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인사불신이 커지는 이유

  • 손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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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13 08:00  |  수정 2018-12-13 08:01  |  발행일 2018-12-13 제30면
20181213
손선우기자<경제부>

한국경제연구원이 매년 조사하는 ‘대학생 취업인식’ 조사를 보면 공기업과 공공기관은 취업 선호도에서 늘 상위권에 오른다. 일반 공무원보다 보수는 많고 일은 적다는 인식 때문이다. 청년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한다는 공기업과 공공기관은 대구에도 10곳이 넘는다. 이곳들은 청년 고용이 악화된 대구에서 ‘꿈의 직장’으로 통한다. 월평균 급여가 284만원으로 전국 평균보다 68만원이나 적은데 비해 월평균 노동시간(173시간)은 전국 평균에 견줘 5시간이나 더 긴 지역의 현실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공기업이나 공공기관 취업을 원하는 건 청년들만은 아니다. 퇴직하고 갈 곳이 없는 대구시 고위 공무원이나 선거에서 낙마한 정치인 가운데 일부는 공기업 사장과 공공기관 대표로 재취업하기를 원한다. 다만 속내는 청년의 갈망과는 사뭇 다르다. 고연봉과 지자체장에 버금가는 처우, 대외적 활동은 퇴직 이후 자리를 보전하거나 다음 선거를 준비하며 전열을 가다듬기에 제격이다. 이들의 선택을 뭐라고 할 수는 없다.

문제는 이런 선택이 지역 사회의 불신을 키운다는 점이다. 지방선거가 끝난 올해, 대구시 간부 공무원이 차지해오던 시 산하 공공기관 대표에 전 시의원들이 차례로 선임됐다. 해당 분야에 전문성도 없고,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전직 지방의원들이 대표 자리에 앉았다는 이유로 곳곳에서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거세게 일던 논란은 선임 절차가 마무리된 이후론 부서지는 파도처럼 사라진다. 심지어 선임된 당사자는 그간의 논란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고 낡아도 너무 낡은 대본을 읊어댄다. “그동안 쌓은 오랜 경륜과 연륜을 기반으로~” “지역을 위해 한 번 더 봉사할 수 있는 기회로 알고~” “조직 기강을 바로잡고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들의 변(辯)을 곧이곧대로 믿는 대구시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저 당장의 구설수를 모면하기 위한, 진심도 아닌, 교묘하게 그 답의 궤에서 회피하기 위한 언사라는 걸 우리는 잘 안다.

올해 마지막 남은 대구시 산하 공공기관장 자리는 지역 ICT의 육성을 맡은 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장이다. 공모 시작부터 공정성 논란이 일면서 온갖 추측이 난무한다. 지자체장 선거캠프 참모진이 원장에 선임될 거란 전망도 있고, 퇴직 고위 공무원의 영향력이 남아 있어 그의 측근이 최종 후보가 될 것이라는 미확인 주장도 나온다. 올해의 다른 선례들과 비공개로 진행되는 원장추천위원회로 미뤄보면 이런 추측에 더욱 힘이 실린다. 불식을 종식시키기 위해선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인사의 공정성을 확보하지 않는 한 정피아·관피아 논란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공기업 사장과 공공기관장의 선임에 내장된 불신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에게 무엇을 가르칠까. 이 시대의 절망과 좌절이 교직되거나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는데 혼란이 올까 두렵다. 인사의 기준과 선정 과정을 투명하게 벼려, 청년의 눈에 비친 지역의 모습이 막장 소재와 설정으로 꾸며낸 영화의 한 장면으로 전락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손선우기자<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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