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선수끼리 게임룰 바꾸나

  • 권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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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11   |  발행일 2018-12-11 제30면   |  수정 2018-12-11
[취재수첩] 선수끼리 게임룰 바꾸나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와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등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에 들어간 지 10일로 닷새가 지났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을 차단하고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목표를 관철하려는 모습을 보면 무조건 응원을 보내고 싶지만, 지나칠 수 없는 맹점이 있어 안타깝다.

현재 비례대표 국회의원 47석에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실시되지만, 지역구 253석에선 ‘단순 다수선거제’가 적용되고 있다. 군소 야 3당이 문제의식을 갖는 것은 지역구 쪽이다. 유효득표율이 30%대에 머물러도 가장 많이 득표만 하면 당선되는 구조다. 당연히 사표(死票)가 많이 생긴다. 사표방지 심리 때문에 군소정당 후보를 지지할 표도 거대정당 후보에게 갈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현행 제도는 거대정당 중심의 양당제를 유지하는 데 적합하다고 평가되고 있다.

야 3당도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사표를 줄여 국민 표심을 최대한 의석수에 반영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선거제도는 ‘게임의 룰’이다. 지금 야 3당의 요구는 ‘약한 선수’가 ‘강한 선수’에게 게임의 룰을 바꿔달라고 압박하는 것과 다름없다. 야 3당은 ‘국민’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실상은 본인들 이해를 바탕에 깔고 있다. 선거가 동네 조기축구회 친선게임이라면 본인들끼리 룰을 어떻게 바꾸더라도 외부인이 관여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대의민주주의에서 선거는 국민이 위임한 정치권력을 국민 대표를 자처하는 정당과 후보들이 어떤 방식으로 나눠가질 것이냐를 결정하는 무대다. 그 룰을 국민을 제쳐두고 “선수들끼리 바꾸자”고 억지부리는 것은 어불성설에 가깝다. 지난 선거에서 양당을 지지했던 국민이 엄연히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 헌법에는 대통령 임기를 현행 ‘5년 단임’에서 중임제 등으로 바꿀 경우 ‘그 헌법개정 당시 대통령에는 효력이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야 3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한국정치 발전을 위해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는 입장이라면, 전원이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해 이해당사자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통령제의 모델인 미국은 건국 이래 지금까지 ‘단순 다수선거제’를 유지하고 있다. ‘승자독식’이 적잖은 결함이 있더라도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측면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과연 한 선거구에 걸려 있는 정치권력을 2위와 3위, 그 이하 후보들과 어떻게 나눠가질 수 있겠는가의 문제와 직결된다. 2위 후보를 지지한 사표를 구제하겠다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더라도 실제 당선 배지는 제3의 비례대표 후보에게 돌아간다. 그것 또한 유권자의 표심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선거구제 개편은 여야의 협상의지를 전제로 해서 추진돼야 한다. 그럼에도 도저히 거대정당의 비협조로 진도를 나갈 수 없다면, 야 3당으로선 “국민의 뜻을 물어보자”면서 국민투표라도 제안하는 게 그나마 억지 모습을 상쇄할 수 있는 길이라고 본다.

권혁식기자 (서울취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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