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김정은의 비핵화 개념은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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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15   |  발행일 2019-01-15 제31면   |  수정 2019-01-15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미 워싱턴 포스트의 사이먼 데니어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지난해 문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났을 때 ‘김 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를 어떻게 정의(define)하고 있는지 물을 기회가 있었느냐’고. 문 대통령은 답하기를 ‘김 위원장은 나에게나 트럼프 대통령, 시진핑 주석, 푸틴 대통령에게 비핵화를 말할 때 이것이 미국이 말하는 CVID(완전하고 증명가능한 불가역적 핵폐기), 그것과 전혀 차이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했다. 개념 정의를 확인했는지는 확답하지 않았다.

사실 미국 기자의 질문은 북한이 비핵화를 놓고 다른 의미를 갖고 덤벼들고 있다는 의심 때문이다. 이건 외교협상에서 똑같은 용어를 놓고도 각 진영이 자국에 유리한 식으로 달리 해석하는 경우가 숱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달 20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 즉 그들의 용어인 ‘조선반도 비핵화’에 대해 다른 인식을 내비쳤다. 비핵화는 자신들만의 핵 포기 이전에 북에 대한 미국의 핵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 땅만 아니라 남한을 포함한 한반도 전역에서 미국의 핵전술 전략까지 포기하는 개념으로 본다는 의미다.

만약 북한이 내심 생각하는 비핵화가 이처럼 다른 개념이라면 남·북·미 3각의 비핵화 협상은 동상이몽의 길을 걷는다고 할 수도 있다. 애초 김정은 위원장은 비핵화에 대해 ‘선대(先代·김일성-김정일)의 유훈’이라는 다소 모호한 언급을 했다. 선대가 향후 핵을 가지지 말라고 했다는 말인지 아니면 미국의 남한에 대한 핵우산 무력화를 포함해 전략적으로 비핵화를 달성할 것을 유언했다는지가 분명치 않다.

비핵화 용어가 앞으로 더욱 난제가 될 우려가 있는 것은 지난해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나 4월의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했지만,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공식적 용어 정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도 최근 국회에 출석해 “북한이 주장하는 조선반도 비핵화는 우리와는 차이가 있다”고 시인하기도 했다. 학문에서도 개념이 정립되지 않으면 논리가 뒤죽박죽 된다. 용어정리가 부실해지면 논문 성립이 안 된다. 향후 남·북·미 협상이 이어진다면 비핵화 용어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박재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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