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대전 장태산 자연휴양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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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07   |  발행일 2018-12-07 제37면   |  수정 2018-12-07
“神의 나무 숲속에서 불꽃처럼 타는 활엽의 단풍 사이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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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산 자연휴양림의 아름다운 연못과 메타세쿼이아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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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산 휴양림을 창립한 독림가 임창봉 선생 흉상.

영장류의 시작은 나무였다. 그 때, 장태산 초입 메타세쿼이아 숲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신(神)의 나무라고 불리는 메타세쿼이아 숲은 영혼의 발광체였다. 메타세쿼이아가 왜 신(神)의 나무인가. 빙하기에 지구를 1억 년간 지배해온 공룡과 함께 모든 나무가 죽었다. 빙하기 전의 나무를 알 수 있는 건 화석밖에 없었다. 메타세쿼이아도 화석에서 볼 수 있는 사라진 나무였다. 그러던 중 1941년 양쯔강 상류 마타오치 강에서 왕전이라는 공무원에 의해 발견, 현존하는 나무로 밝혀졌다. 그 후, 메타세쿼이아는 일명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리게 되었다.

메타세쿼이아는 합성어로 메타(Meta)는 ‘뒤’ ‘나중’의 뜻이고, 세쿼이아(Sequoia)는 북미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 중 하나인 세쿼이아 나무를 지칭한다. 세쿼이아는 북미 인디언 ‘체로키족’의 세쿼이아라는 현자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리고 메타세쿼이아는 3천200년에서 4천년의 수령을 갖는다. 그래서 메타세쿼이아를 신수(神樹), 신(神)의 나무라고 하기도 한다. 수종 변화없이 빙하기를 견뎌 살아온 단 한 종의 나무, 마치 십자가에서 죽었다 부활하신 단 한 분 예수님 같은 이미지의 나무가 메타세쿼이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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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산의 명품 메타세쿼이아 숲 공중에 있는 스카이타워.

빙하기 견뎌 살아 남은 메타세쿼이아
몸과 마음 하나의 영혼으로 묶이는 듯

땅 위에 떨어진 침엽의 주홍빛 단풍들
고향의 숲속 동화마을 어린날 그리움
수려한 허공으로 오르는 스카이웨이
위에서 내려보는 광경은 환희와 몰입
나뭇잎 사이로 고흐의 그림처럼 물결

文 대통령 부부가 방문해 찍은 포토존
민간휴양림 첫 조성 임창봉 선생 흉상
20만 그루 심어 대전 8경 경승지 남겨


나는 그 숲에서 몸과 마음이 하나의 영혼으로 묶이는 신열(神熱)을 느꼈다. 그리고 빛과 어둠, 삶과 죽음, 순간과 영원, 신과 인간 이렇게 대립적인 두 세계의 변화가 일으키는 혼돈의 처음은 나무였다고 생각했다. 나무는 어떤 형이상학적 예언을 하는 영장류의 머리였다. 인류가 나무에서 불을 얻고, 나무에서 신(神)을 찾아 엄청난 진화를 하기 전까지도, 인간은 나무 위에서 살았다. 그건 원시 이전이었다. 그러니까 인간은 나무 위에서 살고 있었던 어떤 원숭이의 진화라고 생각된다. 그들은 삼림, 즉 숲속에서 나무 열매를 따먹고 배가 부르면 열매를 서로 던지고 받으며 행복한 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수백 년이 흐르자 나무의 열매가 모자라게 되고, 그때까지는 소집단에 불과하던 그들은 싸우게 되고, 힘이 약한 집단은 땅으로 쫓겨 내려왔다. 이제 땅을 차지한 약한 그들은, 여러 가지 위험으로 급속히 진화하게 되었다. 즉 두 손은 열매 대신 돌을 사용하게 되어 훨씬 강력해졌고, 또 도구도 만들게 됨으로써 다른 동물보다 우월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아직 생물학적으로 가장 약한 존재였다. 임신이 길고, 태어나서 활동하기까지 오래 걸리고, 걸음도 느리고, 발톱도 이빨도 무기가 될 수 없는 멸종하기 좋은 그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생존경쟁의 유일한 무기는 지성(知性)이었다. 그들은 나무 위에서 살 때 두발로 걸을 수 있는 기능을 얻었고, 직립원인으로 살면서 머리가 발달해 지성을 가질 수 있었다. 말하자면 나무는 영장류의 머리였다. 이러한 지성은 말을 만들고, 의사소통 기술을 발달시켜 유용한 경험을 전달하고 축적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개인에서 개인으로, 집단에서 집단으로, 각 세대는 다음세대로 많은 기술을 물려주게 되었다. 바야흐로 원시인들이 출현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원시 종족이 도태되었다. 이런 지성의 유전에서 영혼도 차츰 나타나고 성장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 와중에 지금의 현생인류가 살아남아 지구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메타세쿼이아와 땅 위에 떨어진 침엽의 주홍빛 단풍들, 간간이 불꽃처럼 타는 활엽의 단풍 사이로 걷는다. 숲속 어드벤처로 들어선다. 그 수려한 메타세쿼이아 나무 숲 허공으로 오르는 스카이웨이, 데크 로드다. 앞서가는 행락객들이 나무 위에서 그 인간 이전, 파충류로 살 때의 모습으로 어른거린다. 높이가 차츰 올라가고, 메타세쿼이아의 나무 사이로 지나가면서 빙하기 이전부터 이어져온 생명의 연속성과 부활성에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의 형해를 본다. 이건 감각경험을 넘어서는 영성경험이다. 5층의 스카이타워를 오른다. 많은 행락객이 시끌벅적하다. 탑으로 오르는 로드는 흔들림이 있다. 올라갈수록 흔들림이 더해 5층 가장 위층에서는 사뭇 온몸까지 흔들리는 것 같다. 이렇게 스릴 넘치는 공중에서 흔들리기까지, 나를 흔드는 것이 결핍이고 갈망인 줄 몰랐다. 꿈도 사랑도 아닌 것, 나를 흔드는 것이 채워지지 않는 영적 목마름이란 것을 몰랐다.

