓을 수 없다. 영화·음악·공연을 아우르는 종합 콘텐츠 사업을 지향한 이 회사는 ‘터널’ ‘끝까지 간다’ ‘최종병기 활’ 등을 제작한 BA엔터테인먼트의 장원석 프로듀서가 영화사업을, 작곡가 김형석이 음악사업을, 음악감독 박칼린이 공연사업을 각각 맡고 있다. 사업 첫해 ‘범죄도시’ ‘기억의 밤’ ‘대장 김창수’ 등을 투자배급했고 ‘유체이탈자’ ‘범죄도시2’ 등도 올해 선보일 예정이다.

이 밖에 네이버는 CJ ENM 한국영화사업본부장을 역임한 권미경 대표를 앞세운 스튜디오 N을 통해 영화 및 드라마 시장 진출을 꾀한다. 스튜디오 N은 웹툰 IP를 기반으로 한 영화 5편, 드라마 5편의 라인업을 발표한 상태다. ‘신세계’ ‘공작’ 등을 제작한 사나이픽처스와 영화사 월광은 도자기업체 행남사와 손을 잡았다.

◆콘텐츠 완성도가 관건

신생 배급사들의 진출에 영화계 입장은 엇갈린다. 관객이 더 이상 늘기 어려운 작금의 상황에서 새 사업자가 늘어나면 제 살 깎아먹기 식 경쟁이 불가피해질 것이라는 우려다. 라인업 확보를 위한 경쟁으로 투자의 커트라인이 낮아지고, 자칫 한국영화의 질적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 투자배급사 관계자는 “과거 통신사와 IT 업체가 풍부한 자금력으로 영화시장에 뛰어들었다가 쓴맛을 경험했고, 결과적으로 한국영화에 악영향만 끼쳤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영화시장의 내실이 탄탄하게 다져진 만큼 과거의 우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외려 기존 한국영화 시장에 긍정적인 긴장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했다. 한 중견 제작사 대표는 “선택지가 많아진다는 점에서 충분히 환영할 만한 일”이라며 “최근 몇 년 동안 중소규모 영화의 설 자리가 없었다. 하지만 공급이 원활하고 플레이어가 많아진 만큼 도전 가능한 기회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관건은 콘텐츠의 완성도와 현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아이템을 발굴하는 일이다. 김광원 문화평론가는 “지난해 몇몇 히트작의 주역은 20대 관객이었다. 하지만 한국영화보다는 외화에 편중됐을 만큼 그들의 취향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건 아쉬운 부분”이라며 “관객의 세대교체가 일어나는 올해, 신생사들이 그 틈새를 잘 공략한다면 좋은 성과를 이룰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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