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진의 정치풍경] 갑 정치인, 을 정치인

  •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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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27   |  발행일 2018-12-27 제30면   |  수정 2018-12-27
지역 주민엔 乙 공무원엔 甲
하지만 미디어 발달 때문에
전국민에 乙인 상태로 전환
이런 상황 인식 못한 정치인
사슴이 산타의 수레 타는 격
2018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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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만평가

정치인은 갑이기도 하고 을이기도 합니다. 지역구 주민은 하늘처럼 모셔야 하는 갑이지만 공무원은 추상같이 다루어야 할 을입니다. 수도권이 지역구인 국회의원은 매일 갑과 을의 역할을 반복합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산이나 배드민턴장을 돌면서 머리를 조아리고 “밤새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90도 인사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나랏일에 대한 걱정으로 응대합니다. 성실한 의원은 수첩을 꺼내 들고 메모까지 합니다. 아침 운동을 마치면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출근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의원님’ 세상입니다. 의원회관 소파에 앉아 있으면 상임위 소속의 장·차관이 방문해서 일일이 현안을 설명합니다. 의원들의 지나가는 말씀 한마디조차 놓치지 않고 메모를 합니다. 회의가 열리면 공무원들이 혼비백산할 정도로 매섭게 꾸짖어야 일 잘하는 의원 소릴 듣습니다. 대부분의 의원이 지역구의 을과 여의도의 갑 역할을 무난히 수행합니다. 그러나 미디어의 발달 덕에 세상이 좁아졌습니다. 이제 국회의원은 자신의 지역구뿐만이 아니라 전 국민의 을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실수하는 정치인이 의외로 많습니다.

최근 갑질 의원들의 이야기가 언론에 실렸습니다. 한 의원은 김포공항에서 보안요원으로부터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어 보여줄 것을 요구받자 규정에 없다고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국회의원인데 그런 규정을 모른다고 밝혔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순간 스스로가 공무원을 비롯한 모든 사람의 을임을 공표한 것입니다. 공항의 보안요원은 당연히 을이 갑질을 했다고 만천하에 고발했습니다. 또 한 의원은 자신의 인사를 기분 나쁘게 응대한 사람 앞에서 비염 때문에 고인 침을 뱉었습니다. 생면 부지의 사람이 불손한 태도를 보였으니 자신이 무심한 행동을 해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 듯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에 의한 평판이 건너 건너서 지역구 유권자 마음에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두 의원 모두 국회의원은 특정 지역구를 넘어 전 국민의 대리인이라는 생각에 미치지 못한 듯합니다. 그래서 사슴이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수레를 타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시사만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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