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근로감독과 죽음의 사업장

  • 김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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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08   |  발행일 2019-01-08 제30면   |  수정 2019-01-08
자본주의 사회 대한민국
그렇다고 자본과 이윤이
한 사람의 생명과 생존에
앞서는 걸 용납해선 안돼
엄격한 법·근로감독 필요
[화요진단] 근로감독과 죽음의 사업장
김기오 편집국 부국장

스물네 살 청년 김용균씨가 희생 당한 태안화력발전소 작업장은 위험천만한 곳이었다. 언제 빨려들지 모르는 컨베이어벨트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시커먼 석탄가루로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운, 그런 곳에서 김씨는 홀로 야간 설비점검을 하다 꽃다운 나이에 생을 비참하게 마감했다. 생명줄이 되었을 2인1조 근무 규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가 일하던 태안화력발전소의 위험함은 사고 횟수에도 드러난다. 2008년부터 2018년까지 58건의 산재사고가 나 12명이 죽었다. 어떻게 참사가 한 회사에서 이렇게 지속적으로 발생했던 것일까?

고용노동부가 이용득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태안화력발전소는 김용균씨가 숨지기 두 달 전 해당설비 안전검사에서 합격 판정을 받았고, 해당설비를 포함한 76개 모든 장비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 한마디로 부실검사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태안화력발전소는 2017년 11월에도 보일러를 정비하던 하도급업체 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숨졌다. 발전시설 외벽공사를 하던 하도급업체 직원 3명이 추락해 2명이 명을 달리했다. 당국은 이때도 특별근로감독을 한 바 있다. 1년 후의 열악한 작업환경과 참사로 보건데 특별근로감독의 효과가 없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당국은 김용균씨 사고를 계기로 또 특별근로감독에 들어갔고, 1주일 만에 40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항을 적발했다. 얼마나 시정될지는 역시 두고 볼 일이다.

2016년 말 1천282명이던 근로감독관은 문재인정부 들어 급증해 지난해 1천894명으로 늘었다. 당연히 근로감독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였지만 ‘사람만 늘었지 감독은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이런 와중에 고용노동부는 올해 경제·고용여건을 고려해 처벌보다 자율시정 중심의 근로감독을 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2만여 개 정기 감독 사업장에는 근로감독 한두 달 전에 통보하기로 했다. 하나마나한 감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예방감독을 강화하고 불시 근로감독을 원칙으로 하라’는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의 당연한 권고를 불과 5개월 만에 뒤집은 것이다. 어려운 경제를 생각해 노동자의 안전에 대한 선제적 대응을 포기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회사는 예외 없이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해 엄정하게 처리하겠다고 했지만 사후 특별근로감독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뒷북 감독의 결과가 스물네 살 청년 김용균씨의 죽음이고 서울 지하철 구의역 열아홉 살 김군의 죽음(2016년)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산재사고 사망자는 상반기에만 503명으로 하루 평균 3명꼴이었다. 하반기 통계까지 합치면 2013년 이후 5년 만에 1천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김용균씨의 죽음을 계기로 급물살 탄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일명 김용균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원도급 사업주의 안전보건 의무 위반에 대한 처벌은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으로 강화했다. 노동자 사망사고를 낸 원·하도급 사업주에 대해서는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을 유지하고, 사망사고 범죄를 5년 내 2번 이상 저지를 경우 형벌의 2분의 1을 가중토록 했다. 사업주의 책임을 엄하게 묻는 듯 하지만 노동계는 ‘하한형(下限刑)을 배제해 효과는 제한적’이라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그러했듯 산재가 일어나도 징역형은커녕 벌금만 내고 운영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영국은 2008년 기업살인법을 도입해 사망사고를 낸 사업주를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처벌할 수 있게 했다. 산재사망률은 우리나라의 18분의 1에 불과하다고 한다. 엄한 법의 엄격한 집행 위력을 실감한다.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사회다. 그렇다고 자본과 이윤이 한 사람의 생명과 생존에 앞서는 것을 용납해선 안 된다. 먹고살기 위해 목숨 걸어야 하는 나라, 하루가 멀다하고 노동자가 죽어나가는 나라가 문재인정부의 ‘나라다운 나라’는 아닐 것이다. 산재에 대한 엄격한 법과 함께 불시감독 등 철저한 사전 근로감독이 절실하다. 후퇴하면 안 된다. 법의 그물이 아무리 촘촘해도 죽은 사람을 살리지 못한다. 삶이 먼저다? 지당한 말이다. 그러나 살아 있어야 삶도 있다.김기오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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