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빵과 대구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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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14   |  발행일 2018-12-14 제41면   |  수정 2018-12-14
대구빵, 커피 이전 빵빵한 존재감…마약빵·단팥빵·크로켓으로 재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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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회째를 맞는 영남일보 주최 커피 앤 베이커리 축제는 1970~80년대 전국구 빵도시였던 대구 베이커리문화의 신지평을 여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대구의 커피와 빵이 점점 더 윈윈전략을 구축하고 있다. 그 흐름의 일단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건 지난 11월30일~ 12월2일 수성못 상화동산에서 열린 영남일보 주최 ‘커피 & 베이커리축제’. 올해 2회를 맞은 이 행사는 같은 기간 대구 EXCO에서 열린 제8회 대구 커피&카페 박람회와 함께 ‘대구 커피위크’를 뜨겁게 달궜다. EXCO 행사는 지역 커피산업 인프라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다. 향후 대구의 커피산업이 전국구로 발전하기 위해선 관련 콘텐츠를 하나로 합쳐야 될 것 같다. 다시 말해 바리스타, 로스터, 파티셰, 커피용품 개발자, 신개념 커피와 차, 이것과 어울리는 별별 빵, 스토리를 가진 후미진 골목의 베이커리카페, 추억의 군것질거리, 신개념 간식, 심지어 파급력이 상당한 호떡과 찐빵·호두과자·찰보리빵·선물용 간식빵 등이 커피를 중심해 종횡으로 네트워킹해야 될 것이다.

◆행사장의 별난 베이커리

가장 인상적인 브랜드는 신종숙 사장이 끌어가고 있는 ‘종숙씨의 바른곳간’이었다. 그녀는 오트밀, 보리, 현미 등 곡물 가공품과 코코넛 및 견과류 등을 꿀·기름에 섞어 오븐에 구운 ‘그레놀라’를 갖고 착한 수제간식을 만들었다. 그레놀라는 귀리를 압축한 유기농 오트밀의 한 종류다. 그녀는 호두, 피칸, 마카다미아, 캐슈넛, 해바라기씨앗 등 12가지 종류의 견과류를 메이플·아가베시럽에 버무려 간식으로 갈무리를 했다. 기본 견과류를 중심으로 레몬, 오렌지젤리, 파스타치오 등 여러 버전의 그레놀라를 이번에 선보였다. 신 사장은 유기농 운동가 겸 수제식품 연구가다. 시중의 그레놀라에는 밀가루, 옥수수분말 등이 첨가되지만 그녀는 100% 오트밀만 사용한다. 이밖에 찹쌀베이커리, 힐링 샌드위치, 수제과일식초, 과일청, 월병, 약과 등도 만들고 있다. 특히 저급한 간식에 노출된 어린이집 간식거리 개발에도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다. 본점은 경산시 옥곡동에 있다.

‘강정보찐빵’을 선보인 윤환섭 사장. 그는 발효과학을 통해 기존 찐빵의 퀄리티를 한 단계 상승시켜 눈길을 끌었다. 그는 오래 제빵인으로 살아 왔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달성군 가창면사무소 앞 거리에 형성된 찐빵거리의 인기를 보고 천연발효종 기법을 사용해 몸에 좋은 찐빵을 개발했다. 홍국쌀찐빵은 붉은색 때문에 관심을 많이 받았다. 그는 손님들의 이해를 구하기 위해 제조법을 직접 공개했다. 홍국쌀은 일반쌀에 모나스쿠스로 불리는 곰팡이균을 입혀 15~30일 발효시킨 분홍색쌀이다.

연근을 이용해 호두 찰보리빵, 과자, 파이, 팬케이크 등을 만든 김춘련 사장. 한때 대형마트 유통전문가로 활동한 그는 독립해 전국 최고 생산량을 자랑하는 동구 반야월 연근을 이용한 과자 전문점을 열고 대구를 찾는 관광객에게 딱 맞는 선물용 과자 보급에 올인하고 있다.

