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구 대명9동 브런치카페 스타일의 ‘키스호텔’ 정근연 공동대표(맨 왼쪽)와 프랑스 디저트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다해파티쉐’의 정다혜 대표(맨 오른쪽)가 함께 위클리포유 커버스토리에 어울리는 송년파티상을 연출한 뒤 활짝 웃으며 기념촬영을 했다. |
24년간 중구 삼덕동 언저리에서 송년문화의 변천상을 한눈에 꿰고 있는 김규일 사장. 그는 몰트위스크 전문 LP바인 ‘올맨’을 통해 빈티지오디오 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
정다혜 대표는 프랑스 디저트 전문가. 이미 서울에서 알아주는 레고를 모티브로 한 브릭마카롱 전문가로 소문이 나 있다. 11월로 접어들기 무섭게 개성파 파티족으로부터 러브콜을 많이 받는다. 남다른 감각 때문이다.
그녀도 달라진 송년파티문화를 실감한다.
“예전처럼 푸짐하게 먹는 게 목적이 아니죠. 핑거푸드 한두 점, 그리고 와인 한 잔 정도면 충분해요. 어쩜 얘기가 파티의 핵심이겠죠. 그래서 안주 같은 메뉴를 오밀조밀한 세트로 차려내는 ‘플래터 메뉴’가 홈파티에서 인기입니다. 편의점 등도 이런 수요를 반영하기 시작했고요.”
‘다해파티쉐’ 정다혜 대표
프랑스 디저트 남다른 감각으로 정평
창업·전문가반 10개반 디저트 강의
보석젤리‘코하쿠토’파티문화 선도
본메뉴보다 파티상 빛내는 디저트
LP바 ‘올맨’ 김규일 사장
24년간 삼덕동 송년모임 변천 체감
좋은 음악은 파티 완성하는 오브제
최고급 몰트위스키와 아날로그 뮤직
골목 한켠 빈티지 오디오 문화 전파
◆구두디자이너에서 파티셰로
그녀는 대구 출신으로 계명문화대 광고디자인학과 출신이다. 구두디자이너가 꿈이었다. 지금도 신발장에 40켤레 이상 다양한 신발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상경해 서울 잠실에 있는 한 구두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돈을 벌려 홈베이킹을 배웠다. 그런데 패션이 아니라 요리에 더 빠져든다. 그렇게 해서 2012년 수천만원 학비를 내고 숙명여대에서 설강한 프랑스 최고 요리학교인 르꼬르동블루에 들어간다.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해주기 때문에 파티메이커는 반드시 익혀야 하는 설탕공예까지 배웠다. 지금은 더욱 디테일한 분자요리 과정까지 이수하고 있다.
그녀에게 꿈의 직장이 일찍 주어졌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던 ‘플래이팅컴퍼니’다. 이 회사는 셰프가 새로운 파티문화를 연출하는 ‘셰프테이너 비즈니스’의 리더였다. 일종의 ‘셰프매니지먼트’를 앞세운 ‘푸드종합기획사’랄까. 거기에는 최현석·오세득 등 국내 최강 셰프 8명이 콜라보 멤버로 포진해 있었다. 그녀는 디저트 파트를 전담했다.
특히 벨기에 프리미엄 맥주인 스텔라 아루투아 측의 아시아 첫 프로모션 행사에서 실력을 발휘한다. 스텔라를 연상하듯 별 모양의 마카롱, 그리고 야광 판나코타, 흙을 연상시키는 초코크럼블 등을 선보였다. 천장에도 빵을 매달았다. 세계적 레고 제작사가 한국지사 ‘브릭라이브’를 론칭할 때도 그녀에게 디저트 파트를 맡겼다. 레고를 이용한 분홍색 초쿄무스케이크, 화이트 초콜릿을 토핑한 사람 모양의 레고케이크도 얹었다. 관계자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이후 ‘브릭마카롱’은 그녀만의 상징이었다. 작은 컵에 담긴 디저트의 일종인 컵디저트 ‘베린’도 그녀만의 기운이 느껴져 파티족한테서 러브콜이 많이 온다. 그녀가 차리면 일반 상도 금세 파티상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대구로 온다. 꿈의 작업공간을 찾아다녔다. 그래서 찜한 데가 바로 한 노모가 40년간 살고 있었던 양옥이었다. 구입해서 리모델링을 했다. 베이킹연구소 겸 디저트 강의실로 활용했다. 현재 창업반·전문가반 등 10개반을 핸들링하고 있다.
