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소박하고 정겨운 싱가포르국립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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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13 00:00  |  수정 2019-01-13
20190113

 최근 싱가포르국립도서관을 견학했다. 이 도서관은 국립이란 말이 무색할 만큼 소박하고 규모가 작았다. 싱가포르 자체가 도시국가이기도 하지만 국립이란 접두어가 붙을 때 건물에서 느껴지는 위용을 찾아볼 수 없어 좋았다.
 

도서관 입구 전면 광장에는 컨테이너가 10여개 놓여있고 그곳에서는 상시적으로 일반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된다고 한다. 내가 갔을 때도 컨테이너 안에는 무명 예술가들의 사진전이 한창이었다. 반갑게도 한국 사진가의 작품도 전시돼 있었다. 컨테이너 전시공간 오른쪽으로는 24시간 도서를 반납할 수 있는 창구도 설치돼 있었다.
 

도서관 정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전면공간도 도서관 입구라기 보다는 전시장 같은 느낌의 전시물들이 있고 그 위에 작은 소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좁은 땅에서 한 곳을 여러 가지 용도로 활용하고자 하는 지혜가 돋보인다. 열람실은 한 층 더 내려가 지하에 있다. 열람실로 내려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탔을 때 천장 위로 빼곡하게 그려진 작품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더 국립도서관의 경쾌함이 느껴졌다. 참 예술적이고 밝은 느낌이었다.
 

싱가포르는 작은 도시국가다. 껌을 팔지 않으며 갖고 들어갈 수도 없는 나라로 잘 알려져 있는 나라, 아직도 태형이 남아 있고 높은 벌금으로 국민을 통제하는 나라다. 도시가 아주 깨끗한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5박6일간 방문을 통해 내가 느낀 첫 인상은 잘 기획되고 정비된 사람의 삶이 중심이 되지 않는 독재국가의 모습이었다. 삶과 도시를 자로 재듯 정비하고 철저하게 규제하는 나라다. 그러한 내 인식을 일시에 무너뜨리고 싱가포르에 대해 호감을 갖게 한 것은 바로 이 국립도서관 때문이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서면 바로 열람실이 한눈에 들어온다. 소박하고 조용하지만 무겁지 않고 경쾌하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열람실 한 편 소파에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이 정겹다. 열람식 북편으로 따로 만들어진 작은 공간의 컴퓨터 책상 같은 곳에 15명 정도의 노인들이 무언가를 열심히 들여다 보고 있다. 뭐지? 다들 신문을 읽고 있다. 내가 나이가 들어 동네를 산책하고 도서관에 들어가 그날 하루 신문을 읽고 다시 열람실에서 책을 볼 수 있다면….
 

몰래 사진을 찍고 다시 안쪽으로 들어가보니 전시공간이 다시 나타나고 알록달록 보기만 해도 어린이 공간 같은 열람실이 또 눈에 띈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서서 책을 읽는 엄마. 우는 아이를 달래는 엄마. 아이는 울고 있었고, 나오는 순간까지 울음을 그치지 않았지만 누구도 얼굴 찌푸리지 않았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 아이들이 조용히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말귀를 알아들을 만한 아이들이 떠들어 대는 곳도 아니다. 공간은 전체 도서관 면적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할 만큼 넓다. 소리가 새어나가 다른 열람실 사람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리라. 많은 사람이 사용하지 않더라도 꼭 필요한 공간이다. 설계자의 철학이 돋보이는 곳이었다.
 

책은 삶이다. 삶은 생애 주기별 누구에게도 공평하다. 하여 도서관은 세대를 아우르고 치우침이 없이 설계돼야 한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아이를 위한 도서관이 어린이도서관이 아니라 갓난 아이를 데리고 가 울어도 엄마가 책을 읽을 수 있는 도서관이 어린이도서관이다. 그러한 도서관이 국립도서관이고 시립도서관이며 구립도서관이다.
 

경로당에 가면 늙은이 취급 받는다고 경로당 출입을 하지 않는 노인들이 실제로 많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끊임없이 경로당을 지어대는 한국의 자치단체장들은 싱가포르국립도서관에 한 번 가보시라. 동네에 신문 읽는 방과 열람실 곳곳에 놓여있는 소파에서 책을 읽고, 그저 앉아 명상을 하기도 하는 노인들을 보면 동네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느끼게 될 것이다.
 

백발의 어르신들이 빼곡하게 들어앉아 각자 신문을 보고 컴퓨터를 이용하는 모습과 유모차에 아이를 태운 채 한 손으로 흔들며 책을 읽는 30대 주부, 그치지 않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개의치 않고 얘기를 나누며 책을 읽는 싱가포르 시민이 부러웠다.

 육 정 미  (대구수성구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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