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작심삼일, 부끄럽지 않다

  • 배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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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07   |  발행일 2019-01-07 제31면   |  수정 2019-01-07
[월요칼럼] 작심삼일, 부끄럽지 않다
배재석 논설위원

해마다 새해가 되면 한 해를 희망으로 채우려는 사람들의 작심(作心)이 넘쳐난다. 주당과 애연가는 금주·금연을 선언하고, 다이어트·운동·어학공부에 도전하는 이도 많다. 덩달아 헬스장과 어학학원은 특수를 누리고 금연보조제품·운동기구 등 결심 상품이 불티나게 팔린다. 하지만 아쉽게도 새해 다짐과 계획을 1년 내내 유지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벌써 작심 한 달은커녕 작심삼일로 끝나 자신의 약한 의지와 나태함을 탓하며 후회하는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럼 새해 결심이 연말까지 이어져 작심일년(作心一年)에 성공할 확률은 얼마일까. 미국 UCLA 의과대학 연구팀에 따르면 연초에 세운 계획이 성공할 확률은 8% 수준이다. 실패하는 92%의 사람 중 25%는 일주일도 실천하지 못하고 포기했다. 최근 국내 한 결혼정보회사가 미혼남녀 34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지난해 새해 결심을 1년 내내 지킨 사람은 10.9%에 그쳤다. 일주일을 넘기지 못한 사람이 39.7%로 가장 많았다.

갈 길이 멀다고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다. 심리학자와 뇌 과학자들은 작심삼일의 덫에 빠지는 이유가 단순히 노력과 열정 의지 부족만이 아니라 뇌의 작용에 비밀이 있다고 한다. ‘오늘의 한 걸음이 1년 후 나를 바꾼다’의 저자 로버트 마우어 UCLA 교수는 이미 습관화된 일들을 급진적으로 바꾸려 할 때 뇌는 거부반응을 일으킨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변화를 위협으로 받아들여 방어태세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뇌는 방어본능에 지배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평소 하지 않던 공부를 하거나 술·담배를 급하게 끊는 행동은 위협으로 받아들여 방어반응이 작동하게 된다.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도 뇌에 주목한다. 그의 책 ‘열두 발자국’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몸무게의 2%에 불과하지만 전체 에너지의 25%를 소비한다. 이는 인간이 생각하고 신경 쓰는데 상당한 에너지를 사용한다는 뜻으로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뇌가 굳어진 습관을 유지하려 한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새해 결심을 오래 지키는 비결은 뭘까. 정 교수는 절박한 사람이 성공한다고 말한다. 다소 극단적인 예지만 폐암에 걸리는 것이 담배를 끊는 가장 강력한 방법인 이치와 같다. 죽을 만큼 절박하지 않으면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절박함을 만드는 방법으로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를 강조한다. 그러고 보니 필자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하루 1~2갑 피우던 담배를 10여 년 전 사고로 후두를 다쳐 입원한 것을 계기로 금연에 성공했다.

새해 결심을 실천하는 좀 더 현실적인 방법을 원한다면 ‘SMART’ 법칙을 소개하고 싶다. 즉 목표를 세울 때 구체적이고(Specific), 측정 가능하며(Measurable), 달성 가능한 수준이어야 하고(Attainable), 원하는 바를 달성하는 것과 관련이 있고(Relevant), 시간범위를 고려해야(Time-bound) 한다. 예를 들면 운동의 경우 무엇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운동을 일주일에 몇 번씩 얼마나 할지 달성 가능한 목표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목표를 세웠으면 기록해 두는 일도 잊지 말아야 한다. 목표를 적어두면 달성할 가능성이 42%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중국의 은나라 성군 탕왕도 백성을 위한 왕이 되려고 다짐하고 세숫대야에 자신의 좌우명 ‘구일신(苟日新), 일일신(日日新), 우일신(又日新)’을 새겨 놓고 매일 들여다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기해년 새해도 벌써 1주일이 지났다. 아직 새해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이미 작심삼일로 끝났다고 실망할 필요도 없다. 작심삼일도 122번이면 1년이다. 가족과의 특별한 추억도 좋고 운동도 좋다. 시작이 반이다. 19세기 시인 랄프 왈도 에머슨은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어가던 이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이라고 했다. 새해에는 이 같은 심정으로 하루하루 살았으면 한다. 아울러 정치권도 올해는 새롭게 태어나길 기대한다. 얼마 전 미국의 USA투데이와 서포크대학 여론조사에서 유권자들이 원하는 ‘워싱턴의 새해 결심’ 1위는 “그만 싸워라”였다. 여의도를 바라보는 우리나라 유권자들의 바람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새해에는 경제살리기와 민생에 머리를 맞대는 생산적인 정치를 보고 싶다.배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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