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로맨스 스캠

  • 원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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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05   |  발행일 2018-12-05 제31면   |  수정 2018-12-05

혼자 사는 50~60대 여성들의 감성을 이용한 사기 ‘로맨스 스캠’ 주의보가 내려졌다. ‘로맨스(Romance)’는 연애·정사를 뜻하는 단어이고, ‘스캠(Scam·Skam)’은 (신용)사기를 뜻한다. 사기꾼들이 SNS를 통해 여성들과 친밀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애인처럼 굴다가 결혼을 빙자해 돈을 송금받고 잠적하는 것이다. 사기꾼들은 외국인 장교나 엔지니어 등을 사칭하면서 치밀한 전략으로 여성들의 모성과 동정심을 자극, 거액을 편취하는 고단수 수법을 쓰고 있다. 그 과정에서 첨단 문명의 이기인 스마트폰이 함정을 제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어 실력이 짧아도 SNS의 자동번역기를 활용하면 외국인 남성과도 대화가 가능한 게 요즘이다. 광주에 사는 한 50대 여성은 최근 이라크에 파병근무 중인 미군장교라는 한 남성이 SNS에서 말을 걸어오자 연락을 주고받게 됐다. 일면식도 없었지만 영어로 보낸 이 남성의 메시지를 자동번역기로 읽고 답하는 사이 이 여성은 미군장교를 사칭한 남성과 사귀는 것으로 착각하게 됐다. 그러던 어느날 이 남성이 “한국에 입국하려는데 택배비가 없다. 400만원을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이 여성은 별다른 의심없이 돈을 송금했다. 그런 뒤 지난달 13일 더 큰돈을 요청하는 메시지가 들어왔다. 이 남성은 “당신을 보기 위해 한국에 입국하려다 세관에 붙잡혔다. 벌금 3천만원을 내야 풀려난다. 당신을 빨리 만나고 싶다”고 요청한 것. 사기꾼의 본색이 드러났는 데도 이 여성은 인지하지 못하고 멋진 미군장교 애인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농협에 가서 송금하려고 했다. 다행히 사기임을 알아챈 농협 여직원의 만류로 거금 송금을 막았고, 광주 북부경찰서 사이버수사팀에 신고했다. 지난 8월 울산에 사는 50대 여성이 미군장성이라고 주장하는 남성에 속아 수천만원을 송금한 사건도 있었다. 압권은 홍콩에 살던 66세 여성이다. 이 부자 여성은 올해 7월까지 4년 동안 영국의 엔지니어라는 남성에게 무려 260억원이나 송금한 사실이 알려져 해외 토픽을 장식하기도 했다.

현 시대를 흔히 ‘불신시대’라고 한다. 틈만 나면 등쳐먹을 궁리를 하는 이런 사기꾼이 득시글거리니 사람들은 서로를 믿지 않게 됐다. 여성의 약점을 이용해 믿도록 만드는 정교한 이 사기술은 악덕이지만 대단하다.

원도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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