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라일락뜨락 1956’권도훈

  • 김수영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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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28   |  발행일 2018-12-28 제35면   |  수정 2018-12-28
이상화 시인과 커피에 빠진 디자이너…“생가 뒤뜰 카페에서 예술 싹텄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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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디자인업체를 운영하면서 이상화 시인에 매료돼 카페 ‘라일락뜨락 1956’까지 열게 된 권도훈씨가 카페 마당에서 포즈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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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입구를 장식하고 있는 이상화 시인의 벽화. 권도훈 대표가 직접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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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라일락뜨락 1956’에서 열렸던 공연.

잘 나가던 디자인전문회사 대표가 커피와 이상화 시인에 빠져 카페까지 차려버렸다. 이상화 생가 뒤뜰이었던 곳에 있는 1950년대 집을 리모델링해 카페 ‘라일락뜨락 1956’을 오픈한 것. 겉보기에는 그냥 자그만한 한옥을 리모델링한 카페처럼 보이지만 아담한 마당에 자리한 라일락은 200년이나 된 고목이다. 또 이상화 생가터의 뒤뜰에 있어서 어릴적 이상화와 관련된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 법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나무다. 후미진 골목, 전혀 카페가 있을 법하지 않은 곳에 자리한 카페 ‘라일락뜨락 1956’은 그래서 이채롭다. 권도훈 대표는 카페이지만 영리만을 목적으로 이 곳을 운영하지는 않는다. 커피가 좋고, 이상화 시인이 좋고, 그리고 이 카페에 자리한 라일락에 사로잡혀 급기야 카페까지 열게 된 그는 이 곳에서 자신의 새로운 꿈을, 그리고 지역 근대문학을 포함한 문화예술을 새롭게 키워나가고 싶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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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뜨락 1956’의 심벌.

디자이너로 다양한 활동과 수상 경력
핸드드립 커피 입문“운명이라 생각”

도심재생 교육…이상화 생가터에 관심
한옥과 200년된 라일락 나무에 반해
어릴적 상화 시인 이야기 상상력 자극
6개월간 리모델링후 한옥 카페 오픈

카페 오는 골목길 이상화 벽화도 그려
지역문화예술인들 친근한 공간 덕담
시낭송·버스킹 공연 의뢰도 많이 해
문화예술 키워나가는 장소되길 바라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디자이너로도 꽤 오랫동안 활동했습니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대학 재학 당시 제일기획에서 주최한 광고공모전에 입상한 것이 디자인업계로 뛰어들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계명대 디자인대학원 졸업 후 광고대행사 직원부터 시작해 도도커뮤니케이션즈, 도도컴 등의 디자인회사를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회사 운영이 쉽지 않아 회사를 접었다가 2년 전 또 디자인스톰이라는 회사를 설립했지요. 디자인이 운명이다 싶었습니다.”

▶우리가 알 만한 디자인도 많이 개발한 것으로 압니다.

“영남이공대 겸임교수로 12년간 일하면서 학생들과 여러가지 프로젝트 수업을 했습니다. 포항 구룡포 과메기 브랜드 개발, 경북도립예술단 CI 개발 등을 진행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대구패션업체인 발렌키 브랜드 리뉴얼 디자인을 하고 달서문화재단 CI 전국공모에 당선되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그는 디자인분야에서 다양한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다. 2015년 대구디자인전람회 추천작가상, 2010년 제29회 대구산업디자인전람회 금상, 2009년 매일신문 광고대상 창작부문 대상, 2009년 제28회 대구산업디자인전람회 동상 등을 비롯해 대한민국산업디자인전람회, 경북산업디자인전람회, 대구산업디자인전람회, 한·중 현대포스터 교류전, 대구하계대회 홍보도안공모 가작솔루스 광고공모전 등에서도 입상했다.

▶디자인회사를 운영하면서 고생도 많이 했다고 들었습니다.

