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야외극장에 대한 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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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18 07:31  |  수정 2019-01-18 07:31  |  발행일 2019-01-18 제16면
[문화산책] 야외극장에 대한 낭만

우리에게 익숙한 극장의 모습은 아마 캄캄한 실내에 설치된 객석에서 정면에 위치한 ‘사진틀’ 속 무대를 바라보는 형태의 프로시니엄 극장일 것이다. 극장(theatre)은 ‘테아트론(theatron)’이라는 ‘보는 장소’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에서 온 말이다. 볼거리가 있는 곳 어디든 극장이라는 말이다.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최초의 극장들은 공터나 광장 등 모두 야외였다. 고대 로마인들은 원형경기장인 콜로세움에 가서 검투사의 경기를 즐겼고, 고대 그리스인들은 아테네 산중턱 비탈길에 조성된 원형극장 에피다우로스를 찾아, 비극의 경연이 이루어지는 디오니소스축제에 참가했다. 셰익스피어시대는 어떠한가. 원형야외극장인 글로브 극장에서 훤한 대낮에 공연했다. 볼거리가 마땅치 않던 터라 사람들은 셰익스피어의 대사를 들으러 온 청중이었다. 변덕스러운 날씨의 제약을 피해 천장을 덮은 실내극장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무대기술이 발전했다. 햇빛이 차단된 어두운 실내는 인공조명으로 밝혔고, 원근법이 도입된 사실적인 무대장치를 설치해 그럴듯한 사실적인 그림을 만들어냈다.

이제 사람들은 무대 너머의 환상적인 그림에 사로잡혀 공연을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극장은 공연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물리쳐가면서 놀라운 발전을 이뤄왔고, 마침내 완벽히 통제된 공간이 완성되어 널리 보급되었다. 그렇게 오늘날 우리가 찾는 극장과 비슷한 형태를 갖추게 됐다.

예술 사조를 살펴보면 늘 주류가 포화상태가 되면 새로운 예술 형식이 등장한다. 하지만 하늘아래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어디 있으랴. 우리는 과거의 시대에 복귀하고 이를 재해석해 새로운 스타일로 복원해낸다. 고대인들처럼 야외에서 볼거리를 보러 모이던 시대를 상상해보라. 새까만 밤하늘이 천장이요, 떠있는 별이 조명이 되고, 우리가 내딛는 땅이 무대가 되는 극장 말이다. 야외극장에서 눈이나 비를 맞는다 해도 불특정다수가 한 날, 한 시 함께 느낀 공동체적 경험은 공감각을 자극해 우리 안에 잠자고 있던 원시적인 본능을 오히려 일깨워준다.

동시대 연극을 즐기는 방법은 이제 듣는 것도 보는 것도 아닌 사용자 주도의 실감나는 ‘체험’이 되었다. 배우의 시대도 연출가의 시대도 무대 예술가의 시대도 흘러 관객의 시대가 왔다. 요한 하위징하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놀이하는 인간’이다. 전문 연희자에게 대신 맡겼던 자신의 원초적 놀이 본능이 제대로 발현되기 위해선 적당한 원시적인 장소가 마련되어야 하고, 그게 야외극장이라는 생각이다. 지역에 버려지고 잊힌 유휴공간들이 많다. 나는 그곳들이 관객이 꽉 찬 야외극장으로 변하는 상상을 해본다. 그리고 실현시킬 방법을 찾을 것이다.

이다솜 (프로젝트 극단 청춘무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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