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김정은 신년사 거꾸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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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05   |  발행일 2019-01-05 제23면   |  수정 2019-01-05
[토요단상] 김정은 신년사 거꾸로 읽기
최병묵 정치평론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신년사를 발표했다. 1월1일 공개하는 북한의 신년사는 늘 패턴이 같다. 전년도 국가사업의 성과를 부문별로 점검하고 격려하는 내용이 절반쯤 차지한다. 나머지는 올해 목표와 방향을 언급한다. 2019년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해석은 다양하다. 필자가 보기엔 북한의 ‘과거’를 얼마나 아느냐가 판단을 가르는 중요한 잣대다.

한반도 운명의 키인 북한 핵을 살펴보자. 김정은은 올해 “조선반도에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완전한 비핵화로 나가려는 것은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의 불변한 립장”이라고 했다.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않으며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을 것을 선포했다”고도 했다.

최근 들어 핵 문제가 신년사에 등장한 건 2017년부터다. “첫 수소탄(수소폭탄) 시험과 각이한 공격수단들의 시험발사, 핵탄두 폭발시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됐다.”(2017년), “우리 당과 국가와 인민이 쟁취한 특출한 성과는 국가 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을 성취한 것”(2018년)이라고 매년 진전된 입장을 내놓았다. 그러다 올해는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2017년, 2018년 핵 언급과 2019년의 ‘완전한 비핵화’는 얼핏 모순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북한이 말하는 ‘완전한 비핵화’란 무엇일까. 작년 말 조선중앙통신은 조선반도의 비핵화에 대해 “북과 남의 영역 안에서 뿐만 아니라 조선반도를 겨냥하고 있는 주변으로부터의 모든 핵 위협 요인을 제거한다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3개 연도 신년사 중 핵 부분을 해석해보자. 북한은 2016년에 핵실험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고, 2017년에 ‘핵무력 완성’(핵무기 보유)을 했으며 2018년엔 북한식의 완전한 비핵화 협상을 선언한 셈이다. 이를 2019년 신년사의 “더 이상 핵무기를…” 발언과 연결시켜보면 ‘북한은 현재 핵을 만들어 갖고 있고, 더 이상 만들지는 않겠다’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북한=핵 보유국’이란 말이다. 북한은 2016년 9월9일에 5차 핵실험을 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1990년대 말 5~6차례의 핵실험 끝에 핵무기를 만들었던 것에 비추어보면 북한의 신년사가 허언(虛言)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 북한은 2017년 9월3일의 6차 핵실험(우리측 추정)은 수소탄 실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완전한 비핵화’를 미국과 논의하겠다는 북한의 속셈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사실상 핵보유국이 됐으므로 미국과 동등한 입장에서 협상을 이어가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1990년대 초 주한미군이 보유하던 전술핵을 모두 철수했다. 그 직후 남북한은 기본합의서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실천하기로 했다. 미국은 대신 한국을 핵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핵우산(核雨傘) 정책을 펼쳐왔다. 북한은 몰래 핵개발을 지속해 6차례의 핵실험을 마치고 현 단계에 와 있다.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는 미국의 핵우산 철폐까지를 말하는 것이 명백해졌다. 과연 가능할까. 미국의 핵정책은 단순히 ‘한국 보호’에만 초점이 맞춰진 게 아니다. 중국과의 패권 다툼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북한식 완전한 비핵화’를, 검증하기조차 어려운 폐쇄국가 북한과의 협상을 위해 미국이 바꿀 수 있을 것인가. 불가능할 것이다. 북한이 바로 이 점을 꿰뚫고 있는 듯하다. 결국 올해 신년사는 북한이 핵보유국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화려한 말잔치상 속에 숨겨두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올해 신년사 중에 또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 있다. 북한은 원래 자주, 자립이란 표현을 즐겨 쓰긴 한다. 그럼에도 올해는 ‘튼튼한 자립 경제와 자위적 국방력’ ‘자립적 발전능력 확대 강화’ 등의 표현이 유난히 많이 눈에 띈다. 북한이 미국과 핵협상을 시작하면서 줄기차게 제재 압박 완화를 거론했다는 점에 비춰보면 미국과의 핵협상 실패에 대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마저 가능케 한다.

김정은의 신년사에 대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만남을 고대하겠다”고 화답한 점이 한가닥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건 사실이다. 부디 필자의 전망이 기우였기를 고대해본다.
최병묵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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