“광고디자인을 하면서 꽤 많은 돈을 벌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업은 리스크가 상당히 큽니다. 디자인을 의뢰한 업체가 부도를 맞으면서 내가 운영하는 업체가 휘청거리던 예가 몇 번 있었습니다. 디자인업체는 디자인만 잘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을 의뢰한 업체의 경영상태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카페를 열게 된 한가지 이유이기도 합니다.”

▶커피를 무척 좋아한 것도 큰 이유라고 했습니다.

“커피를 좋아해 괜찮은 카페가 있다고 하면 찾아다니면서 먹을 정도였는데 지난해 봄 지인이 핸드드립 강좌를 같이 배우자고 해 재미삼아 배웠습니다. ‘커피맛을조금아는남자’에서 3개월과정의 핸드드립 수업을 들은 뒤 회사 사무실에서 혼자 실습을 했습니다. 회사로 손님이 찾아오면 직접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대접했지요. 그런데 의외로 반응이 좋아 회사에 작은 공간을 마련해 카페처럼 만들었습니다. 올해 초 커피를 좀더 깊이있게 배워보자는 욕심에 ‘모캄보’에서 바리스타 2급 자격증을 땄습니다. 지난해 대구가톨릭대 외식산업 최고경영자과정도 수료했습니다.”

▶‘디자인처럼 커피도 운명이다 싶었다’고 했는데요.

“20여년간 디자인 일을 하면서 밤을 지새운 일이 참 많았습니다. 힘들었지만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그때의 흥분이 커피를 접하면서 새롭게 일어났습니다. 바리스타의 길로 가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지요. 커피를 좋아하고 평소 마당이 있는 한옥을 좋아했던 터라 디자인작업실과 카페를 같이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대구시청에서 마련한 도심재생 관련 교육도 받았다고 했습니다.

“마당있는 오래된 집, 과거의 흔적이 남아있는 골목 등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세월더께가 남아있는 그런 공간들이 왠지 친근감이 느껴지고 많은 이야기들이 숨겨져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 같아 좋았지요. 그래서 중구 근대골목을 많이 돌아다니고 골목투어에도 여러 차례 참여했습니다. 그러던 중 대구시에서 올해 초 도심재생과 관련한 교육과정이 있다고 해서 일반과정은 물론 심화과정까지 교육받았습니다.”

▶‘라일락뜨락 1956’을 오픈할 집도 그 과정에서 알게 되었나요.

“2년 전 근대골목투어에 참가했습니다. 이상화 고택을 익히 들어봤던지라 무의식적으로 이상화고택이 생가인줄 알았는데 그 투어에 참가한 뒤 고택에서 멀지 않은 곳에 생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생가에서 이상화가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냈다고 했지요. 그 생가 터 뒤에 있는 자그만한 뜰에 라일락나무가 있었는데 그것을 보고는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듯 했습니다. 라일락나무를 끼고 ㄷ자형으로 자리한 오래된 한옥에도 시선이 머물렀습니다. 그 곳에 다녀온 뒤 이상화 시인과 관련한 공부를 했습니다. 최근에도 달서구에 있는 상화기념관을 둘러보고 그의 평전을 읽는 등을 통해 이상화 시인을 공부하고 이상화 시인과 라일락의 연관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한옥의 구입부터 카페 오픈까지 고생을 한 것으로 압니다.

“커피를 배운 뒤 디자인작업을 하면서 바리스타로서도 활동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욕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상화 생가터 뒤에 있는 한옥이 떠올랐습니다. 이 곳이 적지다 싶었지요. 백방으로 애써 라일락나무가 있는 그 한옥을 사들였고 6개월동안 리모델링을 했습니다. 리모델링의 콘셉트는 오래된 한옥의 느낌은 살리되 모던한 디자인으로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잡았습니다. 일반 한옥카페와는 다른 디자인을 하기 위해 한옥 천장 진흙의 거친 부분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그와 상반되는 깔끔한 흰색 면을 만들어 대비가 되게 했습니다. 오래된 나무기둥도 그대로 살렸지요.”

▶‘라일락뜨락 1956’이라는 카페이름에도 의미가 있을 듯 합니다.

