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한국의 야당과 찰스 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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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22   |  발행일 2018-12-22 제23면   |  수정 2018-12-22
[토요단상] 한국의 야당과 찰스 폭스

최근 두 가지 뉴스를 접했다. 하나는 다섯 당의 원내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발표와 그에 따라 바른미래당 손학규,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열흘 만에 단식 농성을 중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적극 검토한다는 말이지 그 도입에 동의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다른 하나는 자유한국당이 김무성, 최경환, 홍문종, 김용태, 윤상현 의원 등 현역 의원 21명의 당협위원장 자격을 박탈하거나 향후 공모에서 배제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한국당이 지난 지방선거 이후 벼르고 벼르던 당 쇄신의 골자가 바로 그것이다.

한국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당론을 정하는 공식적인 토론이 없었다. 두 야당 대표가 단식을 하는 것을 보고도 강 너머 불구경을 하고 있었다. 군소 정당의 안에 동의해줬다가는 자칫 다음 총선에서 의석수가 대폭 줄어들 것이라는 계산을 했을 것이다. 최근 한국당 의원들은 누가 당협위원장 자격이 박탈될 것인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이제 113명의 의원을 거느린 거대 야당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내놓은 의견이 고작 도입을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당은 지금까지 문재인정권의 독주를 막겠다고 하면서 현 정권 정책을 견제할 그럴 듯한 대안을 내놓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지금 북미회담이 다소 교착상태에 빠져 있어도 그것에 대한 의견도, 방안도 내놓은 것이 없다. 지금 우리 경제가 어려워 청년실업이 모든 국민의 걱정거리가 되고 있어도 한국당에는 대책이 없다. 정부를 견제할 의욕도, 능력도 없어 보인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뒤 환골탈태하고 고강도 쇄신을 하겠다고 했지만 말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국의 야당 국회의원 중에 영국인뿐만 아니라 미국인까지도 존경하는 찰스 폭스(Charles James Fox)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도움을 입어 19세 나이로 국회에 입성했다. 그는 국회의원이면서 철학자인 에드먼드 버크라는 사람을 만나 많은 감화를 받아 그의 사상을 입법화하는 데 앞장을 섰다. 당시 영국은 독립하기 전의 미국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른바 미국 독립전쟁이었고, 미국 쪽 총사령관은 워싱턴 장군이었다. 그는 이 전쟁에 대해 미국 편을 들어, 미국의 자유와 평등을 위한 명분이 다 옳으니 영국은 전쟁을 그만두라고 했다. 영국이 미 대륙의 식민지를 다 포기하라는 뜻이었다. 영국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바쳐가며 싸우는데 그런 말을 하니, 영국 쪽에서 보면 군대의 사기를 완전히 빼놓는 이적행위에 다름 아니었다. 지금에 와서 보면 그의 의견은 수백 년 앞을 내다본 탁월한 것이었지만 당시로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또 가톨릭을 해방하고 노예무역을 금지시키는 의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보수 계열에서 볼 때 수백 년 내려오던 사회 기반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급진적인 개혁을 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서민과 약자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정치인이었기에 오늘날까지 존경을 받는다. 영국과 미국 곳곳에 그의 기념물이 세워지고 정치인의 사무실엔 그의 초상화나 석고상이 비치되어 있다.

그의 열렬한 후원자 중에 조지아나라는 공작부인이 있었다. 이 여성은 부유한 귀족 부인으로 당시 휘그당 인사들을 위한 사교장을 열어 많은 휘그당 정치인, 작가, 지식인들을 결집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이 사교장은 휘그당 정치인이 그들의 정견을 수렴하고, 토론하고, 정리하는 또 다른 의회가 되었다. 실제 의회에서는 그것을 형식에 맞춰 통과시키는 장소일 뿐이었다.

영국에 위대한 폭스 의원이 있었다면 한국 야당에는 친박·비박·진박 국회의원들이 있다. 그들의 정치적 정체성은 대통령과의 친소 관계로밖에 분류될 방법이 없다. 아무런 의정 활동이 보이지 않는 이들이지만, 지난 지방선거 때 자당의 후보자 공천에는 온갖 위세와 권위를 다 부린 인물이었다.

박재열 (시인·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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