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부산 감천문화마을 알짜배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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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04   |  발행일 2019-01-04 제37면   |  수정 2019-01-04
골목골목 날줄 씨줄로 짜여진 미로…보물찾기 하듯 작품감상·추억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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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천문화마을의 독특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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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천문화마을의 명물 별보러 가는 148계단.

마을버스 차창으로 ‘우리가 가꾸는 꽃길’ ‘내 마음 풍선에 담아’가 보인다. 그윽한 낭만이 넘쳐난다. 들머리인 마을안내센터로 간다. 여성 안내원이 ‘감천 할배가 알려주는 알짜배기 코스, 니만 알고 있으래이’를 설명한다. 어떤 경우에는 짧은 시간이 긴 시간보다 더 깊은 의미를 지니고 풍요로울 수 있다.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감천문화마을 스탬프 지도를 2천원에 산다. 1시간20분 소요되는 B알짜코스를 정하고, 먼저 작은 박물관에 들른다.

감천(甘川)의 옛 이름은 감내(甘內)다. 감(甘)은 검(儉)에서 나왔고, 검(儉)은 신(神)의 고어다. 천(川)은 내를 한자로 적은 것이다. 직역하면 신(神)의 개울이다. 참으로 두려운 이름이다. 감천문화마을은 6·25전쟁으로 인하여 충청·전라도를 비롯한 전국의 태극도 신도들이 8·15 광복 이후 부산 보수동에 본부를 차리고 집단 피란 생활을 하던 중 화재 등 말썽이 생기자, 1955년부터 1960년대 초까지 천마산과 옥녀봉 사이 해발 200m에서 300m 지점의 산자락 이곳에 집단 이주, 판잣집 1천가구가 들어서면서 생겨났다. 계단식으로 질서정연한 공동 주거 마을이 특징이다.

이곳은 과거로 들어가는 문이다. 이 마을 속에서는 모든 것이 고정되어 보존된다. 이곳에서의 삶은 기쁨과 고통, 신앙과 죽음이라는 구원의 대극들로 가득하다. 당시 판잣집은 화재에 취약해 방화선 역할을 하도록 폭 6m 정도의 수직 계단을 3개소 설치하여 지금까지 남아있다. 처음 지은 판잣집은 1970년대 슬레이트 지붕, 1980년대 패널 및 슬래브 지붕으로 바뀌면서 변화되었으나 마을 특유의 골목길과 감(甘)으로 불린 도시 구획은 대부분 초기의 형태로 남아 있어 근대문화재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곳에 정착한 태극도는 1918년 태극도 도주가 세운 증산교 계통의 교단으로 알려져 있다. 태극도 도주의 능소는 감천문화마을 천장길방지(天藏吉方地)에 있다. 감천 옛 모습의 흑백 사진을 본다. 1957년 잘 계획된 감천동의 판잣집 거주 마을과 우물 앞에 줄지어 있는 물동이 행렬이 인상 깊다. 나도 과거에 대한 보물창고를 가지고 있다. 내가 했던 일, 사랑뿐만 아니라 절망과 시련까지도 기억의 창고 안에서 보물이 되어 있다. 사랑은 빛으로, 시련은 어둠으로 대비(對比)를 이루며 삶의 형상화가 되고 빛과 어둠이 섞여 기억의 오르가즘이 된다. 그러므로 과거는 의미이고 치료다. 과거가 불쾌하고 고통스러우면 병(病)이다. 감천문화마을은 의미 있고, 내방자를 치료하는 과거의 보물창고다.

하늘마루에 오른다. 의자가 있는 옥상 전망대다. 감천문화마을을 다양한 시각에서 감상할 수 있다. 멀리 부산항과 감천항도 보인다. 자연 환경이 아주 뛰어난 풍수상의 대길지다. 여기 있는 느린 우체통에 엽서를 보내면 1년 뒤에 받아본다고 한다. 지나간 경험을 추억하는 것은 인간만의 권리고 즐거움이다.

◆감내 카페에서 사랑의 자물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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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천문화마을의 인기있는 코스 ‘사랑의 자물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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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내 옛날통닭집과 삼거리 과일상점의 형상화된 벽면.

감내 카페를 지나친다. 움직이는 사진 상점을 둘러본다. ‘8초만의 부산여행, 감천마을을 한권에’는 기막힌 아이디어다. 게딱지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상점들은 오히려 인정이 넘쳐나고 정겨운 풍경이다. 여행객이 많이 지나간다. 외국인도 눈에 띈다. 일본인·중국인도 많이 온다고 한다. 황금항아리 초콜릿 가게도 보고 ‘한번은 꼭 들르는 집’은 그냥 지나친다. 왠지 그러고 싶었다. 오늘만은 선택의 자유를 누리고 싶었다. ‘어서 와 포트 카드는 처음이지’ 상점은 궁금하여 들러본다. 돌아 나와 걸어가니 적멸보궁 관음정사란 간판이 있어 멈추어 생각에 잠긴다. 이런 곳에 불교의 수도처가 있다니. 사람의 가장 밑바닥 삶이 가장 높은 삶이다. 끝없이 아프고 늙어가며 죽어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그 아픔의 소리를 듣고 한없는 자비심으로 치유하고 만져주는 것이 관음보살이다. 그러나 길을 가야 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과거 들어가는 문…神의 개울 ‘감천’
화재 취약, 방화선으로 만든 수직계단
의자가 있는 옥상 전망대 ‘하늘마루’
풍수상 대길지…부산항·감천항 전망

