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또! 꼬리로 몸통 흔드나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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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07   |  발행일 2019-01-07 제30면   |  수정 2019-01-07
6급·5급 공무원 줄폭로에
靑·여당, 인신공격성 비난
함몰되면 본질 놓칠 수도
외부 시선으로 이슈 보는
레드팀 기능 실종이 문제
[송국건정치칼럼] 또! 꼬리로 몸통 흔드나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 청와대에서 ‘레드팀(Red Team)’ 구성을 검토 중이란 말이 들렸다. 군사용어인 ‘레드팀’은 훈련 과정에서 아군인 ‘블루팀(Blue Team)’의 약점을 파악하기 위해 편성하는 가상의 적군이다. 군 지휘관이 아군 시각에서만 판단을 해서 생기는 오류와 피해를 미리 막자는 취지다. 이를 국정운영에 적용, 청와대가 일반 국민과 시민단체 같은 외부의 시선으로 위기상황을 진단해 보는 프로세스를 구축하려고 했다. 실제로 그때 더불어민주당이 만든 ‘신정부 국정환경과 국정운영 방향’ 보고서에도 문재인정부 집권 초기 소통 전략의 일환으로 위기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레드팀 활용과 이를 상시적으로 전담하는 부서를 신설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보고서는 “레드팀이 국민과 언론은 물론 시민단체와 SNS 여론 등 외부자 입장에서 이슈(위기 상황)를 바라보고, 그 관점에서 대통령 입장의 타당성 내지는 팩트체크 등을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레드팀의 활용은 전임 박근혜정부 몰락의 반면교사 차원에서 검토됐다고 한다. 국정의 중요한 고비마다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폐쇄적인 시각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바람에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국민적 의혹만 키우는 악수(惡手)를 거듭한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레드팀 구상은 구체안을 만들기도 전에 흐지부지됐다. 국정개혁에 본격적인 드라이브를 걸면서 레드팀은 거추장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거다. 적폐를 청산하려면 좌고우면하지 않고 앞만 보고 나가야 하는데, 이런저런 잔소리를 듣기 싫었을지도 모른다. 그 결과 청와대를 위시한 집권세력은 1년7개월 동안 파죽지세로 달렸다.

사실 정권 초기에 현대판 사간원(司諫院) 격인 레드팀을 꾸리는 건 어지간한 각오로는 어렵다. 자칫 정권 안에 시어머니를 두는 결과가 되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기존 시스템이라도 가동돼야 한다. 정치적으로 효율적인 레드팀은 집권여당이다. 민심현장에 가장 가까이 서 있고, 여러 채널을 통해 청와대와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다. 때로는 쓴소리를 하지만 총알까지 날리는 진짜 적군은 아니다. 그러나 민주당은 그런 역할을 하지 못했거나 하지 않았다. 청와대의 기세가 워낙 셌기 때문인지 추미애 대표 시절이나 지금의 이해찬 대표 체제에서도 협력은 있어도 견제는 없다. 그러니 외부의 시선이 국정운영에 투영될 소지와 레드팀 기능은 아예 사라졌다.

청와대 특별감찰반 출신인 김태우 검찰 수사관이 민간인 사찰 의혹을 폭로하자 청와대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궁지에 몰린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울물을 온통 흐리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을 신호탄 삼아 민주당 의원들은 일제히 ‘김태우 때리기’에 나섰다. 뒤이어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이 청와대의 민간기업 인사개입과 적자국채 발행 압력 행사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자 집권여당에서 “꼴뚜기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홍익표 수석대변인), “나쁜 머리 쓰며 위인인 척 위장하고…, 양손에 불발탄을 든 사기꾼”(손혜원 의원)이란 말이 나왔다. 여권에서 어느 누구도 “꼬리가 몸통을 흔들면 안 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폭로자가 아무리 수상쩍어도 입에 재갈을 물리지 말고 의혹을 제기한 내용들을 차분하게 검증해보자는 의견조차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정윤회 리스트 사건이 터졌을 때 문건 내용은 지라시, 문건 유출은 국기문란이라고 규정했다. 그때 지금의 자유한국당 사람들도 일제히 맞장구를 쳤다. 결국 꼬리로 몸통을 흔들어버리는 바람에 몸통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고, 최순실이 계속 활개를 쳤다. 레드팀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대가는 엄청났다.

서울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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