이참에 지역 베이커리 관계자들도 대구빵의 저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알고 있어야 될 것 같다. 그래서 지난 세월의 대구빵의 흐름을 정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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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발효종을 이용한 착한 찐빵시대를 연 윤환섭 사장의 ‘강정보찐빵’. 유기농 오트밀인 그레놀라를 이용해 착한 간식을 만든 신종숙 사장의 ‘종숙씨의 바른곳간’의 간식거리. 수형당의 기술을 토대로 지역 첫 케이크 전문점 시대를 연 최무갑의 케이크 전문점 ‘최가네’ . (위에서 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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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팥빵 하나로 한국 제빵계를 석권하기도 했던 대구발 대표 빵 브랜드였다가 1980년대초 침몰한 ‘수형당’의 추억의 상표.


커피&베이커리 축제 별별 빵
착한 수제간식 ‘종숙씨의 바른곳간’
천연발효종 기법 개발 ‘강정보찐빵’
반야월 연근으로 만든 찰보리빵·과자

시대 거쳐온 대표 빵집
제빵업계 기틀 잡아준 브랜드 ‘수형당’
즉석 도너츠와 크로켓 첫선 ‘맘모스’
대구 첫 모닝식빵 개발 ‘풍차베이커리’
사라다빵‘뉴욕제과’…낱개포장 도입
롤케이크류 등 선물용 불티 ‘뉴델제과’

파리바게뜨·솜사탕 같은 생크림 시대
케이크 전문점 ‘최가네’ 젊은층에 어필


◆대구빵 약사

대구의 커피 이전에 대구의 빵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 막강한 전통이 광복 이후부터 1990년대까지 이어졌다. 2000년대 대구의 빵시장은 새로운 조정기였다. 대다수 공룡급 빵집은 사라졌다. 하지만 1957년 대신동에서 출발해 중앙로변으로 진출한 삼송베이커리는 고사직전에 일명 ‘마약빵’으로 불리는 옥수수 크로켓으로 초대박을 치면서 대구빵의 자존심을 지켜주었다. 이밖에 약전골목의 각종 단팥빵, 반월당 고로케 등도 가세하면서 대구는 빵지순례의 고장으로 우뚝 선다.

대구의 첫 공장빵 브랜드는 영천 출신 진병수가 오픈한 ‘수형당(秀亨堂)’. 1946년쯤 등장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한때 대구 최고의 빵 브랜드였다. 6·25 직후 대구로 피란 온 육본과 2군사령부 등 각급 군부대가 포진해 있어 식빵과 단팥빵, 건빵 등을 독점적으로 공급하기 쉬웠다. 1950~60년대만 해도 해태·삼립과 어깨를 겨뤘고 점차 사업 다각화를 시도하면서 ‘수형 그룹’으로 웅비할 야심찬 프로젝트를 짰다. 육군본부가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갈 때 육본을 따라서 상경, 서울 삼각지로터리에 서울공장을 짓는다. 1968년 9월엔 국내 최고급 식빵 공급 업체로 발돋움한다. 1970년대 초엔 동아백화점 식품코너에도 진출한다.

수형당은 대구 제빵산업의 기틀을 잡아준 기업이다. 훗날 뉴델제과 최종수 사장, 런던제과 조원길 사장, 지역의 첫 케이크 전문점 최가네의 최무갑 사장 등 대구의 메이저급 제과점 관계자들 상당수는 수형당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결국 방만한 경영으로 인해 1982년쯤 소리소문도 없이 침몰하고 만다.

◆1950~60년대 대구의 유명 빵집

‘삼미(三美)제과사’ ‘삼송(三松)빵집’ ‘송영사’. 광복 직후 대구의 3인방 빵집으로 불렸다. 이들 3인방의 뒤를 이어 ‘고려당’, 중부경찰서 바로 북측에 ‘일성당’, 바로 옆에 ‘동양당’, 종로초등 정문 맞은편에 ‘덕인당’, 대구역 앞 대우센터 뒤편에 ‘구일제과점’, 동성로에 ‘풍년당’, 종로초등 근처에 ‘풍곡당’, 약전골목 동문 근처엔 ‘백일당’, 학원서림 부근에는 ‘맘모스’ 등이 나타난다. 특히 구일제과는 건과자 전문점으로 유명했다.

1960년대를 화려하게 물들인 맘모스의 기술은 뉴욕을 거쳐 뉴델로 이어져 1970~80년대 대구를 빵의 도시로 만드는 데 일조한다. 그만큼 기술이 출중했다. 맘모스는 대구에선 처음으로 즉석 도너츠와 크로켓을 개발했다. 이 무렵 잘 나가는 7개 제과점 주인들이 모여 ‘7인회’를 결성한다. 이들은 일본 연수까지 다녀오면서 일본의 선진 제빵 기술을 가져왔다. 이 모임은 1990년대 뉴델제과 사장 최종수씨가 주축이 된 ‘과우회(菓友會)’로 발전한다.

