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시대, 대구경북 프로젝트 .2] 북한의 벼랑끝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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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종문기자 윤관식기자
  • 2019-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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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와 정상회담 성공했지만…北 운명은 여전히 ‘안갯속 위기’

남쪽 최북단 역인 도라산역에서 평양까지는 205㎞ 거리다. 서울과 도라산역 구간에는 관광객을 위한 DMZ 열차가 운행되고 있다. 윤관식기자 yks@yeongnam.com
꼭 1년 전인 2018년 1월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신년사에서 “핵 단추가 내 책상 위에 놓여 있다”고 미국을 위협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다음날 트위트를 통해 “(김정은에게) 나에게도 핵 버튼이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가) 알려주길 바란다. 그(김정은)의 것(핵단추)보다 훨씬 크고 강력하다. 내 (핵)버튼은 작동도 한다”고 맞받아쳤다. 북미 정상 간의 핵단추 말싸움에 우발적인 군사충돌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높아졌고, 한반도를 둘러싼 핵 공포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이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불과 6개월 뒤 두 정상이 싱가포르에서 만나 양국 간 적대관계 종식을 위해 노력한다는 합의를 할 것으로 예측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북한 김정은 체제는 지난해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을 성사시킴으로써 북한 외교사에 큰 획을 그었다. 북한은 지난해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북미 간 새로운 관계 설립 노력 △한반도 지속·안정적 평화체제 구축 노력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complete denuclerarization)를 위해 노력 △전쟁포로(POW) 및 전쟁실종자(MIA) 유해 즉각 미국 송환 등 4개항의 역사적인 합의문을 발표했다. 길게는 70년, 짧게는 50여년간 추구해 온 북한 대미외교의 핵심 어젠다인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첫걸음을 내디디게 된 것이다. 길고도 험난한 대미외교에서 1차적인 성과를 거둔 것이다.

北, 대미외교 어젠다는 평화협정
美에 국교정상화 요구하기 위해
핵실험·미사일 개발 총력 기울여
부시정부 출범 후 북미관계 악화
오바마정부 출범에도 성과 없어

90년대 이후 ‘벼랑끝전술’ 구사
국가적 역량 동원해 핵무력 완성
美는 대화전략으로 입장 급선회
양국 관계발전 기대 높아졌어도
시작에 불과…누구도 장담 못 해



◆북한의 외교 전략

북한 외교가 추구하는 원론적인 이념은 자주·평화·친선이다. 좀 더 부연 설명하면 평등과 자주성, 상호존중과 호혜, 내정불간섭 원칙이다. 용어 자체를 보면 우리나라나 서방세계가 추구하는 외교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분석해 보면 서로 가는 길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북한외교는 이 같은 이념 아래 제국주의 국가 견제 및 우호국가들과의 친선외교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즉 반제국주의 단결역량 강화, 비동맹운동의 확대 발전, 사회주의 역량강화 등이다. 자주·평화·친선 의미가 종국적으로 반제국주의 및 사회주의 강화로 귀결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국가외교 전략은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과 변화로 더 이상 지속하기 어려운 현실이 됐다. 그 돌파구로 북한은 기존 외교노선에 병진노선을 추가했다. 병진노선은 과거의 외교기조에 더해 핵무장과 경제발전을 동시에 추구하겠다는 전략이다. 북한은 병진노선을 선언한 이후 적극적으로 미국에 평화체제와 국교정상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 실천 전략으로 핵실험과 미사일 개발에 국가자원을 총동원했다.

◆북핵 개발과 협상

북한이 북미외교에서 추구하는 목표는 평화협정 체결, 체제보장, 대북제재 해소 및 경제적 실익추구로 요약된다. 북한은 1962년 남북 간 평화협정 체결을 제의한 바 있으나 1974년부터는 미국과의 단독 협상 의제로 전환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 대미 외교는 평화협정 체결이 핵심 어젠다다.

