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삼한사미

  • 배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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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19   |  발행일 2019-01-19 제23면   |  수정 2019-01-19

‘삼한사온이라 함은 무슨 말입니까? 겨울에 추위가 이어지지 않고 며칠 추웠다가 며칠 뒤 풀리기를 되풀이하는 현상을 속담에 삼한사온이라고 합니다.’ 육당 최남선이 ‘조선의 상식’에 기록한 말이다. 그의 말대로 삼한사온(三寒四溫)은 겨울철 우리나라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날씨 패턴이다. 조선 효종 때 삼학사였던 김상헌도 ‘작년의 기후가 무척 추워 삼한사온이라는 이야기는 역시 믿기 어렵다’는 글을 남긴 것을 보면 이미 조선시대에도 널리 쓰인 말인 듯하다.

오랜 기간 한반도 기후를 지배해 온 삼한사온 규칙성은 지구온난화 등의 영향으로 지금은 많이 퇴색했다. 대신 겨울철 날씨와 관련해 요즘 새로 등장한 신조어가 ‘삼한사미(三寒四微)’다. 사흘 추우면 나흘은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린다는 뜻으로 삼한사온에 빗댄 말이다. 원인은 차가운 대륙고기압 때문이다. 겨울철 시베리아 지역의 대륙고기압 세력이 강해져 강한 북서풍이 불면 국내 미세먼지가 국외로 밀려나간다. 대신 대륙고기압 세력이 약해지면 대기가 정체되고 중국발 대기 오염물질이 포함된 온난기단이 밀려와 미세먼지가 흩어지지 않고 쌓이게 된다. 실제로 지난해 겨울(2017년12월~2018년 2월) 동안 초미세먼지 ‘나쁨’ 수준 이상인 날의 일평균 기온은 1.3℃였다. 반면 ‘보통’과 ‘좋음’ 수준인 날은 각각 영하 3.5℃, 영하 6.9℃로 추웠다.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불청객 미세먼지는 국민의 일상과 산업지형에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초미세먼지로부터 건강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각자도생으로 거리에서 기능성 마스크를 쓴 사람은 흔한 풍경이 됐다. 공기청정기, 코 세척기, 공기정화식물, 목 보호 건강기능식품의 판매가 급증하고, 보험사들은 어린이 호흡기 질환을 보장하는 상품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그러나 외부활동이 크게 줄면서 매출이 감소한 백화점·대형마트와 관광업계는 울상이다.

미세먼지는 이제 국민의 삶의 질 저하를 넘어 생존권과 생명권까지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의 대응에는 긴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지난달 중국 생태환경부가 “서울의 미세먼지는 서울에서 나온 것”이라며 막말을 해도 꿀 먹은 벙어리다. 중국발 미세먼지가 50% 이상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상황에서 더 이상 베이징의 눈치만 보고 있어서는 안 된다. 미세먼지 30% 감축을 공약한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 당당하게 할 말은 해야 한다. 배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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