지난 7월20일부터 3개월간 대구MBC가 브릭라이브란 이색 전시행사를 했다. 참가 작가는 모두 15명. 그녀는 브릭마카롱 등을 선보였다. 특히 수성구에서 ‘리즈초콜릿’을 운영하는 지역의 유명 쇼콜라티에(초콜릿 전문가) 이나희와 손을 잡고 다양한 케이크의 세계를 보여줬다.
그녀가 자잘하고 앙증맞은 핑크빛 보석젤리로 불리는 ‘코하쿠토’를 내왔다. 우뭇가사리와 설탕을 이용한 건데 정말 달지 않아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저당도 원칙’을 고수하려고 한다. 다들 설탕에 너무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고구마쿠키와 코코넛초코쿠키도 여느 것보다 훨씬 당도가 낮다.
“코하쿠토는 정말 송년파티 메이커죠. 이것만 놓여도 분위기가 살아납니다.”
그녀의 디저트는 분명 대구의 파티문화를 선도한다. 이젠 본메뉴보다 디저트가 더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디저트가 부실하면 그 파티도 부실해진다.
‘Stressed(스트레스를 받다)’, 거꾸로 하면 ‘Desserts’. 우연의 일치치고는 꽤 묘하다. 디저트라는 단어는 프랑스어의 ‘Desservir’에서 유래한 것. ‘식사를 끝마치고 식탁 위를 치우다(desservir la table)’는 말이 디저트가 된 것이다. 연말 분위기를 분출하는 특제 주문 케이크는 5만원선. 일반 마케롱은 3천500원. 행사에 맞는 모양을 갖춘 스페셜 브릭마카롱은 1만원선. 010-6252-2024
◆ LP바 올맨의 12월
멀리 대구 중구 삼덕동 청아람아파트에도 하나둘 불이 켜진다. 어둠이 몰려들기 시작하는 삼덕초등학교 후문 근처에 있는 몰트위스키 전문 LP바 ‘올맨(Allman)’. 인근 방천시장 김광석길 파티족의 박수소리가 지척에서 들릴 것 같은 골목길. ‘좋은 음악도 파티를 완성시키는 오브제’라는 걸 아는 단골이 사랑하는 데가 올맨이다.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중학교 2학년 때 대구로 온 김규일 사장. 쉰을 눈앞에 둔 그가 다음날 오전 2시까지의 영업을 위해 오후 5시부터 혼자 오픈준비를 한다. 주인 겸 직원이다. 음악도 틀고 술도 차리고 안주도 마련해야 된다.
그가 더치스타일로 빼낸 게이샤 커피 한 잔을 내민다. 바의 내부는 좁다. 다크그린톤의 실내는 25.4m(7평) 남짓. 바텐용 의자는 고작 5개. 그리고 4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 2개가 홀을 점령해버렸다. 13명이 들어오면 꽉 찬다. 그런데 사장의 감각적 선곡안 때문인지 결코 좁지 않다. 음악이 ‘지금’이란 부담 같은 걸 지워주기 때문이다. 치직거리는 LP음반을 업은 1950년대 영국제 턴테이블 ‘가라드’. 거기서 풀리는 재즈트럼페터의 연주는 탄노이 스피커와 자작 진공관앰프의 도움을 받아 깊숙한 윤기를 띄운다. 빈티지 음향시스템은 1억원급. 여기 음악은 그래서 ‘진검양주’로 불리는 몰트위스키처럼 깊고 깔끔하다.
그가 저녁 어스름에 어울릴 것 같은 곡을 지그시 건넨다. 그리스의 여자포크싱어 알레타가 부르는 ‘파토마(Patoma·빗속에서)’, 포르투갈 파두의 슬픔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그리스 출신 소프라노 아그네스 발차의 음성처럼 지중해의 우수를 잔뜩 머금고 있다. 이런 음악 깔고 술을 홀짝이는 이들에겐 푸짐한 안주가 필요할 것 같지가 않다. 김 사장도 무거운 안주를 권하지 않는다. 어차피 이 직업이 돈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냥 과자, 육포, 그리고 생수면 족하다. 여기 단골들은 원주의 단순한 독기를 원한다.