1990년대 초 소련 붕괴와 사회주의 진영의 체제 이완으로 미국이 세계 유일 초강대국으로 부상하자 북한은 본격적으로 미국과의 대화·협상을 시작했다. 계기는 1990년대 초 제1차 북핵 위기였다. 당시 북한은 직접 협상을 통해 핵문제와 관계 정상화를 동시에 해결하는 데 외교역량을 집중했다. 여러 차례 북미고위급회담을 거쳐 1994년에는 제네바합의가 도출되기도 했고, 1999년에는 북한 미사일 문제해결을 위한 베를린 합의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클린턴정부 시기(1993~2000년)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는 해결국면에 접어드는 듯했다. 2000년 10월 북한은 조명록 차수를 워싱턴에 파견해 적대관계 종식 등의 내용이 담긴 ‘조·미 공동 코뮤니케’와 ‘반테러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하지만 2001년 부시정부 출범 이후 2차 북핵 위기 대두 등으로 북미관계는 다시 악화됐다. 2차 북핵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북미 등 관련 당사국들이 참여한 6자 회담이 열렸다. 그 성과로 ‘9·19공동성명’(2005년)이 채택되기도 했으나 북핵문제에 대한 북미 간 근본적인 입장 차이가 해소되지 못해 양국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북한은 2009년 오바마정부가 출범하자 기대감을 표명했다. 그러나 오바마정부는 완전한 비핵화와 핵확산 의혹 해소 없이는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북한은 미국을 압박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핵무력 완성에 있다고 보고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가속화했다. 미국과의 협상을 위해 핵개발에 전력투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2009년 4월5일 장거리 미사일 발사, 2009년 5월25일 2차 핵실험 실시에 이어 2009년 폐연료봉 재처리 완료 발표, 2010년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 등 속도를 높였다. 2012년 초 북한과 미국은 핵·미사일 개발 중단과 미국의 대북지원 재개에 동의하는 ‘2·29합의’를 도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속된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합의는 파기됐다.

◆미국의 제재와 압박

다자 간, 당사자 간 협상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가 이어지자 미국은 유엔 대북제재 안보리 결의안 채택으로 외교전략을 수정했다. 북한은 대북제재 결의에 반발해 2013년 2월12일 3차 핵실험을 했다. 이에 유엔 안보리는 3월7일 강화된 대북제재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후 다자 간 협상이 재개됐으나 북미 간 입장차는 여전했다. 2016년에는 북한의 4·5차 핵실험이 이어지자 미국은 더욱 강화된 유엔제재 결의에다 독자적인 제재에 들어가면서 북미관계는 더욱 악화됐다. 2017년 5월부터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가 이어지자 미국은 북한 석탄·철광석 수출금지 유엔제재로, 6차 핵실험에는 대북원유공급 제한 및 북한 섬유제품 수출금지 등으로 제재를 더욱 강화했다.

긴장 강도가 높아지면서 북미 간에는 거친 외교 수사도 주고받았다. 2002년 1월 부시 미국 대통령이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규정하자 북한은 이를 선전포고라고 비난했다. 2017년 9월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연설에서 북한을 향해 완전한 파괴(totally destory)라는 용어를 쓰자 김정은은 ‘사상 최고의 초강경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벼랑끝전술

이처럼 1990년대 이후 북한은 미사일 및 핵실험을 매개로 미국으로부터 체제보장과 경제지원을 동시에 얻어내려는 벼랑끝전술(brinkmanship)을 구사하고 있다. 벼랑끝전술은 원래 1960년대 미국 젊은이 사이에서 유행했던 게임에서 유래한 말이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상황을 유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상대에게 겁을 주거나 위기감을 조성하는 전술이다. 냉전시기에는 미소 간 대립 상황에서 외교협상을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양측이 사용하던 외교 전략을 의미했다. 냉전 해체 이후에는 핵과 미사일 문제를 둘러싼 북미 협상과정에서 북한이 취한 극단적 방법의 협상전술을 지칭하는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일명 공갈(협박)전술이라고 불리며 북한은 이를 ‘맞받아치기 전술’이라고 한다. 즉 배수진을 치고 협상을 막다른 상황까지 몰고가는 초강수를 띄워 위기에서 탈출하는 북한 특유의 협상전술이다.

북한은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대미협상에서 유일하고 가장 유효한 카드는 핵무력 완성이라는 전략을 굳혔다. 이에 따라 국가적 전 역량을 동원한 끝에 핵개발과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성공으로 바라던 ‘핵무력’을 완성했다. 그러자 미국은 더 이상 제재와 압박수단이 먹히지 않음을 알고 대화전략으로 급선회했다.

핵무력 완성과 북미정상회담으로 북한의 벼랑끝전술이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갈 길은 멀다. 만약 북미관계가 틀어져 과거로 돌아간다면 북한체제보장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북미정상회담으로 과거 어느 때보다 북미 간 관계발전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엄밀히 보면 북한은 아직 벼랑끝에서 탈출하지 못했다. 오히려 과거로 섣불리 돌아갈 수도 없는 절체절명의 벼랑끝에 서있다는 것이 더 적확한 상황표현이라는 것이 다수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박종문기자 kpj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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