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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CGV가 지난 6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도 누적 관객수는 거의 2억명으로 2017년도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국민 1명이 1년에 4편의 영화를 본다니 어마어마한 수치다. 그러나 사정을 살펴보면 외국 영화는 대부분이 프랜차이즈 영화들 (월드와이드 박스오피스 기준 10위 작품 가운데 8편이 프랜차이즈 작품) 이었고 한국영화 역시 ‘신과 함께’ 같은 한국형 프랜차이즈 영화를 위시한 블록버스터에 충실해 관객 입장에선 아쉬웠다. 하지만 그 악조건에서도 반짝거리는 영화들이 있어, 작년에 이어 2018년 올해의 한국영화 가운데 상업영화 5편, 다양성영화 5편씩 10편을 골라보았다. 무순이다.
민주항쟁 30주년에 개봉된 ‘1987’
관객 723만명 불러 모으며 화제
거장 이창동 8년만의 신작 ‘버닝’
해외·국내평단 평가 극과극 갈려
포스트 세월호 ‘살아남은 아이’
韓영화계 악조건 속 반짝인 작품
# 상업 영화
① 1987(장준환 연출)
1987년 직선제를 외치며 시위하다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고문받다 숨진 박종철의 죽음으로 시작된 6월 민주항쟁 30주년이 된 해에 개봉해 723만 명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 모았다. 그들 대부분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시킨 ‘촛불 혁명’에 함께한 이들이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야만의 시대를 기록하고 고발한 ‘1987’의 장준환보다 지구를 통째로 날려버리는 상상력을 뿜었던 ‘지구를 지켜라!’를 더 사랑하는 사람으로, 이 영화로 장 감독의 차기작을 가슴 졸이며 기다리지 않아도 된 일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② 버닝(이창동 연출)
2010년 ‘시’ 이후 무려 8년 만에 만나게 되었던 거장의 신작. 해외 영화 평단의 압도적인 평가와 다른 국내 평단과 관객들의 평가는 극과 극을 달렸다. 이 영화를 ‘올해의 한국영화 1위’로 꼽은 ‘씨네21’의 평가처럼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기 위해 자신에게 익숙한 것을 벗어던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재평가되리라 확신한다.
③ 공작(윤종빈 연출)
대한민국 첩보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었던 대북 공작원 ‘흑금성’을 스크린으로 불러들인 윤종빈 감독의 신작. 수많은 남북 소재 영화 가운데 단연 돋보인 부분은 스파이물임에도 액션보다 인물들의 눈빛과 대사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윤 감독의 세심한 연출과 배우 황정민, 이성민의 놀라운 연기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 수밖에 없다. 얼마 전 ‘미롱’으로 대구를 찾기도 했던 배우 기주봉이 연기한 김정일 위원장도 잊지 못할 거다.
④ 미쓰백(이지원 연출)
이지원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 아픈 과거를 안고 살아가는 상아가 자신과 닮은 아이 지은을 만나고 아이를 지키기 위해 세상과 맞서는 이야기다. 어른이 학대당하는 아이를 구하려는 시도에서 한발 더 나아가 허술한 사회적 안전망 아래 아동학대의 실상이 얼마나 복잡한 양상으로 이뤄져 있는지를 충실히 고발하려는 작품이라 더 반가웠다. 기존 이미지를 180도 바꾼 배우 한지민의 용감한 도전은 기억해둘 만하다.
⑤ 국가부도의 날(최국희 연출)
배우들의 앙상블 연기가 돋보였던 ‘스플릿’ 최국희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 국가부도라는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막으려는 사람과 그 위기에 베팅하는 사람, 자신이 속한 회사와 가족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각자 다른 선택지를 고르는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는 ‘1987’과는 다른 의미에서 과거를 통해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시대정신을 정직하게 담은 이야기와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를 이끌어낸 최 감독의 차기작이 궁금하다.
# 다양성 영화
① 살아남은 아이(신동석 연출)
신동석 감독의 장편 데뷔작. 고등학생 아들을 잃은 부부가 아들의 목숨과 바꿔 구한 소년을 만나고 돌보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을 그린 사려깊고 통렬한 드라마로 ‘포스트 세월호’ 영화라 보면 되겠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기획 전공 출신 프로듀서 4명이 뭉쳐 만든 제작사 ‘아토ATO’는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을 시작으로 신준 감독의 ‘용순’, 김종우 감독의 ‘홈’ 같은 반짝거리는 작품들을 선보여왔다.
② 공동정범(김일란·이혁상 연출)
2012년 6월 개봉한 ‘두 개의 문’의 스핀오프. 용산 참사를 다룬 첫 극장 개봉작이었던 ‘두 개의 문’이 진압작전에 참여했던 경찰 특공대원의 시선으로 사건을 재구성했다면 ‘공동정범’은 망루에서 함께 살아남은 이들의 엇갈린 기억을 좇으며 개인의 삶에 파고든 국가폭력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내 ‘다큐멘터리의 존재 이유를 보여주는’ 영화다. 여성주의 세미나 그룹에서 시작한 제작사 ‘연분홍치마’의 후속 작업도 기대하게 한다.
③ 죄 많은 소녀(김의석 연출)
10대를 통해 바라본 현대사회의 단면을 보여준 강렬한 드라마.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10대 성장영화들이 10대 남자들의 성장통에 주력했다면 ‘죄 많은 소녀’는 흔히 피해자로 묘사되거나 한쪽으로 밀려났던 10대 여성들의 이야기라 더 주목할 만하다. 시종일관 결백을 주장하지만 누구도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지 않자 충격적인 선택을 하는 ‘영희’로 분한 배우 전여빈은 단연 ‘올해의 발견’이라 하겠다.
④ 소공녀(전고운 연출)
전고운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자 광화문시네마의 넷째 작품. 전 감독은 이 작품으로 올해 거의 대부분의 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을 받아냈다. 이 무한경쟁의 시대에 자존과 품위와 취향을 지키려는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영화라니. 광화문시네마가 그간 만든 ‘1999, 면회’ ‘족구왕’ ‘범죄의 여왕’으로 이어지는 청춘물은 한국영화계의 보석이다.
⑤ 어른도감(김인선 연출)
과장도 없이 폭력과 신파로 빠지지 않고도 웃음과 감동 모두를 관객에게 줄 수 있다는 걸 입증하는 드라마. 정체를 알 수 없는 성인 남자가 여자아이의 주변을 맴도는 초반부에서 각자 다른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경언과 재민의 사기행각이 펼쳐지는 후반부까지 시종 긴장감을 유지하는 건 오롯이 이 영화로 장편 데뷔한 김인선 감독의 빼어난 연출력에서 나온다.
올해는 상업영화보다 다양성영화에서, 중견감독보다 신인감독들이, 남성감독보다 여성감독들의 신작들이 더 많이 반짝였다. ‘인랑’의 실패와 ‘완벽한 타인’의 성공으로 내년엔 외적 요인보다 기본에 충실한 영화들이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독립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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