이곳의 송년파티는 깔끔하다. 혼자 오는 단골이 손님의 30%. 부부끼리 와서 송년을 자축하기도 한다. 얼마 전 단체로 이 바를 접수한 의사팀은 100만원대의 매상을 거뜬히 올려주고 갔다.
◆하루키의 눈빛 같은 올맨
온기 머금은 냉정함 같은 기운이 바를 감싸고 있다. 일본 소설가 하루키 같은 사색파에겐 안성맞춤일 것 같다. 바텐에 앉아 정면을 응시했다. 고가의 귀한 몰트위스키가 즐비하다. 여느 바에선 보기 힘든 고급 양주들이다. 한 병에 350만원짜리 발베니(Balvenie) 한 잔 가격은 10만원. 250만원짜리 라프로익(Laphroaig), 200만원짜리 탈리스커(Talisker)도 모두 30년산이다. 이 집에 와야 먹을 수 있다.
몰트위스키는 위스키의 원전. 100% 보리만으로 조주한 건데 향을 첨가하거나 알코올을 보강하지 않는 게 특징이다. 일본 최고급 사케 ‘준마이 다이킨죠’ 같은 퀄리티다. 영국 스코틀랜드의 명물이다. 발렌타인·조니워커 등도 몰트위스키를 베이스로 한 혼합주다. 그는 방송에선 좀처럼 듣기 힘든 아날로그 뮤직 정보를 많이 꿰고 있는 지역 LP바의 선두주자 중 한 명. 수성못 근처에 있는 ‘스쿨’과 ‘리플레이’, TBC대구방송 옆 ‘헤븐’, 그리고 방천시장 내 ‘쿠사18’등과 함께 뮤직카페의 기운을 공유한다.
24년간 다른 길을 가지 않고 오직 해묵은 음반 그리고 그 음악의 저력을 기반으로 올맨을 붙들고 외길을 걸었다.
누구보다 지역 송년파티문화가 어떻게 변천해 왔는가를 잘 안다. 1990년대 초 ‘문화대통령’으로 불렸던 서태지와 아이들이 ‘난 알아요’로 새로운 신세대문화를 터트릴 때 삼덕소방서 뒤편에서 음반가게 올맨을 차렸다. 1971년 오토바이 사고로 24세로 생을 마감한 미국 올맨 브라더스 밴드의 공동 창업자인 기타리스트 듀안 올맨을 무척 좋아한 나머지 상호까지 올맨으로 정해버린다.
“제가 음반가게를 냈을 때만 해도 고주망태가 된 취객이 삼덕동 골목에 큰대자로 눕는 광경이 비일비재했습니다. 끝장 보자는 술문화가 모임을 주도했어요. 이젠 아닙니다. 춤과 술보다 얘기가 더 우선인 것 같아요. 차분하게 자기가 즐길 수 있는 정도의 술만 마시는 클러버들이 삼덕동 파티형 송년문화를 이끄는 것 같습니다.”
초창기만 해도 아날로그문화가 디지털문화를 압도하고 있었다. 가게에는 LP음반, CD, 레이저디스크, 심지어 카세트테이프까지 공존했다. 1990년대 중후반 ‘집시락’을 필두로 버블·몽키·프로그 등이 밴드를 앞세운 나이트클럽문화를 밀어낸다. 비로소 레스토랑보다 클럽(카페·바·펍 등)이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그 클럽에 포장마차 버전이 합쳐진 게 소주방이다. 거기에 ‘KI KI’ 같은 칵테일바도 매칭된다. 2000년으로 넘어오면서 원어민들이 삼덕동 근처로 밀려들기 시작한다. 병맥주를 손에 쥐고 마시면서 가볍게 몸을 흔들며 주말의 밤을 즐긴다. 춤이 고픈 친구들은 EDM을 앞세운 클럽 ‘파샤’로 몰려갔다. 현재 로데오 댄스클럽 골목에선 AU와 디 헬(D-hell) 등이 가장 핫하다.
파티족 클러버의 12월. 비록 몸은 취해도 맘은 늘 깨어 있다. 그래서 젠틀하다. 골목에서 피자 한 조각으로 대충 요기를 한다. 이들 클럽은 다음날 오전 4~6시 문을 닫는다.
비틀거리지 않고 꼿꼿한 송년파티가 진을 친 삼덕동 골목 한편. 거기서 ‘청년백수의 취직’을 기원해본다. 010-4642-7931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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