“한마디로 해석하면 1956년에 지어진 한옥 마당에 라일락이 있는 집이라는 브랜드네임입니다. 식물연구가인 한국분재협회 중앙회 이재숙 부회장에게 라일락의 나이를 물어보니 수령이 200년 정도 된다고 했습니다. 이상화 시인이 어렸을 때도 이 나무는 상당히 컸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집 뒤뜰에 있는 라일락나무 주위에서 이상화 시인이 많은 시간을 보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 나무는 상화 시인과 관련해 많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나무입니다.”

▶라일락나무에 대한 새로운 정보도 있다고 하셨는데요.

“제가 이상화 시인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을 아는 지역의 한 시인이 이상화 생가를 그린 조감도를 발견하고 저에게 주셨습니다. 그 자료에 따르면 이상화생가 안채가 바로 카페가 있는 자리이고 마당 중앙에 있던 나무가 현재 라일락나무 같습니다. 자료에 대한 검증이 더 따라야겠지만 ‘라일락뜨락 1956’이 가지는 공간적 의미는 있는 듯 합니다.”

▶카페로 들어오는 작은 골목길도 색다른 느낌을 줍니다. 특히 이상화 벽화가 눈길을 끄는데요.

“이 카페로 들어오려면 작은 골목길을 꽤 걸어와야 합니다. 그냥 골목길도 좋지만 좀더 재미있는 느낌을 주기 위해 골목길에 꽃 등의 벽화를 그렸습니다. 카페 입구 부근에는 이상화 시인의 모습을 4종류의 벽화로 그려보았습니다. 이 벽화를 직접 그리면서 무척 행복했습니다. 처음 벽화를 그릴 때는 반대하는 주민도 있었으나 벽화가 완성된 뒤 골목분위기가 화사해지는 것을 보고는 자신의 집벽에도 그림을 그려달라고 해 기뻤습니다. 칙칙하던 골목이 화사해지는 것을 보면서 또다른 보람을 느꼈습니다. 앞으로 여건이 된다면 이 부근의 골목에 벽화작업을 이어가고 싶은데 서예가, 캘리그래퍼 등과 협업해서 진행할 계획입니다. 이상화 선생의 삶과 대표작을 보여주는 작업으로 진행하려 합니다.”

▶카페에 문화예술인들이 많이 오고 있다고 했는데요.

“처음 오는 분들은 이 카페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많은 분이 그래서 오히려 더 기억에 남고 친근감이 가는 공간이라 합니다. 이 카페를 찾아오면서 어릴적 자신의 집을 찾아가는 기분이 든다는 분들도 꽤 많습니다. 지역문화예술인들도 많이 찾는데 라일락나무 아래에서 시낭송이나 버스킹을 하고 싶다고 합니다. 그동안 몇차례 진행해 호응을 얻었는데 앞으로도 좋은 프로그램이 있으면 같이했으면 합니다.”

▶‘해리 포터’와 같은 좋은 작품이 탄생하는 카페가 되길 바란다는 말도 했습니다.

“생후 4개월된 딸과 함께 에든버러에 정착한 조앤 K. 롤링은 일자리가 없어 1년여 동안 생활보조금으로 연명하면서 동화 쓰기를 결심하고 집 근처 카페에서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완성했습니다. 이 책은 출간 즉시 화제가 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지요. ‘라일락뜨락 1956’도 해리 포터를 탄생시킨 그런 카페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역문학인 중 한 분은 이 카페를 포함한 부근의 골목을 근대문학의 태동길이라고 했습니다. 최근 대구시에서 대구 출신의 천재화가 이인성의 생가를 근대문화전시관으로 복원한다는데 부근에 있는 이상화 시인의 생가 터도 복원되기를 기대합니다. 이 카페가 지역문화예술이 발전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는 장소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건이 된다면 라일락 꽃이 피는 4~5월에는 ‘이상화생가 200년 라일락꽃축제’ 같은 것을 열어 라일락을 주제로 한 글쓰기, 그림그리기 등을 교육기관과 공동주최하고 싶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이 공간은 저 개인만의 공간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함께하는 문화공간입니다.”

글=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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