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아들에게서 배운 행복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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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29   |  발행일 2018-12-29 제23면   |  수정 2018-12-29
[토요단상] 아들에게서 배운 행복의 의미
최환석 맑은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아들이 아주 어렸던 어느 날 밤에, 늘 그렇듯이 불을 끈 채로 같이 누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고 있었다. 아마 그날의 대화 주제가 시간의 흐름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아들이 돌아누워 있길래 잠을 청하는 줄 알았지만, 어깨가 가늘게 흔들리면서 흐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놀란 나는 왜 우냐고 물었고, 아들은 울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아빠, 나는 엄마 아빠 형 할아버지 할머니 다 좋아. 내가 어른이 안 되어도 좋으니까 모두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어. 아무도 안 죽었으면 좋겠어.” 나는 깜짝 놀란 눈으로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이 어린 녀석이 죽음을 이해하면서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더 놀라운 건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지 않기 위해 자신이 어른이 되는 것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어린아이의 최고희망을 버리다니! 나는 아이를 재우면서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 녀석, 지금 정말 행복하구나.’

그날 밤은 행복의 의미를 생각하느라 잠을 잘 못이뤘다. 아들은 자신의 주위를 감싸는 관계만으로도 행복감을 느꼈기 때문에,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나의 행복관을 흔들어 놓았던 것이다. 우리는 흔히 행복이라고 하면 무언가 즐거운 일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붓다는 즐거운 일을 추구한다면 고통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즐거움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고 결국 사라져버리는데, 사라진다는 자체만으로도 고통이 따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육신의 즐거움을 끊임없이 추구하게 되는데, 보통 이런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 행복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 욕구는 영원히 충족되기 힘들므로 우리는 대부분 불행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붓다는 행복을 고통이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뭔가 즐거운 일이 일어나는 상태가 행복한 것이 아니라 고통이 없는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 행복한 상태라는 말은 살면서 더 공감하게 된다. 그렇다고 돈도 해결책이 못된다. 가난을 벗어나는 지점까지는 돈과 행복은 상관관계를 보이지만 그 이상이 되면 아무 관계가 없게 된다. 즉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이 되었다면 돈은 행복에 크게 기여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우리 모두가 붓다의 경지는 고사하고 거기의 반이라도 가기 힘들다는 것을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는 것이 좋겠다. 호모 사피엔스는 필요 이상 과잉의 뇌를 가지고 태어났다. 이렇다보니 생존에 필요한 영역과 지금 활동에 필요한 영역 외에는 할 일이 없어 따분하게 여기는 영역들이 생긴다. 다른 동물들처럼 먹이활동이나 번식활동이 끝나면 세상을 관조하며 조용히 지내는 것이 아니라 뭔가 자극거리를 끊임없이 찾게 된다. 이러다가 그만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을 지배하는 종이 되어버렸지만 불행히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추구해야만 하는 딜레마에 빠져 버렸다. 하지만 도파민과 엔돌핀으로 자극되는 즐거움은 앞에서 보았듯이 행복의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되지 못한다. 그나마 즐거움보다 기쁨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조금 더 행복해 보인다.

그렇다면 어디서 기쁨을 찾을 수 있을까? 물론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는 등 지적인 활동에서 기쁨을 찾을 수도 있고, 취미생활에 매진해서 기쁨을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기쁨은 역시 관계에서 온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나쁜 관계를 피한다는 것은 내 주위의 근심을 몰아내게 된다. 가족끼리 사이가 좋아야 마음이 편하고, 여행을 가더라도 좋은 사람과 같이 가는 것이 더 마음이 편한 건 당연한 일이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행복도가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조금 더 높은 것으로 나오는데, 이는 믿음의 문제라기보다 작은 사회를 제공함으로써 서로 간의 관계에서 오는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또한 선진국처럼 사회적 소득격차를 줄인다는 것은 직장 내에서 차별보다는 동등한 관계를 더 경험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연말을 맞아 행복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썼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다면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모두 행복해질 수 있다.최환석 맑은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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