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이 행복한 자치분권의 나라 스위스 .4] 주민 우선의 다양한 분권 제도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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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21   |  발행일 2019-01-21 제6면   |  수정 2019-01-21
행정과 별도로 교육·종교 게마인데 운영…독자 예산 가져

자치분권·지방분권 국가인 스위스는 2천200여개나 되는 게마인데(기초단체·기초의회)가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천편일률적인 자치·분권 정책을 도입하지 않고 있다. 게마인데마다 자체적 자치단체기본법 등을 제정해 해당 지역 주민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의결·발안·투표 등의 방식을 택하고 있다. 스위스에서 만난 우르스 캘인 알트도르프 시장과 토마스 니델베거 크로이츠링엔 시장은 시정을 이끄는 방식과 게마인데 내의 신분 및 역할은 크게 달랐지만, 주민이 행복한 지역을 만든다는 노력과 마음만은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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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스 캘인 알트도르프시장
“위원회 설치·운영으로 행정집행
세목신설 불가…세율은 결정가능
집행위원, 봉사개념으로 職 수행
정해진 급여는 없고 수당만 받아”


우르스 캘인 알트도르프 시장은 스위스 자치분권에 대해 한 마디로 “중요한 사안은 주민 직접 투표를 통해 결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스위스 민주주의의 특별함은 직접민주주의에 근간을 두고 있다”며 “직접민주주의는 굉장히 좋은 제도로, 제한없이 모든 영역에서 이뤄지다보니 정치인에게 상당한 압력이 된다”고 설명했다.

캘인 시장은 축구 동아리를 예로 들었다. “동아리에 참여하는 주민들이 자치단체의 지원을 받고자 한다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면서 “도로를 새로 개설할 경우에도 직접 이해관계가 있는 그룹 간 합의가 된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그룹 간 이견이 있거나 자치단체에서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가 생길 경우 주민총회를 통해 주민 전체의 의견에 따라 결정된다”고 덧붙였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서 보육료가 더 많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으면, 의견 제시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의사를 표시할 수도 있어 스위스에서는 주민들의 삶 자체가 자치분권인 셈이다.

캘인 시장은 의회가 없는 알트도르프 집행기관의 가장 중요한 자치사무는 각종 위원회 설치라고 했다. 그는 “위원회 설치 분야가 가장 중요한 사무”라며 “별도 교육청이 없어 초등학교 교육을 담당하는 학교위원회에서부터 건설위원회, 도시계획위원회, 산림위원회, 회계감사위원회 등 28개 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중 회계감사위원회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 캘인 시장은 “게마인데에서 세목(稅目) 자체를 만드는 건 불가능 하지만 세율(稅率)은 스스로 결정한다”면서 “전체 조세 수입 중 75% 정도를 소득세가 차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체의 6~7%를 차지하는 재산세와 상속세, 주민세 순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방세 대부분이 재산세다.

알트도르프의 재정자립도는 80% 수준이며, 연방정부와 주정부(칸톤)로부터 20% 정도의 보조금을 받고 있다.

캘인 시장은 게마인데 재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3가지 주요 요소를 △세율 △지방채 발행 여부 △아이돌봄 사업으로 꼽았다.

알트도르프는 매년 예산의 50% 정도를 채무 갚는 것으로 충당하고 있다. 그는 “1년에 두 차례 열리는 게마인데 총회 중 봄에는 결산 총회, 가을에는 예산 총회로 운영된다”며 “예산이 평년보다 많을 경우 게마인데 총회 차원을 넘어 주민투표를 통해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예산 문제는 각 정당 내에서도 논의를 한다”며 “해당 사안에 대한 충분한 논의를 거친 후 실시되는 주민투표는 게마인데의 규범으로 정해져 있다”고 말했다. 스위스에는 사회당, 자유당 등 4개의 주요 정당이 연방정부와 칸톤, 게마인데에 관여하고 있다.

시장, 부시장, 사회복지 담당, 경찰·소방·스포츠·안전 담당 등 알트도르프 게마인데 집행위원 4명은 공교롭게 소속 정당이 모두 다르다. 하지만 집행기관은 소속 정당과 정책에 대해 논의는 하지만 정당의 역할은 크지 않다.

캘인 시장은 “정당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은 거의 없다”며 “이는 자원봉사 개념으로 집행위원 직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은 역사학자로 취리히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부시장은 간호사, 사회복지 담당은 별정우체국을 운영하고 있다. 경찰·소방·스포츠·안전 담당은 지역 은행 직원이다. 이들 모두 일정한 급여는 없으며 특별한 경우 회의수당 정도를 받고 있다.

