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만천하 스카이 워크와 단양 잔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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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18   |  발행일 2019-01-18 제37면   |  수정 2019-01-18
“언 강물 휘돌아 나가는 데크길 걸으면 반짝이는 감정, 추억의 영상 파노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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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강 잔도길과 남한강의 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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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천하 스카이 워크 전경과 집 와이어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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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느림보  강물길의 한 구간에서 본 남한강의 비경.

단양은 대한민국 녹색 쉼표다. 겨울임에도 녹색의 산하는 냉동되어 더 푸르게 보인다. 백두대간 마루금 따라 서너 발 떠오른 해는 얼어 있는 풍경에 색감을 입힌다. 출발은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잔도길 들머리였다. 겨울 산도 그렇지만 겨울 강은 비감스럽다. 강가 으슥한 곳에서 마른 갈꽃 흔들며 바람을 부르는 갈대숲이 금빛 비늘처럼 반짝인다. 느리지만 쉬지 않고 흐르는 저 강물 따라 나의 세월도 그렇게 흘러갔다. 오늘따라 강은 더 아름답고 매섭다. 쓰러져 강물에 몸 적시고 있는 갈대의 시간도 그렇게 흘러갔거니. 나도 갈대도 시간의 뗏목 타고 그렇게 흘러갔을 거니. 저렇게 강물에 눈을 담그면 언제나 부서지는 마음, 길 잃은 사랑의 자취가 보인다. 숫제 눈을 감고 저 강의 추억을 휘감아 떠나는 바람의 노래, 나홀로 듣고 싶다.

단양강 잔도라고 쓰여 있는 데크 길을 걷는다. 강물에 다리를 담그고 서있는 데크 길의 추위가 옷깃을 파고든다. 잠깐 멈추세요. 열차가 지나갈 때, 위험하오니 잠깐 멈추었다가 통행하시기 바랍니다. 철교 아래에 안내판이 있다. 그 때 마침 열차가 지나간다. 서울 청량리에서 출발한다는 열차는 레일을 울리며 달려온다. 얼마나 많은 사람과 사연을 싣고 열차는 아직도 강 안개가 피어오르는 공간 사이로 아련하게 사라진다. 이전과는 달리 데크 길에 투명 지붕을 만들어 훨씬 안전하다. 얼음으로 얼어 있는 강의 빙판이 햇빛에 반사되어 영롱하다. 이 지역에서만 단양강으로 불리는 남한강의 물줄기가 온통 다 한눈에 잡히고 그 뻥 뚫리는 통쾌감에 겨울의 오전이 한없이 자유롭다.

남한강 내려다보이는 잔도길 들머리
강물 위 데크길 걸으며 행복한 전류
길 다할 즈음 나타난 나무의자, 글귀
‘고요함을 배우고 한가로움을 훔친다’

천주 터널·집와이어장·생태전망대
신성한 옷 바위에 세워진 스카이워크
정상까지 오르는 600m 나선형 보행로
바닥 보이는 철제망 올라갈수록 후들
삼족오 모양 전망대 아찔한 겨울풍경
‘색채 마술사’샤갈의 그림과 오버랩


데크 길은 이리저리 굽이치고 휘돌아 나간다. 아까와는 달리 수심이 깊어 강변 절벽에 버팀 철심을 박고 길을 만들었다. 강물에서 10여m 위를 걸으면서 느끼는 스릴과 짜릿함이 행복한 전류로 흐른다. 붉나무와 야생식물 채취를 금한다는 안내도 있다. 숨어있는 식물의 이름도 적혀있다. 이렇게 겨울 강 위를 걸으면 묻어둔 가슴의 감정이 반짝이고, 잊힌 추억의 영상들이 파노라마를 그린다. 얼음과 수면에 내비치는 겨울 강은 텅 비어 있다. 들도 산도 강도 쉬는 중이다. 저렇게 추운 빛이 허공에 어른어른하게 감도는 겨울은 당신과 나 사이를 소리 없이 지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관광객은 쉴 사이 없이 오고 간다. ‘아름다운 단양강을 지켜 주세요’ 라는 안내도 있다. 빛의 굴절이 달라졌는지, 언 강은 희고 새파라니 비친다. 저 멀리 강의 줄기가 안개 속에 파묻혀 흘러간다. 얼어붙은 강의 꼬리가 물안개에 휘감겨 오보록하다. 아름다운 단양강을 지켜달라는 문구가 몇 차례나 나온다. 오죽하면, 그 인간의 파괴성에 애소하는 문구다.

잔도 데크 길이 거의 다할 즈음, 나무의자가 나타난다. ‘고요함을 배우고 한가로움을 훔친다’는 글이 바닥에 적혀있다. 잠시 쉬어간다. 옆에 젊은 남녀 한 쌍이 크리스마스 캐럴을 듣고 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크리스마스다. 메리 크리스마스는 어린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누구나 반기는 세계적인 축제다. 예수님은 구유로 오셨다. 가장 낮은 곳이다. 당시에도 얼마든지 더 나은 환경에서 탄생할 수 있었지만, 예수님은 낮은 곳 그 자체로 태어나셨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려면 낮은 곳으로 가야 한다. 가장 낮은 곳에 예수님이 계신다. 가난한 마음으로 낮은 사랑으로 이 시대 사람들과 소통할 때, 우리는 비로소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된다. 소외되고 억울한 사람들, 어린아이, 나병환자, 나약하고 짓밟힌 사람들, 연민의 눈과 귀로 이들 하나님의 아들들이 주위에 없는지 살펴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누구라도 먼저 자신에게 연민의 정을 가져야 한다. 자신이 먼저 가장 낮은 곳으로 가는 사랑의 길을 걸어야 한다. 저 남한강물이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이렇게 마음이 사랑과 연민으로 가득 찰 때, 우리는 거기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

