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B와 D 사이의 C

  • 원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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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03   |  발행일 2018-12-03 제31면   |  수정 2018-12-03
[월요칼럼] B와 D 사이의 C
원도혁 논설위원

‘생(生)은 B와 D 사이의 C’라는 말이 있다. 탄생(Birth)해서 살다가 사망(Death)하기까지 숱한 선택(Choice)을 하면서 산다는 의미다. 매 순간 선택을 해야 하는 인간의 숙명을 영어 단어에 맞춰 잘 갖다 붙인 해석이다.

한때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한 전자제품 광고 카피가 유행했다. 이 광고 카피처럼 순간의 선택은 의외로 큰 흐름을 바꾸기도 한다. 직장생활 30년을 좌우하고, 인생을 통째로 결정하기도 한다. 살면서 매순간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점심으로 한정식을 먹을지 밀가루 음식을 먹을지 결정해야 하고, 중국음식점에 가서도 자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 선택해야 한다. 그 선택으로 인해 몸을 구성하는 세포와 몸의 상태가 달라진다. 이런 사소한 선택부터 인생 80년을 좌우하는 배우자 선택까지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고민없는 선택은 드물지만 그래도 세상을 살면서 처신을 고민해야 하는 심각한 사안은 따로 있다. 바로 대인관계를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문제다. 곧을 것인가 굽힐 것인가, 관대할 것인가 엄격할 것인가, 대담할 것인가 소심할 것인가, 복수할 것인가 용서할 것인가, 분노할 것인가 참을 것인가, 사람을 믿을 것인가 믿지 말 것인가 하는 것들이다.

곧은 나무가 멋져 보인다. 하지만 곧으면 먼저 베인다고 했고, 곧으면 모함 당한다고 했다. 너무 곧은 상태를 우직(愚直)이라고 표현했다. 그래서 곧으면서 온화하라고 선현들은 가르쳤다. 공자의 제자 안회는 ‘속은 곧되 겉은 완곡하면 비록 곧더라도 해를 입지 않을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제안했다. 관대함이 최선이요 엄격함이 차선이라지만, 관대하면서 엄격해야 올바른 처신이라고 한다. 집안에서도 자녀를 제대로 훈육하기 위해서는 엄부(嚴父)와 자모(慈母)가 공존해야 하듯이. 대담함과 소심함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대담하되 소심하라고 가르친다. 어느 한쪽만의 승부는 없다는 말이다. 정당한 복수는 대개 정의로 간주되기도 하지만, 복수와 용서는 용서쪽에 더 무게를 두는 편이다. 노자는 ‘원한은 덕으로 갚으라’고 했고,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은 ‘용서하는 것은 좋다. 가장 좋은 것은 잊는 것이다’라고 적었다. 일찍이 헤로도토스는 ‘인간이 지나치게 복수를 행하면 신들의 미움을 산다’고 했다.

분노할 것인가, 참을 것인가의 선택에 대한 선현들의 고견도 다양하다. 조선시대 문장가 이덕무는 ‘노여움의 불꽃을 피운다면 먼저 스스로를 태우고 말 것이다’라고 썼다. 플루타르코스는 ‘성을 잘 내는 당신은 약자다. 약하면 약할수록 성을 잘 낸다. 남자보다는 여자가, 건강한 사람보다는 병자가, 행운의 사람보다는 불운한 사람이 더 성을 내기 쉽다’고 설파했다. ‘일소일소 일노일로(一笑一少 一怒一老)’라는 말도 있다. 고대 그리스의 명의 히포크라테스도 ‘사람에게 가장 위험한 질병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병’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까지나 화를 참을 수만은 없다. 변영로 시인이 적시한 ‘거룩한 분노’는 표출돼야 마땅하다. 그는 명시 ‘논개’에서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라고 읊었다.

불신의 이 시대, 사람을 믿을 것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도 난제 중의 난제에 속한다. 사람을 믿을 수도 없고, 안 믿을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처지에서 하루하루 신뢰 대 불신의 투쟁 속에서 산다. 하지만 신뢰가 끊기면 인간사회는 지리멸렬할 것이다. 신용을 잃은 사람은 더 잃을 것이 없다는 말은 ‘신용이 인간의 마지막 보루’라는 의미다. 세상에 의심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마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 ‘남을 의심하는 눈으로 보지 말고, 속는 것을 겁내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여주라’고 금언집에 남겼다. 정도(正道)는 ‘지나치게 믿지도 지나치게 불신하지도 말라’는 것이다. 이처럼 극단의 선택 사이 조화로운 중용은 어렵다. 신중한 선택을 위해 골머리를 앓는 나에게 오래전 박인환 시인이 쓴 ‘인생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다’는 글귀는 좋은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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