마지막 위층에서 내려보는 메타세쿼이아 숲은 그야말로 환희고 몰입이다. 저 주홍의 단풍. 예수가 흘리신 피의 색깔이 저럴 것이라고, 영적 도약의 작두날처럼 섬뜩하다. 돌아 나온다. 시가 있는 매점으로 방향을 틀어 걷는다. 시(詩) 전시장에서 시를 읽는다. “나무는 자리를 탓하지 않고 묵묵히 자랄 뿐이다.”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자고.” “하늘이 잘 보이는 숲으로 가서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게 하십시오.”(이해인)에 공감하며 나직한 소리로 외워본다. 먹거리 메뉴 중 ‘소떡소떡’이 무슨 음식인가 궁금하였으나 그냥 지나친다. 장태산 휴양림 전시관에 간다.

인류가 파괴한 산림, 세계 4대 문명 발상지가 지금 모두 모래 속에 묻혀있다. 유프라테스, 티그리스, 나일, 황하, 인더스·갠지스 강 유역은 찬란했던 문화를 이룬 곳이다. 문화는 강과 숲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문화가 발달하면서 울창했던 숲을 모두 베어 버렸다. 숲에서 싹튼 문화에 의해 숲은 베어지고, 지금은 모래만 남았다는 설명이다. 가타부타 할 것 없이 숲이 없어지면 인간도 없어진다. 답은 명쾌하고 분명하다. 밖으로 나와 임간 교실, 숲속 수련장으로 간다.

고개를 들어 둘러싼 장태산을 본다. 굽어진 등고선을 따라 가던 눈이 나에게 멈추고 점점 휘어지는 나의 생애를 보게 한다. 허겁지겁 흘러간 시간과 한 꿈도 오선지에 옮기지 못한 나에 대한 끝없는 연민과 애정에 에둘러 아파한다. 다음 생에는 저 메타세쿼이아 나무로 태어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한다. 나는 오늘 움직이는 메타세쿼이아다. 마치 다음 생애로 걸어가는 윤회의 수레바퀴처럼. 쉼터에 오면 누울 수도 있는 나무의자가 있다. 한 번 누워본다. 곧게 뻗은 나무 군(群), 나뭇잎 사이로 하늘이 고흐의 그림처럼 물결친다. 밤 새 별이 내려오는 자리, 바람이 무언가를 말해주는 저 나뭇잎에서 원시의 언어를 만난다.

일어나서 다시 걷는다. 고향의 어린 날이 그립기도 하다. 내 고향은 숲으로 이룬 마을이었다. 멀리서 보면 집은 보이지 않고 무성한 숲만 보였다. 내 고향은 숲속 동화의 마을이었다. 대통령의 발자취란 안내판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 부부, 장태산 자연 휴양림 방문. 대전 관광 명소 12선 중 하나인 장태산 자연휴양림에 방문하시어 휴가를 보내시고 멋진 사진을 남겨 주셨습니다.’ ‘이 위치에서 찍어요’가 있고 포토존이 되어 있다. 그러나 저 ‘대통령의 발자취’가 두고두고 남겨지려면, 선배 대통령의 발자취를 보전해 주어야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래에 있는 연못은 메타세쿼이아 숲과 서로 오래 바라볼 수 있는 대칭의 아름다움으로 흥분하게 한다. 그만큼 감동스럽다. 여러 곳에서 촬영을 한다.

입구에 장태산 휴양림을 조성한 송파 임창봉 선생의 흉상을 본다. 임창봉 선생은 1922년 논산 향안리에서 출생, 1972년부터 장태산 24만평에 20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 정성껏 가꾸었다. 1991년 전국 최초 민간 휴양림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을 조성, 대전 8경의 하나인 경승지로 만들었다. 창립자의 높은 뜻을 계승하고, 숭고한 업적을 기록하여 영원토록 기리고자 한다는 내용이다.

빈손으로 찾아간 나에게 영성을 건네는 장태산. 생각 밖에서 주홍의 나무 그늘 던지는 장태산, 허공에서 허공의 나무가 자라는 장태산. 장태산 트레킹은 언어 밖, 생각 밖에서 언어와 생각을 만나는 트레킹이었다.

대구힐링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 김석 대우여행사 이사

☞여행정보

▶트레킹 코스 : 관리사무소 - 숲속 어드벤처 - 시가 있는 매점 - 임간교실 - 숲속의 집 - 교과서 식물원 - 산림문화 휴양관 - 숲속 수련장 - 관리 사무소

▶문의: 장태산관리사무소 (042)585 - 8061

▶내비 주소 : 대전시 서구 장안로 461

▶주위 볼거리 : 갑사, 동학사, 신원사, 대청호, 대둔산, 육영수여사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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