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노조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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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14   |  발행일 2019-01-14 제30면   |  수정 2019-01-14
하버드대 교수의 주장처럼
노조는 부정적 측면 있지만
이타·생산적인 역할도 가능
우리사회 난제 해결에 참여
땅에 떨어진 위신 회복하길
[아침을 열며] 노조의 두 얼굴
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경제학자

최근 국민은행 노조의 파업이 화제다. 페이 밴드와 임금 피크제에 대한 노조의 반발이 주된 파업 이유였다. 한국의 회사처럼 근속연수에 따라 가파르게 임금이 올라가는 나라가 드물고, 이것이 젊은이들의 채용을 어렵게 하니 임금피크제는 불가피한 제도다. 은행원과 같은 고액 연봉자들이 이 정도 이유로 파업을 하는 것은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더구나 요즘처럼 경기가 나쁘고 사람들이 살기 어려운 상황에서 고액 연봉자들의 파업은 배부른 부자 타령으로밖에 비치지 않을 것이다. 파업에 대한 국민의 시선은 고울 수가 없고, 당연히 콜센터에 항의 전화가 몰려들었다. 항의에 대해 사과한 것은 국민은행 노조원들이 아니고, 콜센터 직원들이었다. 국민은행 노조원들의 평균 연봉이 9천만원인데, 외부 용역업체 소속 콜센터 직원들의 평균 연봉은 2천만원이 안 된다. 이런 부조리한 일이 어디 있나. 그런데도 국민은행 노조는 수차례 추가 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안 그래도 노조에 대한 국민의 전반적 인식은 부정적인데, 노조의 이런 행동이 그런 인식을 합리화해준다. 이러다가 노조가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게 아닌가 걱정이다. 노조는 원래 이런 부정적 역할을 하는 조직인가? 아니다. 미국 하버드대 리차드 프리먼 교수는 ‘노조는 무엇을 하는가?’(1984)라는 책에서 ‘노조의 두 얼굴’을 말한다. 노조가 갖는 하나의 효과는 임금 인상을 통해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상대적으로 고임금인 노조원들의 임금을 비노조원에 비해 인상하여 불평등을 확대하는 부정적인 효과다. 노조의 또 다른 효과는 연대임금 전략을 통해 노동자 전체의 임금 불평등을 축소시키고, 노조원의 고충을 해결해주며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긍정적 효과다. 노조는 야누스와 같이 두 얼굴을 가진다는 것이다. 노조의 부정적 효과만을 강조하던 정통적 시카고학파의 시각과 긍정·부정 두 측면을 동시에 갖는다고 보는 새로운 하버드학파의 시각 차이다. 이 책의 어떤 서평자는 종래 노조를 부정적으로만 보던 관점을 불식하고 노조의 긍정적 측면을 강조하는 새로운 관점이라고 소개하면서 미국 노총(AFL-CIO) 본부에 프리먼 교수의 동상을 세워야 한다고 썼다.

한국에서는 노조의 부정적 측면을 부각하는 언론 기사가 넘쳐나고, 일상 대화에서도 노조는 나라 망치는 이기적 존재라고 규탄하는 사람을 자주 본다. 그러나 그것은 노조의 두 얼굴 중 한쪽이라는 것을 생각하자. 노조는 훨씬 이타적이고 생산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노사정 대화를 통해 우리 사회의 난제 중의 난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재벌 개혁, 중소기업 갑질 문제, 비정규직 문제, 일자리 창출, 복지 증세 문제 등은 하나 하나가 중요하고 우리 경제의 사활이 걸린 문제인데, 이것을 따로 따로 해결하려고 하면 이해관계가 너무 첨예하게 대립하여 거의 해결이 불가능하다. 이것을 묶어서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숙고, 토론 끝에 일괄 타결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본다.

내가 일하는 한국장학재단에도 3할 정도의 직원이 비정규직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었으나 아직도 임금, 신분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 이 문제를 재단에서 해결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획기적 예산 증액 없이는 불가능한데, 300개 넘는 공공기관을 상대해야 하는 기획재정부에서 우리 재단에만 예산 증액을 해줄 리는 만무하다. 이런 문제는 전국적으로 동시에 일괄 타결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의 해결에 노조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마침 민주노총의 김명환 위원장이 결단을 내려 경사노위 참여를 선언했는데, 이달 말 열릴 대의원 대회에서 승인을 받느냐가 초미의 관심사다. 민주노총은 반드시 경사노위에 참여해서 사회적 대화에 적극 임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굵직굵직한 고질병의 치유 여부가 여기에 달려 있다. 노조는 건설적·이타적 얼굴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만천하에 증명해주기 바란다. 그리하여 땅에 떨어진 노조의 위신을 회복하기 바란다. 바야흐로 나라의 흥망성쇠가 여기에 달려 있다.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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