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방의원 사용설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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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17   |  발행일 2019-01-17 제29면   |  수정 2019-01-17
20190117
김동식 (대구시의회 의원)

지방의원으로 통칭되는 기초의회 의원과 광역의회 의원은 4년 임기의 선출직 공무원이다. 지방자치법 36조에 보면 지방의회 의원은 공공의 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그 직을 성실히 수행할 것과 청렴의 의무, 품위유지의 의무, 지위남용금지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최근 불거진 지방의원들의 각종 비위로 인해 시민의 시선이 곱지 않다. 지위를 이용한 이권 개입으로 직을 상실하거나 품위를 손상시키는 행동과 발언으로 인해 정치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 이러한 사건이 생길 때마다 심심찮게 지방의회 무용론이 나오기도 하고 정치권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기도 한다. 부끄러운 일이다. 지방자치가 실시된 지 20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지방의회 또는 의원들이 시민과 함께하지 못하고 손가락질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은 반성해야 될 대목이지만 무조건적인 비난이나 싸잡아 정치권 전체를 비난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본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이 있다. 원래 의미는 시장에 좋은 품질의 화폐와 나쁜 품질의 화폐가 동시에 존재할 때 품질이 떨어지는 화폐만 남고 좋은 화폐는 사라진다는 말이다. 일반적 의미로 확대되어 자질이 높은 사람은 조직에서 사라지고 자질이 낮은 사람들만 남게 된다는 의미로 광범위하게 활용된다.

맹목적인 비난은 지방의회 의원들의 자질을 하향 평준화시켜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는 구조로 남게 되고, 결국엔 대시민 정치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선택적 비판과 선택적 칭찬을 통해 시의회 의원들의 품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힘은 오롯이 유권자인 대구시민의 몫이다. 어느 개인 선의에 의한 질적 향상은 기대하기도 어렵거니와 일시적으로 끝난다. 결국 악화를 몰아내고 양화를 활성화시키는 것은 유권자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선거시스템을 통해서만으로 정착될 것이다.

대구시의회 의원은 비례의원과 지역구 의원을 합해 30명이 활동하고 있다. 대구시의원에게 연간 지급되는 의정활동비는 1인당 5천800여만원, 30명에게 연간 지출되는 의정활동비는 17억여 원이다. 이 30명의 시의원이 심사하고 통과시키는 대구시와 교육청의 연간 예산이 약 12조원이다. 예산안을 꼼꼼히 검토해 불요불급 예산을 0.1% 아끼면 120억원, 1% 아끼면 1천200억원을 아낄 수 있다. 흔히 연말이면 멀쩡한 보도블록을 걷어내고 땅을 파헤치는 불필요한 공사에 손가락질하고 예산 낭비를 질타하지만 예산심사 과정의 적정성과 합목적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하지 않는다. 국회에 예산정책처라는 부서가 있다. 국회의 국가 예·결산 심의를 지원하고, 국회의 재정통제권을 강화하기 위해 비당파적이고 중립적으로 전문적인 연구·분석을 수행하는 기관이다. 서울시의회에는 예산정책담당관이 있다. 산하에 예산분석팀, 정책조사팀, 사업평가팀 3개의 팀이 있다. 경기도의회에도 예산정책담당관이 있고 예산 정책팀과 예산분석팀 2개 팀을 운영하고 있다. 더불어 서울시의회는 2018년 12월20일 서울시의원들의 예산재정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서울시의회 예산정책연구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안’을 통과시켜 예산정책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대구시의회에는 장기적인 예산 정책을 수립하고 예산의 적정성을 분석하며 대구시의 주요사업에 대한 분석·평가 및 중·장기 재정소요 분석을 담당할 부서가 없다.

지방의원은 보좌관 제도가 없다. 그렇다 보니 지역구 관리와 의정활동은 오롯이 의원 개개인의 역량에 맡겨져 있다. 지역구 행사와 민원 해결에서부터 12조원이 넘는 예산의 심사와 결산심사를 의원 한명의 능력에 의존해야 한다. 막대한 대구시의 살림살이가 오롯이 대구시의원 한 사람에게 의지하다보니 예산 편성의 절대적 권한이 대구시 공무원에게 주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견제와 감시라는 본래 취지의 의회 기능은 무력해진다. 관료에겐 관대하고 정치에는 야박한 국민 정서는 전적으로 정치의 불신에서 비롯됐고 일부 정치인의 부도덕이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민에 의해 통제받지 않는 공권력이 존재하면 안 된다.

지방자치법 36조3항에는 ‘지방의회의원은 지위를 남용하여 지방자치단체·공공단체 또는 기업체와의 계약이나 그 처분에 의하여 재산상의 권리·이익 또는 직위를 취득하거나 타인을 위하여 그 취득을 알선하여서는 아니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의원들은 그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지역의 민원 상당부분이 이 범주에 들어간다. 안 된다고 하면 두고 보라 하고 해결해 주자고 하니 원칙에 어긋난 이 평행선의 어느 모퉁이에 괴롭게 서 있는 의원의 한탄을 한 번은 돌아봐 주기를 바란다. 사적 이익을 위해 민원이라는 이름으로 의원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불편부당한 민원과 싸우게 하고, 소외받는 약자의 편에서 일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정의로워진다. 그래야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로 나아갈 수 있다. 무조건적인 비난 대신 사안에 따라 칭찬과 비판을 가해야 정치인들이 정신을 차린다. 의원, 유권자가 길들이기 나름이다.김동식 (대구시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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