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아주 다른 두 교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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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10   |  발행일 2018-12-10 제24면   |  수정 2018-12-10
[문화산책] 아주 다른 두 교황 이야기
이진명 <대구미술관 학예실장>

교황청은 사상 집단이다. 사상의 존재다. 유럽에서 국가 간의 구별이 생긴 역사는 그다지 오래지 않다. 유럽에서 하느님 아래 서있는 인간에게 국가 구별은 큰 의미가 없었다. 기독교도는 모두 형제였다. 이러한 형제 의식을 심어준 사상적 집단이 교황청이다. 요즘도 유럽인들은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최종적으로 바티칸 방송국의 논평을 확인하면서 판단을 정리한다.

유럽 전체를 보살피는 사상적 황제로서의 권위가 요즘도 지대한데 중세나 르네상스 시기에는 오죽했을까. 그래서 교황을 선출하는 일이 매우 어려웠다. 교황 선출은 추기경들이 결정한다. 첼레스티노 5세라는 청빈한 교황이 있다. 몇 년 동안 술모나의 모로네산 동굴에서 은수생활을 계속하다가 많은 군중을 피해 1245년경 제자들과 함께 접근하기 더 어려운 마이엘라산 깊은 곳으로 가서 생활하기도 했다. 교황청은 교황 니콜라우스 4세의 선종 후 정치적 음모 때문에 18개월간 교황을 뽑지 못했다. 그러다 나이가 85세나 된 첼레스티노 5세를 선출했다. 추기경들은 나이든 교황이 죽을 때까지 시간을 조금만 벌고 이후를 기약하자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청빈하고 검소한 교황이 잘 죽지를 않았다. 호화스러운 교황청 생활에 맞지 않는 교황이 추기경들에게 눈엣가시였다. “버터 없는 빵 먹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입버릇으로 교황은 추기경들을 몰아붙였다. 결국 추기경들은 이 교황을 파문하고 아니니 근교의 푸모네성에 감금한다.

그 뒤를 잇는 것이 ‘문제적 교황’ 보니파시오 8세다. 원래 법률가 출신인 이 교황은 세속적이었다. 이재에 밝았고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로 돈을 긁어 모았다. 산피에트로의 대본산에서 축제를 열어 ‘새전’을 긁어 모으는가 하면, 성직을 매매해서 큰돈을 벌었다. 면죄부를 발행해서 유럽 전역에서 돈을 거둬들이는 한편, ‘Signor Iddio’라는 아이디어를 구상했다. 피렌체 은행에 ‘하느님 계좌’를 개설한 것이다. 사람들은 의무적으로 하느님께 입금해야 했다. 그리고 막대한 재정으로 유럽 전체로 땅투기를 했다. 교황청의 영토가 이때 가장 넓었을 것이다. 추기경들은 신나서 어쩔 줄 몰랐다. 반대로 영국 국왕, 프랑스 국왕,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는 첨예하게 대립했다. 보니파시오 8세는 나중에 프랑스 필립 4세에 의해 유폐되는 불행을 맞이한다.

우리나라 미술관들의 관장도 선출이 늦어지고 있다. 가장 좋은 교황은 정신적 이상을 보여준 첼레스티노 5세와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능력을 보여준 보니파시오 8세 그 둘의 장점이 조화된 사람일 것이다. 나는 정신적 이상과 현실적 장점을 동시에 갖춘 관장님이 반드시 출현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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