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예술을 심장에 들이대라

  • 뉴미디어부
  • |
  • 입력 2019-01-08 07:48  |  수정 2019-01-08 07:48  |  발행일 2019-01-08 제25면
[문화산책] 예술을 심장에 들이대라
박현주<달성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새로운 시작의 시기다. 진부하지만 연초(年初)는 늘 그러했다. 이맘때면 사람들 시야는 저물녘 그림자마냥 길어진다. 지난 1년 인생농사에서 미처 타작하지 못한 이삭들을 되짚으며 이전과는 다른 미래를 다짐한다. 만약 이 시기를 인생의 황혼 즈음이 되어 관조해본다면, 그저 비슷한 시간들의 연속선상일 뿐 별다른 특이점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해가 넘어가는 이 시기 덕분에 삶의 의미는 한층 더 다양해진다. 그러면 잠깐 질문 하나를 던져보자. 1년 전의 나와 현재의 나는 과연 같은 존재일까. 이 질문에 답변하기란 생각보다 어렵다. 같다고 하면 ‘그간 한 뼘도 달라진 게 없는 건가’ 하는 의구심이, 다르다고 한다면 흔들리는 정체성에 혼란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정답도 오답도 없는 이 질문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열려 있다.

삶에 큰 파장을 일으킨 일들도 세월이 흐른 후 돌아보면 그 시기와는 전혀 다르게 다가오기도 한다. 심지어 긍정과 부정이 전복되어 버린다. 당시에는 호재라 여겼는데 인생의 어느 길목에서는 걸림돌이 되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그뿐 아니라 영문도 모른 채 지나가버린 사건의 인과를 수년이 지난 후 깨닫는 경우도 있다. 단편적이었던 인생의 파편들이 이런 발견을 통해 숙성되며 촘촘하게 나를 입체적 인물로 정돈해준다. 바로 이런 지점들이 나에게 ‘살아갈 만하다’는 위안을 안겨줬다. 그 과정을 만들어준 주역은 대개 문·사·철로 불리는 인문학, 넓게는 예술에 해당되는 것들이다. 그저 세계 변방 한 점으로서의 내가 아니라 선과 면으로 연결된 ‘인류 네트워크 속의 나’로 인식하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덤으로 내 사고의 뿌리를 관통하는 전율을 느끼게 한 영혼의 스승들까지 만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그렇다고 예술을 내 삶 가까이 두는 것만으로 인생에 대한 시각이 360도 달라지지는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보고 싶은 면만을 편향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가장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줄 거라 확신한다. 우리는 모두 순간의 길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급류처럼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오는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아니 휩쓸리더라도 다시 내 좌표를 찾으려면 이런 이정표가 필요하다. 현실의 나와 조우하고 싶다면 발목을 붙잡는 지나간 감정들을 툭툭 털어내고 예술을 심장에 들이대라. 예전 어느 땐가 별 감흥없이 마주친 어떤 이야기가 잠복기를 끝내고 망치를 들고 나타나 당신의 뒤통수를 가격할지도 모른다. 예상 못한 그 깊은 쓴맛에 시름하게 될지라도, 푸시킨의 말처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결국은 그것을 포용할 담대함을 얻을 것이다. 박현주<달성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