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연출을 연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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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11 07:40  |  수정 2019-01-11 07:40  |  발행일 2019-01-11 제16면
[문화산책] 연출을 연출하라

‘연출을 연출하라.’ 대학에서 연극 연출을 전공할 당시 지도교수님의 말씀으로, 지금도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보게 만드는 말이다. 처음엔 연출의 최고의 경지에 이르러 남들 앞에서 감정과 걸음걸이 심지어 숨소리마저 스스로 통제하고 선택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기술을 익힌 연출가가 돼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과연 그런 단순한 의미로 하신 말씀일까?

연출가는 관객에게 무대를 선보이기 전 제1의 관객으로 작품제작에 총체적인 책임을 진다. 시대 흐름에 따라 연극 연출가는 다양한 모습으로 출현한다. 현대적 의미의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연출가가 처음 등장한 것은 사실주의 연극이 성행한 19세기부터다. 최초의 연극 연출가라고 볼 수 있는 독일의 작스 마이닝겐 공작은 철저한 고증을 거쳐 복잡한 무대 장치, 소품, 집단 연기 등 다양한 요소들의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는 일을 담당했다. 한 사람의 연출가가 이끄는 완벽한 하나의 통일된 콘셉트의 무대를 관객 앞에 선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21세기 동시대 연극 연출가의 모습은 어떨까? 우리는 케빈 켈리가 말한 기계와 인간이 생태계를 이루는 비비시스템(vivi system)이 도래한 시대, 기존의 개념이 새롭게 재정의 되는 혼돈의 시대, 통제 불능의 시대를 살고 있다. 현대의 연극 연출가는 마치 수많은 벌들이 모인 벌떼들이 하나의 유기체가 되어 움직여 개개인의 합으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상할 수 없는 ‘창발’의 여정에 동참하는 사람이 되었다.

최근 집단 창작 방식이 소수의 리더가 이끄는 전통적인 공연제작 방식을 탈피하여 새롭게 각광받는 것을 보면 그 변화를 체감할 수 있다. 무대는 극장 안 일정한 크기의 공간을 벗어나 삶, 정치, 예술 등 무한대에 가까운 영역으로 확장되어버렸다. 우리 모두가 의미가 확장된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퍼포먼스를 수행하는 퍼포머로 포함되면서 관객과 퍼포머의 경계도 사라져버렸다. 어빙 고프만이 ‘자아 연출의 사회학’에서 전문 창작자가 아니더라도 일상이라는 연극무대에서 우리 모두가 자신의 이미지를 선택적으로 연출해낸다고 밝힌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삶의 예술가이자 연출가인 시대에서 ‘연출을 연출하라’의 의미는 연극 연출의 원리를 실제 나의 삶 속에 적용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라는 의미일 수 있겠다. 삶 속에 연출의 원리를 적용한다는 것은 결과를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인생이라는 여정을 혼자가 아닌 다함께 힘을 합쳐 방향을 설정하고 조화를 이루고 살아가는 것. 이러한 연출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남들 앞에 보여지는 연극 무대만을 연출하는 연출가가 아닌 나 자신의 인생이라는 무대부터 연출의 원리를 적용할 줄 아는, 지혜롭고 행복하게 살라는 사람이 되라는 참된 가르침의 의미로 다시금 다가온다.

이다솜 (프로젝트 극단 청춘무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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