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이길 수 있다” 자신감이 ‘대구 매직’의 불씨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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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10   |  발행일 2018-12-10 제3면   |  수정 2018-12-10
대구FC, 각본 없는 대반전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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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후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KEB하나은행 FA컵’ 결승 2차전 대구FC-울산현대의 경기에서 대구FC가 승리하자 팬들이 기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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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FC 선수들이 구단주인 권영진 대구시장을 헹가래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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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FC 선수들이 승리에 환호하고 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대구FC가 대한축구협회(FA)컵 우승을 차지하며 구단 역사를 새롭게 썼다. 한마디로 각본 없는 드라마였다. 총체적 부진으로 리그 꼴찌를 전전하다 반전을 거듭한 끝에 하위스플릿 최고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역대 4강 진출이 최고 성적이었던 FA컵에서는 난적 중 난적이던 울산현대를 종합스코어 5-1로 물리치며 기적을 만들었다. 대구의 힘은 어디에서 왔을까.

◆꼴찌로 마감한 시즌 중반

대구FC의 올해 목표는 K리그1(1부) 잔류를 넘어 상위스플릿 도약이었다. K리그1 전체 12팀 가운데 6위 안에 들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월드컵 브레이크(5월14일~7월6일)까지 14라운드를 마쳤을 때 대구의 성적은 1승4무9패로 리그 12개팀 가운데 12위였다.

당시 팀의 주력인 외국인 선수들이 너무 부진했다. 시즌을 앞두고 카이온과 지안 등 2명의 외국인 선수를 영입했지만 이들은 14게임을 치르는 동안 한 골도 넣지 못했다. 어시스트도 없었다. 언젠가부터 이들은 출전조차 못했다. 외국인 선수로 유일하게 출전하던 세징야는 아킬레스건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데다 상대의 집중 견제로 예전 같은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외국인 선수들을 대신해 토종 선수들이 분전하며 골 맛을 봤지만 경기당 2골 이상 넣은 적이 없을 정도로 골 가뭄에 시달렸다.


리그 초반 외국인선수 부진에 퇴장 악몽
안드레 감독 용병술 밑바탕 경기력 회복
월드컵휴식기 후 완벽변신 꼴찌서 7위로
공수 고른 활약에 FA컵 우승까지 내달려



퇴장도 너무 많았다. 이번 시즌 1라운드부터 10라운드까지 치러진 총 60경기에서 25차례 퇴장이 나왔으며 대구는 6명이나 됐다. VAR(비디오 어시스턴트 레프리) 도입으로 인해 전반적으로 리그에서 퇴장이 늘었다고 하지만 대구의 퇴장 횟수는 리그 소속팀 가운데 가장 많았다. 달리다가 우연히 밟거나, 무의식적으로 팔꿈치를 드는 등 고의성이 없었는 데도 가혹한 판정을 받았다고 항변할 수 있지만 심판만 탓할 수는 없었다. 원인을 제공한 측은 선수들이었다. 퇴장이 경기에 미치는 파급력은 엄청나다. 현대축구에서는 한 명이 빠지면 전술적·체력적으로 열세에 놓이게 되고 팽팽했던 무게추가 급격히 한쪽으로 쏠리게 된다.

◆대구FC를 바꿔놓은 월드컵 브레이크

월드컵 브레이크 이후 넉 달여 동안 대구는 ‘완전변신’에 성공했다. 대구는 이 기간 24라운드를 치르면서 13승4무7패라는 놀라운 성적을 올렸다. 4연승하며 팀최다 연승 동률을 이루기도 했다. 수원을 상대로 9년 만에 승리를 거뒀고, 서울 원정에서는 7년 만에 승점 3점을 챙겼다. 14경기 동안 대구가 넣은 골의 총합이 10골인 반면 브레이크 이후 24경기에서 만들어낸 골은 37개로 치솟았다. 결국 대구는 팀 역대 최고 성적 타이인 리그 7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이 같은 호성적 중심에는 외국인 선수들이 있다. 6월 들어 뒤늦게 합류한 에드가와 조세, 부상에서 회복한 세징야가 맹활약을 펼쳤다. 여기다 김대원·정승원을 중심으로 한 젊은피들의 기량이 가파르게 성장했다. 외국인 선수들이 부진했던 월드컵 브레이크 이전, 그들의 자리를 대신한 젊은피들은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로 열심히 뛰기만 했다. 섣부른 플레이로 파울을 남발했고 다 이긴 경기를 놓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월드컵 브레이크 기간 강도 높은 체력훈련을 했고 이를 통해 스피드를 앞세운 템포축구와 짜임새 있는 수비가 가능해지자 젊은피들의 플레이는 한층 더 성숙해졌고 득점에까지 가세하기 시작했다.