다닥다닥 붙은 활기차고 정겨운 상점
꿈 찾아 나선 여행객에게는 간판도 詩
어린왕자와 사막여우 환상적 뒤태 감탄
살짝 보이는 바다, 큰 별같이 떠있는 섬
마음의 눈으로 보는 알록달록한 마을

벽타고 흐르는 소망 실은 수만 물고기
닿는 곳마다 온통 즐거움·아득한 여운



두근두근 낭만 상점도 보고, 레이저 각인 팔찌 만들기, 무변색 깔끔한 컴퓨터 작업, 커플 템이라 적혀 있다. 인간의 삶이 얼마나 다양하고 변화무상한가. 이럴진대 어떻게 해서 내말만 참이고, 내 사랑만 로맨스인가. 수제 마카롱 아이스크림 점보도 있다. 단어가 예뻐서 소리 내어 불러본다. 입으로 불러보는 것도 먹는 것만큼 맛있다. 똥 빵, 똥 꼬야기, 캐릭터 아이스크림이 상표로 적혀있다. 먹기 전에 침이 고인다. ‘똥하고 빵하고’는 하나의 줄에 서 있는 다른 이름이다. 마찬가지로 삶도 죽음도 하나의 줄에 서 있는 다른 이름이다. 문화마을이라 그런 걸까. 이름마다 해학과 살아가는 깊은 맛이 물씬물씬 풍긴다. 그냥 간판만 보아도 시간은 인간의 향기를 풍기며 흐른다. 눈으로 먼저 마시는 블루 큐라소 레몬 에이드도 얼마나 곱고 하롱하롱한 간판인가. 꿈을 찾아 가는 여행객에게 이보다 더 좋은 시(詩)가 있을까. ‘사랑의 자물쇠로 사랑을 확인해요’도 본다. 그 사랑 때문에, 당신은 사랑 받고자 태어난 사람. 찬송가가 들려오는 것 같다.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도 하나의 줄에 서 있는 다른 이름이다.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 그 수렁에 빠져 얼마나 허우적거렸던가.

◆어린왕자와 사막여우에서 피니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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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천문화마을의 인기 포토존인 어린왕자와 사막의 여우.

마냥 더 걷는다. 바다를 바라보는 ‘어린왕자와 사막여우’가 있다. 그 미적 구성에 감탄한다. 어린왕자와 여우가 다정히 앉아 있다. 어린왕자는 짙은 검은 머리칼에 선홍빛 상의를 입고 귀엽게 앉아 있고, 좀 떨어져 사막여우가 앙증맞게 앉아 있다. 그 돌아앉은 환상적인 뒷모습에 감탄한다. 어린왕자와 사막여우, 그 눈길을 따라가면 바다가 살짝 보이고, 그 너머 섬이 큰 별 같이 떠 있고 반달 같은 골 안의 감천마을이 알록달록 모자이크로 보인다.

현실의 숨 막히는 사막 속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숨 돌릴 수 있는 오아시스가 되어 주는 사람, 사랑은 덧셈 뺄셈이 아니라는 어른을 위한 동화다. 어린왕자와 여우의 명대사가 귀에 들리는 것 같다. 여우 “아주 간단한 거야. 잘 보려면 마음으로 보아야 해.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거든” 우리도 언제 마음의 눈으로 가장 중요한 것을 잘 보게 될까. 등대 포토 존에서 스탬프를 찍는다. 정지용의 시 ‘향수’를 역동적인 활자로 시각화해 벽을 꾸몄다. 조금 더 가면 벽면에 물고기 조형이 가득하다. 개인의 소망과 낙서를 적은 작은 물고기 수만 마리가 모자이크되어 벽을 타고 흘러간다. 각각의 얼굴만큼 다양한 각양각색의 마음이 저렇게 감천, 즉 신의 개울을 헤엄치는 물고기가 되어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 낮고 작으며 다닥다닥 이어진 집들 사이의 골목여행이 감천문화마을 여행이다. 그 골목골목이 날줄 씨줄로 짜여 수수께끼처럼 미로 미로를 만든다. 어느 곳도 놓칠 수 없는 여행이다. 바로 보물찾기를 하듯 골목골목 다니는 것이 온통 즐거움이다. 그리고 작품 감상이 바로 추억이 되는 길이다.

감내 작은 목간에 들어간다. 옛날 목간통을 그대로 조형화했다. 졸면서 수부를 지키는 아줌마와 탕에서 때를 미는 할아버지가 익살스럽다. 금빛 반달고개와 게스트 하우스를 설뚱하게 지나고, 희망의 메시지에서 스탬프를 찍고 감천문화마을 여행의 막을 내린다. 평화의 집에서 본 ‘평화는 다른 생각을 존중하는 것이다’라는 팻말과 ‘미로 미로의 골목’은 그다음 무엇이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훨씬 더 행복한 여행이 될 수 있었다는 두 가지 느낌이 아득한 여운을 그린다. 그리고 오늘 하루 나는 나 자신에 대해 마음껏 웃을 수 있었다.

글=김찬일(시인·대구힐링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김석(대우여행사 이사)

☞여행정보

▶트레킹 코스 : 마을안내센터 - 작은 박물관 - 사진갤러리 - 하늘마루 - 어린왕자와 사막여우 - 등대 포토존 - 평화의 집 - 행복발전소

▶문의: (051)204-1444, 070 - 4485 - 7405

▶내비 주소 : 부산시 사하구 감내2로 203 (감천문화마을 안내센터)

▶주위 볼거리 : 아미산전망대, 용두산 공원, 국제시장, 송도해상케이블카, 자갈치 시장, 태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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