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균형은 경제도 살린다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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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24   |  발행일 2018-12-24 제31면   |  수정 2018-12-24
[월요칼럼] 균형은 경제도 살린다
박규완 논설위원

역시 아킬레스건은 경제였다. 한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잘한 분야를 물었더니 ‘한반도 평화’라고 답한 사람이 36.5%였고, ‘경제’를 꼽은 응답자는 2.7%에 불과했다. 대통령의 지지율을 끌어내린 동인(動因)이 경제였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경제와 민생은 정국의 방향타였다. 1992년 미국 대선에서 촌뜨기 빌 클린턴은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슬로건 하나로 판세를 뒤집었고,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탈출을 견인한 ‘아베노믹스’는 아베 총리의 장기집권을 추동했다. 맹자의 ‘무항산(無恒産) 무항심(無恒心)’ 또한 민생안정이 왕도정치의 초석임을 갈파한 경구(警句) 아니었던가. 브렉시트 초읽기에 들어간 영국이 혼돈에 빠진 것도 경제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성장률이 2%대로 떨어진 데다 취약계층의 일자리가 파괴되고 분배가 악화됐으니 낙제점을 받아도 문재인정부는 할 말이 없을 터다. 현재의 고용·경제위기는 비전문가들의 무능과 경도된 이념의 합작품이다. 응축해 표현하면 균형의 실패다. 소득주도성장·공정경제·혁신성장 3개 축의 ‘J노믹스’는 꽤 괜찮은 경제 패러다임이었지만 실행 성적표는 참담하고 민망하다.

최저임금 인상과 공정거래법·상법 개정으로 소득주도성장 및 공정경제엔 속도를 냈지만, 규제개혁·노동시장 유연화 등 혁신성장은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이익단체와 정부의 우유부단에 발목이 잡힌 까닭이다. 총수요를 견인할 소득주도성장과 공급부문의 효율성을 높일 혁신성장의 균형을 맞추지 못했으니 경제의 아귀가 맞을 리 없다.

‘친노동’과 ‘친기업’ 간의 기울기도 너무 컸다. 문 정부는 친노동을 표방했지만 기실은 친대기업노조, 친민노총이었다. 주 52시간을 확정했으면 탄력근로 확대는 당연한 데도 그마저 뭉개고 미적거렸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고용 보호 균형도 미흡했고, 정규직 전환의 공개 채용 원칙도 지켜지지 않았다. 서울교통공사의 고용세습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우선은 기업의 활력을 높이고 시장기능을 제고하는 게 시급하다. 사달이 나면 세금으로 메우려는 재정만능주의도 경계해야 한다. 최저임금 부작용이 심해지자 정부는 일자리 안정자금 등 천문학적 재정을 투입했지만 성과는 없고 시장 가격체계만 흔들었다. 그럴 바엔 차라리 시장 자율기능에 맡기고 가만히 있는 게 낫다. 어설픈 정책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위(無爲)보다 폐해가 훨씬 크다.

문재인 대통령은 세종과 정조의 리더십 용현(用賢·어질고 총명한 사람을 등용함)의 덕목을 새겨야 한다. 이념 편향 인물을 배제하고 오로지 능력과 전문성만 보라는 얘기다. 경제기조는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에 입각한 ‘친서민 중도실용 노선’을 지향하는 게 바람직하다. 소득주도성장이든 기업주도성장이든 그게 뭐 대수인가. 일자리를 늘리고 소득 양극화를 완화하면 그만 아닌가. 다만 재정을 갉아먹고 지속가능하지도 않은 정부주도성장은 금물이다.

송나라 왕안석이 설계한 개혁정책이자 부국강병책 ‘희녕변법’은 청묘법·시역법·균수법 등 농민과 중소상인을 지원하는 내용을 고루 담았다. 명실공히 친서민 정책이다. 하지만 희녕변법 시행 후 민생은 더 피폐해졌고 결국 실패로 끝났다. 시장의 자율기능과 경제현장의 복잡다단한 메커니즘을 도외시했기 때문이다. 소득주도성장이 꼭 그 짝이다. 현장의 섬세한 움직임을 간파할 수 있는 능력과 균형감각이 그래서 중요한 거다.

문 대통령은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정치인의 최고 덕목은 균형감각”이라고 했다. 한데 정작 본인의 통치철학이나 정부의 경제정책에선 ‘균형’이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지난 17일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선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과 같은 새로운 경제정책은 경제·사회적 수용성과 이해관계자의 입장을 조화롭게 고려해 국민의 공감 속에서 추진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균형을 잡아나가겠다는 함의가 내재된 듯한 발언이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데드크로스와 골든크로스의 경계를 넘나든다. 향후 균형추는 어느 쪽으로 기울어질까. 오롯이 경제와 민생에 달렸다.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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