알트도르프 집행기관의 공무원은 교사 120명을 제외하면 45명이다. 도시계획분야를 절반이 넘는 25명이 담당하고 있다.

한편 스위스의 자치경찰은 주정부(칸톤)를 중심으로 운영되지만, 산림훼손·안전·화재 등과 같은 사고와 관련해서는 조사 권한이 게마인데에 있다고 캘인 시장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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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니델베거 크로이츠링엔시장
“의회-집행부-사법부 서로 존중
시장과 집행위원 5명 권한 동일
전문경영인으로 구성…급여 받아
시장도 주정부의회에 진출 가능”



크로이츠링엔의회에서 만난 토마스 니델베거 크로이츠링엔 시장은 스위스 기초단체의 ‘3권 분립’에 대해 강조했다. 그는 “크로이츠링엔에선 의회-시(집행기관)-법원(사법부)이 각자 자신들의 역할에 충실하며 서로에 대한 존중 또한 함께 갖고 있다고 했다.

니델베거 시장은 또 “스위스의 2천200여개 게마인데에서는 주민들의 의사결정 방식으로 각 지역 실정에 맞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며 대부분 “주민 수가 많은 지역은 의회를, 주민 수가 적은 곳은 주민총회를 두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의회를 두고 지방의원을 통해 의사를 결정하는 게마인데와 주민총회로 의사를 결정하는 게마인데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고 덧붙였다.

인구 2만2천명으로 의회를 두고 있는 크로이츠링엔 집행기관(시)은 시장과 4명의 집행위원으로 구성돼 있지만, 이들 5명의 권한은 똑같다고 니델베거 시장이 전했다. 하지만 크로이츠링엔 게마인데 권력구조는 최상위가 주민이고 다음이 의회, 그 다음이 합의체인 집행기관이라고 소개했다.

5명의 집행위원은 △예산을 담당하는 시장 △건설 △스포츠·문화 △사회·복지 △안전(전기·가스·에너지 등) 담당으로 나눠 업무를 관장하고 있다. 이들은 의회에서 선출된다.

크로이츠링엔의 경우 사업비가 20만프랑(스위스) 이하인 경우는 시(市)에서 결정하고, 20만프랑 이상의 사업은 의회에서, 200만프랑 이상의 사업에 대해선 주민투표를 통해 주민들이 직접 결정한다. 주민투표는 일요일에 실시된다.

시장을 포함한 5명의 크로이츠링엔 집행위원 모두 전문경영인으로, 알트도르프와 달리 급여를 받고 있다. 대신 임기 4년인 40명의 크로이츠링엔의회 의원들은 모두 명예직이다.

스위스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행정을 펼치는 일반적인 게마인데뿐 아니라 교육과 종교 등과 관련한 게마인데도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니델베거 시장은 “스위스에는 많은 학교 게마인데와 교회 게마인데 등이 별도로 존재한다”면서 “크로이츠링엔에도 학교 게마인데와 교회 게마인데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들 학교 게마인데와 교회 게마인데에서는 각자 행정기관을 갖고 있어 별도 예산으로 운영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들 게마인데의 조세와 관리는 크로이츠링엔 게마인데에서 총괄하고 있다. 니델베거 시장은 “학교와 교회 게마인데는 각자의 예산과 조세를 별도로 두고 있지만, 세금을 거둬들이는 등의 업무는 크로이츠링엔 게마인데에서 총괄하고 있다”면서 “세금을 거둬 교회 몫과 학교 몫으로 관리하면서 해당 게마인데에 지급하고 있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위스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게마인데 시장이 시장직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칸톤(주정부)의회에 진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 크로이츠링엔이 속한 투르가우 칸톤주의원은 모두 130명이고, 이 중 현직 게마인데 시장이 무려 20명이나 된다.

니델베거 시장 역시 올해 실시되는 칸톤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할 예정이다. 그는 “투르가우 주의원은 4년에 한 번씩 선거를 통해 선출하는데, 2019년에 치러지는 주의원 선거에 후보로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니델베거 시장은 현직 시장의 주의원 겸임에 대해 장점과 단점이 있다고 했다. 장점에 대해선 “새로운 법안을 제정하거나 법률 개정이 있을 경우 소속된 게마인데 입장에서 의견을 관철시킬 수 있는 것은 해당 게마인데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반면, 단점으론 “주의회 회기 때 게마인데 업무 공백이 다소 생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큰 틀에서 봤을 때 해당 게마인데에 도움되는 점이 더 많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주 의원의 15% 정도가 현직 게마인데 시장일 것”이라고 부연했다.

글·사진=스위스에서 임성수기자 s018@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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