자리를 털고 우측으로 걸어 나오면 천주터널, 집 와이어 도착장, 알파인 코스터 탑승장, 생태전망대를 볼 수 있다. 여기서 스카이워크까지 셔틀 버스로 올라간다. 스카이 워크 입구에서 내린다. 매표하고 스카이 워크를 오르기 전 안내를 읽어본다. 스카이 워크가 있는 곳은 단양군 적성면 애곡리의 옷 바위다. 깎아 내린 것 같은 단애의 절벽에 포효하는 듯 보이는 호랑이 문양이 남한강의 물살, 즉 살기(殺氣)를 막아준다고 하여 예부터 신성시 여겼다. 옷 바위 역시 만학천봉(해발 320m)에 있어 오랜 세월동안 무속인이나 민간인들이 자기의 소원을 빌고 기도의 영검을 받았던 장소로 유명했다고 한다. 거기에 스카이 워크를 세웠다.

나선형 보행로를 걷는다. 전망대 정상까지는 약 600m다. 빙빙 돌아서 올라가기 때문에 360도로 파노라마의 풍광을 조망할 수 있다. 아래에서 볼 때와는 달리 편한 길이다. 벌써부터 확 트인 조망으로 가슴이 시원하다. 바로 아래 집 와이어가 출발하는 광경도 볼 수 있다. 차츰 올라갈수록 다리가 후들거린다. 길은 편해도 높은 공간에서 느끼는 고소공포증은 어쩔 수 없다. 스릴과 긴장, 평소와 전혀 다른 새로운 환경에 알지 못할 환희가 느껴진다. 게다가 간혹 겨울바람이 불어오니, 스카이 워크 자체가 흔들리는 것 같이 느껴진다. 불안하기도 하지만 더욱 스릴이 넘쳐난다. 스카이 워크로 가는 길은 바닥이 훤히 보이도록 철제 망으로 되어 있고, 시선이 아래로 향하면 오싹한 전율이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전망대에 이른다. 전망대는 돌출부 세 곳의 삼족오 모양이고, 그곳에서 더 아슬아슬하게 조망할 수 있다. 길이 15m, 폭 2m로 되어 있고 바닥은 강화유리를 설치하여 수직 아래를 볼 수 있다. 어지럽고 아찔하고 공포심으로 말초신경이 따갑다. 단양방향으로 대명 리조트가, 우측으로 소백산 비로봉(1천439m)·양방산(664m)·소백산 천문대(1천383m) 기상관측소가, 가까이 남한강 철교, 단양역, 소백산 죽령 고개(696m), 단양호 등이 환상의 겨울 풍경을 만든다.

이때 나는 왜 화가 ‘마르크 샤갈’이 뇌리에 떠올랐을까. 샤갈은 색채의 마술사로 불린다. 러시아의 비테브스크 고향과 부인 벨라와의 사랑을 꿈처럼 부풀려서 그린 그림들을 보면, 누구라도 하늘을 나는 듯이 행복해진다. 우리가 닿을 수 있는 꿈보다 더 먼 꿈과 동심의 세계를 밝고 선명한 색채로 그린 그의 그림은, 스카이 워크에서 보는 풍경과 오버랩 된다. 지금의 조망 위에 샤갈의 그림을 덮어쓰기 한다면 그건 한 편의 가슴 저리는 명작이 될 것이다. 샤갈의 그림에는 항상 그의 꿈과도 같은 고향 비테브스크가 담겨있다. 그리고 사랑했던 여인 벨라와의 사랑을 그렸다. 샤갈은 벨라와의 사랑을 “평생토록 그녀는 나의 그림이었습니다”라고 말해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다. 자신의 고향 비테브스크에 대한 사랑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상 320m의 허공에서 겨울바람과 지독한 허무와 무의미에 몸서리를 치던 나에게 샤갈의 그림이 떠오르지 않았다면, 평생 존재 깊숙이 자리매김했던 공허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온 길을 돌아나가면 된다. 주차장에 와서 승차하고, 늘 곁에 두는 경구 ‘당신이 꿈꾸던 걸 이루어보려 할 때 언제 그걸 시작하든지 너무 늦음은 없다’가 눈에 띈다.

시인·대구힐링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 김석 대우여행사 이사

☞여행정보

▶문의: 단양군 문화관광과 (043)420-2556, 만천하 스카이 워크 (043)420-2984

▶내비 주소: 충북 단양군 적성면 애곡리 산 1-3 일원

▶트레킹 코스: 단양 보건소 건너편 버스 주차장 - 단양잔도 - 셔틀버스 탑승장 - 만천하 스카이 워크 - 셔틀버스 탑승장 - 단양보건소 건너편 주차장

▶주위 볼거리: 온달산성, 구인사, 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 고수동굴, 천동동굴, 도담 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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