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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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10 08:10  |  수정 2019-01-10 08:10  |  발행일 2019-01-10 제22면
[문화산책] 노력
정은신<작곡가>

언젠가부터 ‘노력’이라는 단어를 쓰기가 꺼려졌다. 노력을 해도 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나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00개의 신입생 자리를 두고 200명이 싸우는 것 같은 대학입시 경쟁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앞둔 상황에서도 반복됐다. 마치 누군가는 앉을 곳을 찾지 못하고 술래가 되어야 하는 의자놀이처럼 삶에서도 의자는 늘 부족해 보였다. 그런 경쟁의 고리 속에서 노력이라는 말은 어느새 ‘노오력’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되었다.

지난 학기 종강을 앞두고 ‘음악 감상 및 비평’ 수업에서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인 제9번 ‘합창’을 다루면서 나는 다시 ‘노력’이란 말을 사용했다. 베토벤은 57세로 비엔나에서 생을 마감한 독일 작곡가다. 그가 세상을 타계한 지 200년이 돼 가지만 그의 음악유산은 나날이 가치를 더해가고 있다. 그의 마지막 교향곡은 서양음악 역사상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깊이와 창의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걸작이다. 연주시간만 80분에 달하는 이 작품의 마지막 악장인 4악장에는 교향곡의 역사상 처음으로 독창자들과 합창단이 등장한다. 독일의 극작가이자 시인 프리드리히 쉴러의 ‘환희의 송가’를 가사로 채택한 베토벤은 인류가 하나 되는 세상을 꿈꾸었던, 자신의 평생에 걸친 이상을 음악으로 웅대하게 표현하고 있다. 나는 이 곡의 극적 흐름을 따라갈 때마다 작품을 구성하는 그의 힘과 대가로서의 면모에 감탄한다.

어떻게 이런 음악을 작곡하는 것이 가능했을까? 당시 베토벤이 활동하던 비엔나에는 수천 명의 작곡가가 있었다고 한다. 어쩌면 그 이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음악의 도시라는 명성은 거저 생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베토벤도 젊었을 때는 선배 작곡가인 하이든과 모차르트를 모방했다. 계속 모방을 하면서 다른 작곡가들과 경쟁을 했어도 꽤 괜찮은 작품을 많이 남겼을 것 같다. 그런데 그는 평생에 걸쳐 고민하고 변화하면서 말년에 이르러서는 누구의 작품도 아닌 ‘베토벤’만의 음악을 탄생시켰다.

위대한 음악이 주는 감동은 바로 이런 것이다. 작곡가는 세상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것을 음악으로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같은 목적을 두고 평생 의자 뺏기를 하는 사람에게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을 보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 가장 순수하고 고된 순간 속에서 비로소 가능하다. 작품은 이러한 신념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며 여기에 바로 예술의 가치가 있다. 모두가 같은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대한민국 사회에 정말 좋은 예술작품과 위대한 예술가는 더욱 절실해 보인다.

가치 있는 것,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는가? 나는 강단에서 용기를 내어 말했다. 정말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신념을 갖고 오랫동안. 베토벤의 음악은 나에게 삶을 가르쳐주었다. 정은신<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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