월드컵 브레이크 이전, 전방으로 공을 연결해도 지켜주질 못했다. 그러나 공수 밸런스가 좋아지면서 이 문제는 해결됐다. 팀 분위기가 살면서 쓸데없이 거친 플레이도 점차 줄어들었고 퇴장으로 팽팽했던 승부의 추가 상대팀으로 넘어가는 우(憂)도 범하지 않았다. 선수들의 자신감은 배가됐다. ‘버텨야 한다’에서 ‘이젠 이길 수 있다’로 선수단의 생각이 바뀌었다.

◆FA컵 우승이라는 기적을 만든 대구

월드컵 브레이크 이후 리그에서 자신감을 찾은 대구는 FA컵에서 순항했다. 여섯 경기를 내리 이기며 우승까지 내달렸다. 32강에서 대학 팀인 용인대를 4-1로, 16강전에서 양평FC를 8-0으로, 8강에서는 목포시청을 2-1로 꺾었다. 4강에서는 전남드레곤즈를 2-1로 이겼다.

결승 1·2차전은 압권이었다. 최근 2년 동안 6전6패를 기록했던 울산을 합계 스코어 5-1로 제압했다. 대회 최우수선수상과 득점왕(6골)을 차지한 세징야와 결승 1·2차전 쇄기골을 넣은 에드가는 FA컵 동안 팀의 핵심이었다. 특히 에드가는 세징야의 파트너로 좋은 활약을 선보였다. 김대원·정승원을 비롯해 고재현·임재혁·이동건 등 각종 연령별 국가대표팀에 차출돼 온 유망주들의 활약도 돋보였다. 김대원은 승부처였던 결승 2차전 후반 14분 0-0 상황에서 결승골을 터트리며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조현우 골키퍼의 활약도 눈부셨다. 2018 러시아 월드컵을 마치고 복귀해 대구의 리그 잔류를 이끈 조현우는 전남과 치른 FA컵 4강전에서 2-0으로 앞서던 후반 5분 김민준의 슛과 추가시간 혼전 상황에 나온 슛을 연이어 막아내며 사상 첫 대회 결승 진출을 뒷받침했다. 울산과 치른 두 번의 결승전에서도 여러 차례 선방쇼를 펼쳤다. 2차전에서 전반전 한승규의 슛에 각을 좁혀 나와 막은 것은 물론 후반 막판 수비 실수로 나온 위기 상황에서까지 대구의 골문을 완벽하게 사수했다.

대구의 FA컵 뒤에는 안드레 감독의 용병술이 자리한다. 안드레 감독은 월드컵 브레이크 때 하나의 목표를 세우고 실행에 옮겼다.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고 긍정적인 생각을 심어주겠다는 것이었다. 안드레 감독은 선수들과 많은 미팅을 통해 심리적인 측면을 어루만졌다. 울산과 FA컵 결승을 앞두고도 선수들의 정신력 관리에 초점을 맞췄다. 안드레 감독은 선수들이 자신감을 찾지 못하면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대구가 승리할 수 있는 이유를 세세하게 설명하며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세징야의 역량을 최대치로 이끌어냈고 에드가 등을 세징야 주변에 적절히 배치해 시너지를 높였다.

안드레 감독은 “우승을 확정한 뒤 지난 일들이 생각났다. 시즌 초반 상황이 매우 어려웠는데 선수들은 묵묵히 나를 믿고 따라와 줬다”며 “특히 월드컵 휴식기에 포기하지 않고 자신감을 찾아준 선수들에게 고맙다”고 우승 소감을 밝혔다.

유선태기자 youst@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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