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강국 코리아’ 어쩌다…4차산업 분야 한국기업 1등 ‘0’

  • 손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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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27  |  수정 2018-12-27 07:38  |  발행일 2018-12-27 제21면
성장 발목잡은 규제
‘IT 강국 코리아’ 어쩌다…4차산업 분야 한국기업 1등 ‘0’

한때 우리나라는 IT(정보기술) 강국으로 통했다. 하지만 지금은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주요 기술로 꼽히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 3차원(3D) 프린팅, 드론,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에서 1등이 하나도 없다. 한수 아래로 여겼던 중국은 전에 없던 규모의 경제를 앞세워 빠르게 추격하고 미국과 독일 등 선진국은 이미 앞서 뛰어간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변혁의 시기에 한국이 처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세계 20대 인터넷 기업 중 한국기업 없어

국내 인터넷기업의 경쟁력이 미국과 중국에 한참 뒤처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 20일 인터넷 산업의 투자 거물 메리 미커가 24년째 발간해 온 ‘2018 인터넷 산업 트렌드’ 보고서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자료에 따르면 시가총액 기준 세계 20대 인터넷기업은 미국(11개사)과 중국(9개사) 두 국가가 독점하고 있다. 2013년에 이름을 올렸던 한국의 네이버와 일본 야후재팬, 라쿠텐 등은 중국기업에 밀려 순위권에 들지 못했다. 그해 20위에 든 중국기업은 텐센트와 바이두, 넷이즈 3개였는데 올해 알리바바, 디디추싱 등이 포함되면서 9개로 크게 늘었다.

미국의 경우 전통적 인터넷 강자들이 많아 명단이 눈에 띄게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5년 동안 각 기업의 가치기 급증했다. 애플의 경우 시가총액이 2013년 4천180억달러(462조원)에서 2018년 9천240억달러(1천조원)로 120%쯤 증가한 뒤, 올 8월 1조달러(1천129조원)를 넘어섰다. 이 밖에도 아마존(547%), 마이크로소프트(158%), 구글(156%), 페이스북(860%) 등 나머지 상위 5개 기업도 모두 폭발적인 성장률을 기록했다.

세계20대 인터넷기업 美·中차지
中, 5년새 3개→9개사로 급성장
애플은 시가총액 120% 늘어나
상위 5개社 폭발적 성장률 보여

中, 은행업 소유·경영 규제 없어
인터넷전문은행 4개 영업 ‘성황’
2016년 원격의료 서비스도 허용
약사 문진받고 의약품 배송받아

韓, 은산분리 규제로 활성화 안돼
의료데이터 개인정보로 활용제약
전문가 “중국에 기회 빼앗길 것”

또 미국의 상위 20위 인터넷기업들은 드론, 자율주행차 등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 혁신적인 시도를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경연에 따르면 아마존은 드론을 활용한 배송사업 ‘프라임 에어’를 2019년까지 상용화할 계획이다. 하지만 한국은 드론 활용 서비스를 시험할 수 있는 환경이 취약하다. 국가 주요시설과 비행장 반경 9.3㎞ 이내에서는 드론을 띄울 수 없고, 야간 비행은 특별승인 없이는 원칙적으로 금지다.

클라우드 사업과 승차공유서비스도 마찬가지다. 미국 정부가 클라우드 서비스 이용률을 70%까지 끌어올리고 있지만, 한국은 정부부처의 클라우드 서비스 이용을 막는 규제 때문에 산업을 성장시킬 수 없는 환경에 처했다. 이번 보고서에서 승차공유서비스 기업인 미국의 우버와 중국의 디디추싱은 나란히 15위, 16위를 기록했다. 한국에서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규제로 인해 승차공유 사업을 시작할 수 없지만 미국과 중국은 그렇지 않다.

◆IT강국으로 떠오른 중국…한국은 각종 규제로 뒤처져

중국은 더 이상 짝퉁·싸구려를 만들던 나라가 아니다. DJI·ZTE·화웨이·텐센트가 자리 잡은 선전은 아시아의 실리콘밸리로 통한다. 40년 만에 200m가 넘는 초고층 빌딩이 10개(중국 최대)가 넘는, 인구 1천200만명 규모의 초거대 혁신창업 도시로 변모했다. 경제 규모에서 홍콩을 앞질렀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적한 어촌이던 선전은 이제 세계 IT기업의 메카로 탈바꿈했다.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와 같은 중국 핀테크 기업들은 최근 눈에 띄게 성장했다. 현재 중국에서는 알리바바, 샤오미, 바이두의 은행까지 4개의 인터넷전문은행이 성황리에 영업 중이다. 2014년 2월 텐센트의 위뱅크 출범과 함께 인터넷전문은행 활성화에 앞장선 덕분이다. 반면에 한국의 인터넷은행 2곳은 2016년, 2017년에 영업을 개시했다. 이와 같은 한·중 간 격차는 은산분리 규제 때문으로 보인다고 한경연은 풀이했다.

중국은 산업자본의 은행업 소유 및 경영에 대한 규제가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내년 9월이 돼서야 산업자본의 인터넷전문은행 지분 보유한도가 4%에서 34%까지 확대된다. 중국은 이미 간편 결제 시스템이 활성화됐으나, 한국은 올해 겨우 QR코드 결제시스템이 도입됐다.

국내 의료법 규제로 인해 시도조차 어려운 원격의료 분야에서도 중국 기업들은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알리페이의 의료 서비스 중 하나인 미래약국을 통해 고객은 원격으로 약사의 문진을 받고 의약품까지 배송 받을 수 있다. 이는 중국이 2016년 3월 중국 내 병원-환자 간 원격의료 서비스를 전격 허용한 덕분이다.

텐센트는 정부·학계와 협력해 3억명의 진료 기록을 바탕으로 ‘다바이’라는 인공지능(AI) 의사를 출시했다. 바이두의 두라이프(Du-life)는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서 받은 개인건강정보를 바이두 클라우드에 저장해 의료서비스 제공에 활용한다. 반면 한국은 개인정보보호법으로 인해 의료 데이터 활용 사업에 제약이 많다. 국공립의료기관의 자료를 활용할 수 있는 주체도 한국보건의료연구원 한곳뿐이며, 민간 병원은 불가능하다.

1990년대 정보통신 기술혁명은 한국을 IT 강국으로 변모시켰다. 80년대 후반 IT 개도국이었던 한국은 디지털 이동통신으로의 변화 시기를 선진국 도약의 계기로 활용했다. 독점과 규제 일변도 정책으로는 기회를 포착할 수 없다는 인식이 모여, 민간의 창의와 활력을 도입하기로 방향을 정하고 경쟁 도입, 개방, 자율화의 큰 원칙을 세웠다. 이후 규제 개혁과 민영화를 추진했다.

20세기가 끝날 무렵, 세계는 한국을 IT 선진국으로 치켜세웠다. 하지만 20년이 지나 4차 산업혁명이란 역사적 변곡점에서 한국은 길을 잃었다. 우리나라가 길을 헤매고 있는 사이, 중국은 막강한 자금력으로 해외시장에서 기업 사냥, 인재 사냥에 종횡무진으로 움직이고 있다. 한국은 중국 기업들에 인재도 빼앗기고, 그 인재와 함께 설계도까지 넘어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우물쭈물하다간 한국은 중국에서 기회도 잃고 무시당하는 국가로 전락할 우려가 높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손선우기자 sunwo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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