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우의 영화, 음식을 캐스팅하다] ‘광해, 왕이 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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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14   |  발행일 2018-12-14 제40면   |  수정 2018-12-14
王이 내린 ‘팥죽 한 그릇’ 목숨과 바꾼 충절
[백정우의 영화, 음식을 캐스팅하다] ‘광해, 왕이 된 남자’
[백정우의 영화, 음식을 캐스팅하다] ‘광해, 왕이 된 남자’
[백정우의 영화, 음식을 캐스팅하다] ‘광해, 왕이 된 남자’
[백정우의 영화, 음식을 캐스팅하다] ‘광해, 왕이 된 남자’
[백정우의 영화, 음식을 캐스팅하다] ‘광해, 왕이 된 남자’



광해 대신 왕이 된 광대의 15일간 행적
의심과 경계를 내려 놓고 대접한 팥죽
기미나인, 중전, 도부장 ‘충성의 맹약’
천한 광대에서 군주로 바꿔 놓는 매개
정성·진심 담긴 음식, 사람·나라 구해


곧 동지다. 팥죽을 싫어했기 때문에 동지는 내게 특별한 날이 아니었다. 세월 좋게 팥을 불리고 갈아 죽 쒀먹을 여유가 없는 시절에 자식이 팥을 싫어하니(어머니는 내심 내게 고마워했을 게 분명하다) 동짓날에도 팥죽을 먹은 기억은 없다.

1624년, 인조는 이괄의 난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간다. 지금의 양재역에 이르러 배고픔과 갈증이 극에 달했다. 마침 이곳에 있던 유생 김씨 등 6~7인이 황급히 팥죽을 쑤어 바치자 인조는 말 위에서 그 죽을 마시고 급히 과천을 거쳐 공주로 향한다. 이때부터 ‘임금이 말 위에서 죽을 마셨다’는 뜻으로 말죽거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또 역마에 말죽을 먹이던 곳이었으므로 말죽거리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팥죽을 왕의 음식이라 할 순 없어도 궁궐과 밀접한 음식이라는 건 분명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임금께 다른 것 제쳐두고 팥죽을 쑤어 바쳤을라고.

추창민 감독의 ‘광해, 왕이 된 남자’(이하 ‘광해’)에서 결정적 순간을 장식하는 건 ‘팥죽’이다.

영화는 광해를 대신해 왕이 된 광대 하선이 백성을 헤아리는 15일간의 행적을 그리는 동안, 의심과 경계를 내려놓고 대접한 팥죽 한 그릇이 어떻게 천한 광대를 군주로 바꿔놓는지를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기미나인 사월이의 사정을 헤아리고, 중전을 위로하고 우직한 도부장의 의심을 충성의 맹약으로 치환시키는 매개도 모두 팥죽이었다. 팥죽 한 그릇에서 시작된 하선의 보살핌은 어떤 이에겐 맛난 한 끼가 되고 누구에겐 지아비의 온정이 되며 또 누구에겐 목숨으로 갚아야 할 망극한 성은이 된다.

‘영조실록’엔 “왕의 식사는 하루 다섯 번이다”라고 적혀 있다. 문헌에 따르면 수라상은 두 번이고 나머지는 간식이다. 영화에서 팥죽 먹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왕이 항상 진수성찬을 먹지는 않았다. 백성의 아픔을 감안해 반찬 가짓수를 줄이거나(감선), 고기반찬을 치우기도(철선) 했다. 첫 번째 수라가 들어왔을 때 하선은 게걸스레 음식을 비운다. 그도 그럴 것이 기방에서 만담과 음담패설로 눙치며 살던 광대가 하루아침에 임금이 되어 산해진미 수라를 받으니 그 다음은 불을 보듯 빤한 일. 임금의 식사가 예사 음식이던가.

배불리 먹어 수라상을 말끔히 비웠으나 왕이 남긴 음식이 수라간 나인의 식사임을 알게 된 이후로 하선은 팥죽만 먹고는 상을 물린다. 아랫사람 사정을 헤아리고 살피는 덕행은 당연한 일일진대, 아랫사람의 마음을 얻을수록 하선 스스로 임금인 양 착각에 빠지고 그를 향한 의심의 눈초리 또한 깊어간다. 권력에 기초한 모든 행위는 양날의 검임을 영화가 드러내는 것. 진짜는 독살과 역모의 위협 속에 색을 탐하다 중독되어 은신 중인 데 반해 가짜가 임금이 펼쳐야 할 덕치로 백성을 보살핀다는 캐릭터의 대조가 빚는 아이러니, ‘광해’를 끌고 가는 진짜 힘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만나는 광해의 진면목, ‘미완으로 사라진 성군의 영혼’이 그것이다.

동지는 해의 길이가 가장 짧은 날이다. 동지를 기점으로 해가 길어진다는 뜻이다. 양기(陽氣)가 시작되는 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즉 동지는 음기로부터 양기가 재생하는 부활의 의미도 지닌다.

그런 점에서 ‘광해’에서 등장한 팥죽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고려 말의 대학자 이색은 “나라 풍속 동지에 팥죽을 짙게 쑤어 먹으니 삿된 기운을 씻어내 뱃속이 든든하다”고 노래했다. 하선의 팥죽이 남긴 효과가 꼭 그랬다. 차림새가 단출하여 운반과 이동이 수월하고 임금이 신하에게 내리기에 과함이 없으면서 알차기로 팥죽만한 음식은 없을 터. 수라간 나인을 위해 음식을 남기면서 하선은 비로소 광해를 대신할 자격을 얻는다. 수라간에 웃음꽃이 피고 돌 같은 상선 얼굴에 화색이 도는 것은 인지상정인즉, 독을 머금은 사월이가 목숨을 내놓은 것도, 절체절명의 순간 자객으로부터 하선을 구한 도부장의 충절도 팥죽에서 시작되었다. 죽음과 삶이 바뀌는 장면이다. 정성과 진심이 담긴 음식은 사람을 구하고 마침내 나를 구한다.

높고 화려한 자리에서 받는 낮고 평범한 음식에 담긴 뜻을 하선은 꿰고 있었던 걸까.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시퀀스(오직 이 한 장면을 위해 김인권을 캐스팅했는지도 모른다). 하선은 자신에게 칼을 겨눈 도부장에게 팥죽 한 그릇을 보내곤 이내 묻는다.

“팥죽 맛이 어떻더냐.”

“달고 맛났사옵니다.”

“그래, 살아있어야 팥죽도 맛난 거다. 이 칼은 날 위해서만 뽑는 것이다. 꼭 기억해두거라.”

어릴 적 먹었던 마지막 팥죽은 무지막지하게 단팥죽이었다. 내 기억 속에 팥죽과 단팥죽이 동의어로 놓인 건 이때부터다. 대구에 내려와 팥죽을 제대로 만드는 식당을 만나면서 팥죽과 단팥죽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곳의 팥죽은 달지 않았다. 고소하면서 짙은 팥 향기에 흠뻑 취해 팥죽 한 그릇을 단숨에 비웠다. 팥죽과의 오랜 악연을 끊자 이전까지 거들떠도 보지 않던 음식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게 팥죽은 음식에서 생겨난 편견의 상징이었다. 그날 나는 팥죽 그릇의 바닥이 보이도록 싹싹 긁어먹었다. 음식은 먹고 사라져도 행복한 마음은 계속 남는 법. ‘광해’의 사월이와 도부장이 그랬듯이 나도 그랬다.

영화평론가·한국능률협회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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