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신도시 블랙홀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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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20   |  발행일 2018-12-20 제31면   |  수정 2018-12-20
[영남타워] 신도시 블랙홀

부루마블은 연두색 판 위에 놓인 전 세계 24개 도시 위에 집을 짓고 건물을 세우는 게임이다. 주사위를 던질 때마다 재산이 늘어나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게임을 하다 보면 푸른 구슬 속 낯선 도시가 실제로 내 것이라도 된 듯 가까워진다. 싼 값으로 여러 개의 나라를 가질까, 통행료를 많이 받을 수 있는 비싼 도시를 살까 고민하다 보면 내가 가진 돈은 늘 부족했고 벌어들이는 월급은 너무 작았다. 작은손으로 주사위를 던지던 그 때, 나는 깨달았어야 했다. 현실의 부루마블은 그것보다 훨씬 더 힘들고 냉정한 게임판이라는 것을.

2018년 대한민국에 ‘현실판 부루마블’이 등장했다. 게임 판에 있는 도시는 총 20개,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다. 도시는 올 8월 기준으로 아파트 평당(3.3㎡) 거래가 순서대로 배치됐다. 대구는 다섯째 도시로 942만원, 서울의 절반도 안된다. 전국 최저인 울진과 서울 강남을 비교하면 집값은 20배 가까운 차이가 난다. 부루마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황금열쇠에는 병원진료, 취업면접, 문화생활에서의 기회의 차이 등이 미션으로 담겨있다.

이 현실판 부루마블 게임을 4명의 게이머가 실제로 한 결과가 ‘서울러 vs 지방러, 현실판 부루마블’이라는 제목으로 인터넷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에 공개돼 화제를 모았다. 예상은 틀리지 않았고, 결과는 허탈했다. 영상에 달린 댓글엔 ‘이젠 서울 사는 게 스펙이 돼버렸다’ ‘출신지가 계급이 된 사회’라는 자조 섞인 푸념이 넘쳐난다.

이 같은 일자리·교육·의료 서비스 차이에 따른 서울 수도권과 지방 간 양극화의 원인은 서울 초집중화에 따른 불균형에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경기도 남양주와 하남, 인천 계양에 신도시 건설을 확정했다. 공공택지 조성을 두고 논란이 일었던 과천에도 중규모의 택지를 조성키로 했다.

한술 더 떠서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까지 건설된다. 수도권 남북·동서를 잇는 중심축인 GTX가 완공되면 서울 도심까지 30분대 주파가 가능해진다. 수도권 외형의 급팽창과 수도권 쏠림 현상을 가속화하는 또 하나의 블랙홀이 될 것이 자명하다.

경제성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GTX B 노선에 대해서는 아예 예타 면제까지 검토하고 나섰다. 수도권 12개 기초단체가 100만명 서명 운동에 들어갔는가 하면,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 하루 만에 1만명 넘는 동의도 얻었다. 여야 정치권과 지역 주민이 합세한 부당한 예타 면제 요구에 이 정부는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답해야 한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논의되어야 할 예타 면제가 수도권을 대상으로 검토되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맞지 않다. 수도권 지역의 외형을 팽창시켜 단번에 메가 수도권으로 만들 수 있는 불씨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다. 수도권에 사람이 몰리면 주택과 교통문제가 발생해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형 투자가 집중되고 지방의 좌절감이 커지면 다시 수도권으로 사람이 몰린다. 수도권의 인구는 지방의 유출인구로 채워지고 지방은 텅 비어간다. 그 결과는 지방만의 비극이 아니다.

그런데도 어째서 지방은 이리도 조용할까. 정작 목소리를 내야 할 지방 토호들은 웬만하면 서울에 집 한 채쯤 가지고 있고 자식은 모두 서울로 대학을 보내 잘 살고 있어서 아쉬울 게 없기 때문일까. 어디에 사느냐는 것이 스펙을 넘어 계급이 되고, 이 계급이 공고화되어 세습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현대판 신분사회, 계급사회에 다름없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롭다”라는 이 멋진 슬로건이 서울과 지방의 관계에서만 지켜져도 한국사회는 진보의 수준을 넘어 차원 이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은경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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