이밖에 대신동의 강자는 동산약국 옆에 있었던 ‘삼송빵집’이었다. 삼송은 탈대신동을 결심하고 1987년 2월 제일극장 맞은편으로 이전한다. 하지만 영업은 극히 저조했고 문을 닫을까 고민하던 중 ‘마약빵’이 대박나면서 제2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70년대 강자…뉴욕·뉴델·런던제과

일성당, 덕인당, 동양당, 구일제과 등 인기있던 빵집들이 맘모스에 무릎을 꿇고 만다. 맘모스의 신기술을 눈여겨본 사람이 있었다. 바로 뉴욕의 강신영 사장, 뉴델의 최종수 사장, 런던의 조원길 사장이다. 이들로 인해 대구가 비로소 제빵도시로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그땐 여건이 좋았다. 섬유경기가 호황이었고, 패스트푸드가 대구에 본격 상륙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과점은 호황을 누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1980년대 중반 군부정권에 밉보이고 새롭게 등장한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에 잘 대처하지 못해 거의 동시에 폐업 하게 된다.

교동시장 초입 오른쪽 모퉁이 보래옥을 인수한 강신영 사장은 뉴욕제과로 상호를 바꾼다. 이어 훗날 옛 한일극장 근처로 이전해 대구 최고의 제과점으로 성공시킨다. 대구에선 처음으로 모닝식빵을 개발한 중구 포정동 풍차베이커리 사장 권영오씨, 고려당 베이커리 사장 강대건씨 등이 그곳을 거쳤다. 특히 뉴욕제과의 ‘사라다빵’은 불티나게 팔린다. 뉴욕제과는 낱개 포장 시스템을 도입한다.

뉴욕제과의 아성에 도전한 게 바로 옛 송죽극장 동편에 있었던 ‘뉴델제과’다. 교동시장 입구 맞은편 동성로변에 자리 잡고 있어 초창기 뉴욕제과처럼 장사가 잘 됐다. 뉴델제과의 최 사장은 처음엔 과자 도매점도 하면서 기반을 다진다. 하지만 뉴델제과는 예상도 하지 못한 악재를 만나 치명상을 입게 된다. 바로 1973년 대형 화재를 만난 것이다. 이땐 백화점에선 빵을 팔지 않았다. 가장 인기 있는 건 버터로 만든 케이크와 롤케이크류. 뉴델제과는 선물용을 불티나게 팔았다. 크리스마스 시즌과 맞물리면 무려 1만여 개를 철야작업을 통해 만들기도 했다. 최 사장은 고사 직전이던 킹뉴델을 ‘황제당’으로 상호를 바꾸고 지역 첫‘즉석 제빵 시스템’을 도입한다. 지역 제빵사들은 너도 나도 그 모델을 도입하게 된다.

◆대구빵의 추락과 재도약

1980년대 후반 들어 대한민국 제과업계의 지형도는 이전과 판이하게 돌아갔다. 다국적 패스트푸드 브랜드의 습격이 시작된다. 빵 말고도 다양한 간식거리가 쏟아져 나왔다. 온갖 스타일의 다방과 레스토랑으로 인해 다과점 구실을 한 지역 제과점의 매력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그래도 대다수 제과점은 ‘설마 제과점이 어떻게 될까’라며 안이하게 대처했다. 1980년대 초 밀탑제과, 89년 파리바게뜨의 새로운 버전의 공세를 그들은 제대로 받아내지 못했다.

솜사탕 같은 생크림 세상이 왔다. 버터케이크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 다들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1990년대 말 1천여 개에 육박하던 1급 빵집은 삼송, 풍차베이커리 등 몇 개만 제외하고 붕괴해버렸다. 의성군 비안면 출신인 권영오 사장은 옛 런던제과 근처에서 풍차베이커리를 통해 모닝빵 시대를 열었고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수형당의 기운을 이어받은 최무갑 사장은 2001년 새로운 제빵시대를 열기 위해 동성로 2가 옛 아카데미극장 옆 골목 안 대구 젊은이에게 가장 어필하는 케이크 전문점 ‘최가네’를 론칭해 성공했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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